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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뮤 Jul 04. 2020

난임은 남의 일이 아니야

나의 난임 이야기







저는 올해 서른여섯입니다. 85년생이고요, 결혼한지는 3년이 되어갑니다. 결혼이 그리 빠르지 않아 '아이는 생기면 바로 낳아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결혼시기도 제 계획대로 되지 않았는데 무슨 자신감이었을까요? 임신이 마음처럼 그렇게 쉽지 않았습니다. 인생은 정말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겠더라고요. 왜냐고요? 결혼한 지 3개월 만에 폐결핵 판정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폐결핵이라니!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습니까? 한 일주일이 넘도록 왼쪽 옆구리가 아팠어요. 처음엔 단순한 근육통인 줄 알았죠. 제가 탁구를 좀 열심히 쳤거든요. 남편도 탁구 동호회에서 만났으니 결혼 후 저녁마다 남편과 탁구를 치러 가는 게 저희 부부의 당연한 일상이었어요. 내가 너무 열심히 탁구를 쳤나 보다 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오한까지 들더군요. 밤에 으슬으슬 떨며 땀을 한 바가지 흘렸어요. 독감이었나? 싶어 내과에 가서 우선 약을 받아왔어요. 열이 나면 해열제를 먹었고, 운동도 쉬며 약을 챙겨 먹었지만 증상은 나아지기는커녕 점점 더 나빠졌습니다.





다시 찾은 내과에서 의사 선생님이 아프다는 제 왼쪽 옆구리 이곳저곳을 눌러보셨어요. 고개를 갸우뚱하시는 것을 보고 덜컥 겁이 났죠. 의사 선생님은 아무래도 좀 이상하다시며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다고 하셨어요. 진단서를 써줄 테니 상급병원으로 가보라고 하셨죠. 저는 바로 근처 대학병원을 찾았고, 엑스레이와 피검사를 고 돌아왔어요. 담당 의사 선생님과 3일 뒤 결과를 듣기 위한 약속을 잡았는데 저는 다음날 아침에 다시 병원을 찾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병원을 다녀온 날 새벽, 숨만 쉬어도 왼쪽 옆구리를 누가 칼로 찌르듯이 아파 가쁜 숨을 내쉬었습니다. 열은 39도까지 올랐고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서 어제 찍은 흉부 엑스레이 사진을 보시더니 "바로 입원하셔야 합니다"라고 하셨어요. 엑스레이 상으로도 폐결핵이 확실해 보인다며 이미 많이 진행이 되어 상태가 심각하다는 겁니다. 저도 슬쩍 고개를 돌려 제 엑스레이 사진을 봤는데 한쪽 폐의 절반 가량이 온통 흰색으로 보였어요. 왜 다들 그런 순간이 한 번쯤 있지 않으셨나요? 너무 엄청난 이야기를 들으면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시간이 멈춘 듯한 기분이 드는 순간이요. 저는 그때가 그랬어요. 아니, 요즘 세상에 아직도 결핵에 걸리는 사람이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죠... 근데 그게 바로 나라니!







'죽음'이 결코 멀리 있지 않다는 걸 그때 깨달았습니다. 격리병실에서 지낸 2주간 제 인생을 통틀어 가장 큰 고통을 경험했어요. 이렇게 아플 거면 차라리 죽고 싶다는 생각도 자주 했지요. 몸이 아프니까 인생의 모든 것에 흥미를 잃었어요. 무료함을 달래주던 텔레비전도 보기 싫었고, 책장을 들출 힘도 없었습니다. 식욕을 느끼는 부분이 싹둑 잘려나간 것처럼 아무것도 입에 넣고 싶지 않았고, 식사시간은 또 다른 고통의 시간이었습니다. 식욕이 없다고 허기를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니라 거의 하루 중의 대부분의 시간을 고열, 두통, 극심한 허기에 시달려야 했어요.


신혼의 달콤한 일상을 누려야 할 시기에 저는 독한 약을 악착같이 챙겨 먹으며 약의 부작용과 싸워야 했습니다. 그러니 저희 부부에게 1년간은 아이를 갖고 싶어도 가지면 안 되었던 시간이었습니다. 6개월은 결핵 치료를 받았고, 다음 6개월은 피폐해진 몸과 정신을 회복하는데 썼습니다.



다행히 빠른 속도로 건강을 되찾았고 2019년 새해를 맞이하여 올해는 꼭 아이를 갖고자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저는 생리가 불규칙한 사람이었어요. 임신에 대해 큰 생각이 없을 때는 막연히 생리를 자주 안 해서 편하다는 생각뿐이었는데, 임신을 하려고 하니 이게 보통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서른 살이 훌쩍 넘도록 제가 제 몸에 대해서, 임신에 대해서 아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걸 그때 깨달았어요. 배란을 하면 2주 뒤에 생리를 한다는 사실도 그제야 찾아보고 알게 되었으니 부끄러울 따름이네요. 생리가 불규칙하다는 말은 배란일도 뒤죽박죽이라는 말과 같았습니다. 배란일을 알아내는 것이 저에게 주어진 숙제였죠.






이제나 올까, 저제나 올까 하고 배란이 되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배란 테스트기를 사서 매일 검사를 했는데 2달이나 3달 동안 소식이 없을 때가 허다했습니다. 그리고 기적처럼 배란 테스트기에 10이라는 숫자를 본 날은 마치 벌써 임신이라도 된 듯 떨리고 기뻤습니다. 그러나 배란일을 예상할 수 없었기에 남편이 회식이 있는 날이나 출장을 떠난 날 배란 테스트기에 10이란 숫자가 뜨면 억장이 무너졌습니다. 펑펑 울고, 난리도 아니었죠. 생각해보세요. 1년이 12 달인데, 3달 만에 찾아온 배란일을 놓치면 또다시 2~3개월을 기다려야 한다는 말입니다. 1년간 몇 번의 노력도 해보지 못하고 2020년을 맞이했습니다.



이러다가는 안 되겠다 싶어 산부인과를 찾았습니다.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께서는 저의 이야기를 들어보시더니 조심스레 난임 병원을 추천해 주셨어요. 다낭성 난소증후군(가임기 여성에게 나타나는 내분비 질환) 일 가능성이 크다며 일반 산부인과보다는 난임 병원에서 전문적으로 도움을 받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하셨어요.  다행히 집에서 가까운 곳에 유명한 난임 병원이 있었고, 요새는 아이를 진지하게 원하는 부부들이 큰 문제가 없어도 많이들 난임 병원을 찾는다는 말에 결심이 섰습니다. '난임'이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이 좋지 않 것은 사실이지만 신경 쓰지 않기로 했어요.








확실히 난임 병원은 달랐습니다. 체계적으로 우리 부부가 받아야 하는 각종 검사들이 진행되었고, 다행히 우리 부부 모두에게 아무런 이상이 없었습니다. 그저 배란이 불규칙한 문제만 약물의 도움을 받으면 되었어요. 제가 난임으로 심리적인 위축과 우울감 빠졌을 때 저와 같은 문제로 고민하는 많은 분들의 글이 참으로 힘이 되었습니다. 그분들의 경험담을 읽으며 '난임은 남의 일이 아니야'라는 말을 더욱더 뼈저리게 느꼈지요.



그래서 저도 저의 경험을 글로 기록해보고 싶었습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아무런 감흥도 없는 먼 나라의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저와 비슷한 고민, 아픔, 문제를 겪고 계신 분들에게는 분명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거나 공감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좋은 엄마가 되고 싶어서> 매거진에서는 앞으로 난임에 대한 이야기와 더불어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제가 공부하는 내용을 정리하여 남기려 합니다. 아직은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아기천사를 기다리는 입장이지만 '좋은 엄마'가 되고 싶은 마음에 지금부터 제가 할 수 있는 준비를 해보려 합니다. 태교에 대해서, 육아에 대해서, 나아가 아이들 교육에 대해서 알고 싶은 게 너무나 많습니다. 시간이 허락된다면 영어교육에 대해서 지난 10년 동안 쌓아온 생각과 저만의 노하우도 정리하여 담아보고 싶습니다. 분명, 미래의 제 아이에게 도움이 되겠죠?


앞으로 꾸준히 진솔한 이야기를 들고 찾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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