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란 12일째 단호박, 결국 인공수정 시술을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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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부터 난임병원에서 배란일을 맞춰 자연임신을 시도한지 반 년이 지났다. 아무리 약을 먹고, 주사를 맞아도 배란 주기가 긴 편이라서 반년 동안 총 4번의 시도가 있었다.
지난달 3번째 시도에서는 화유(화학적 유산)을 경험해서 펑펑 울었다. 화학적 유산이 그렇게 흔한지 몰랐고, 희미했지만 처음으로 본 두 줄에 남편과 나는 꿈을 꾸는 기분으로 며칠을 보냈기 때문이다.
내 나이 만 34살, 하지만 10월이 되면 만 35살이 된다. 만 35살부터는 노산으로 본다고 한다. 우리 부부가 제대로 된 노력을 쏟은지 이제 겨우 6개월 밖에 안되었는데 나는 언제 이렇게 나이만 먹었나 한숨이 나왔다. 주변에 들려오는 이야기로는 아직 만 35살도 충분히 희망적이고, 조급해할 필요가 없다는데 잠시 잠깐 위로만 될 뿐 또다시 전전긍긍하는 나를 발견한다.
어제는 쉬는 날이어서 남편과 백만 년 만에(느낌상) 데이트를 했다. 배란 14일째였다. 하지만 2주가 되기를 못 참고 며칠 전부터 임신 테스트기를 해보았다. 배란 12일째부터 줄곧 단호박 한 줄이 나왔다. 미세한 흔적이라도 찾아보려 몇 번을 전등 빛에 비추어봤는지 모른다. 두 눈을 끔벅이며 임테기를 보고 또 봤지만, 그런 헛된 노력이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들 뿐이었다.
남편에게 말로는"여보, 이번에도 꽝이야!"하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지만, 실은 바로 어제까지도 나는 실낱같은 희망을 붙들고 있었다.
'어쩌면 배란이 하루 이틀 늦었을 지도 몰라, 어쩌면 수정란이 착상할 자리를 찾느라 시간이 오래 걸린 걸지도 몰라.'
남편과 서울 을지로 데이트를 즐기고 있을 때 밑이 축축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배란이 된 이후로 줄곧 냉의 양이 많아져서 그런 느낌이 지속적으로 들었지만, 오늘은 그것보다 더 많은 양의 액체가 흐르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나는 급히 화장실을 찾았다.
핑크색 액체가 냉과 함께 섞여 나왔다. 실망과 희망이 팽팽하게 줄다리기했다.
'생리야', '아니? 착상혈일지 몰라'
이 두 마음이 서로 한치에 양보도 없이 맞섰다. 나는 희망의 손을 들고 싶었다. 하지만 동시에 실망과 우울의 늪으로 빠지고 싶지도 않았다. 헛된 희망 품지 말자 되뇌어도 남편과 나를 반반 닮은 귀여운 생명체를 갈망하는 나의 마음은 쉽사리 백기를 들지 않았다.
남편에게는 어김없이 생리라며 실망한 기색을 보였지만 마음속 한편엔'이게 만약 착상혈이라면? 우리에게 정말 아기천사가 찾아온 것이라면?'하고 임신 소식을 알렸을 때 남편의 놀란 표정을 상상하며 행복 회로를 돌리고 있었다.
저녁 8시가 되어서야 집에 도착했다. 오후에 핑크색 혈이 조금 흐른 뒤로 거의 나오지 않았다. 생리 첫날부터 항상 나를 괴롭히던 허리 통증과 아랫배 통증도 없었다. 생리통이 없다는 사실에 나의 마음은 조금씩 더 행복한 미래 쪽으로 기울었다.
임신 정보를 주고받는 카페에서 '착상혈' '착상혈 양' '착상혈 색' 등 마구잡이로 검색을 해보았다. 무엇이든 좋으니 나의 이 실낱같은 희망을 구체적 현실로 바꿔 줄 작은 정보라도 얻고 싶었다.
나는 그날 아침에 깨끗하게 한 줄을 보여주던 임테기보다, 얼굴도 모르는 익명의 누군가의 '카더라'가 더 믿고 싶었다.아마 임신을 간절히 원하는 여자들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나는 오후에 커피를 마신 것을 후회했다. 카페인 쓰레기(?)인 나는 커피 한 잔만 마셔도 심장이 뛴다. 하지만 아인슈페너 위에 올라간 그 달달한 크림과 커피의 쌉쌀함이 만나 이루는 환상적인 맛을 알게 된 뒤로, 이기지도 못할 카페인을 자꾸만 찾았다.
혹시나 착상에 안 좋을까 하여 2주간 커피는 거의 입도 대지 않았다. 하지만 배란 14일 째날에도 임테기에 반응이 없자 보상심리로 아인슈페너를 시켜서 한 잔을 다 마신 것이다.
미친 듯이 피곤하고, 머리가 아팠지만 밤 12시가 넘도록 잠들지 못했다. 직감했다. 오늘 잠들긴 글렀다는 것을.
내 정신은 오로지 내 배와 아래쪽에 쏠려 있었다. 밤이 늦었는데도 아직 생리가 확 쏟아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현기증이 날 것 같았다.
'어쩌면, 정말로.'
새벽 4시쯤 겨우 잠든 것 같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새벽 6시쯤이었다. 너무 피곤했지만 졸음보다 궁금함을 참기가 더 어려웠다. 종이컵을 하나 꺼내 화장실로 갔다.
'제발, 아주 초 매직아이라도 좋으니 나에게 희망을 보여줘!'
종이컵 안에 피가 섞인 소변이 담겼다. 그 피를 보고도 나는 구질구질하게 임테기를 뜯어 기어코 담그고야 말았다.
이미 사랑이 식어버린 남자친구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더 이상 날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해! 네 입으로 직접 말하기 전까진 믿지 않을 거야"하고매달리는 처량한 여자가 돼버린 기분이었다.
임테기는 차갑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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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널 사랑하지 않아"
피가 섞인 소변을 다시 변기에 쏟아붓고, 물을 내렸다. 이번 달 우리 부부에게 허락된 희망도 함께 내려보냈다. 나는 우울할 시간도 없었다. 생리 이틀째라면 출근 전 무조건 병원을 다시 찾아야 한다. 다음 달치의 희망을 또다시 잡으려면슬픔은 사치일 뿐이다.
병원으로 출발하기 직전 남편과는 이제 시술을 시도해보자고 했지만, 막상 의사선생님과 마주하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마음 같아선 계속 자연임신 시도를 더 하고 싶지만 혹시라도 나중에 시간만 낭비했다고 후회할까 두려웠다. 게다가 최근 극심한 회사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퇴사한 남편과 다달이 마이너스를 채워야 하는 에어비앤비를 생각하면... 시험관 시술은 최소한 남편이 취직한 후로 미뤄야 할 것 같았다.
갈팡질팡 마음의 결정을 못 하고 있을 때, 의사 선생님께서 다낭성의 경우 자연임신 준비 과정과 인공수정 준비 과정은 거의 같다고 했다. 오히려 정부 지원을 받는다면 인공수정 쪽이 훨씬 저렴하기에 안 할 이유가 없다고. 정부 지원금액에서 인공수정 시술비는 거의 다 커버가 가능하다고 하시는 말씀에 결국 결심했다.
'인공수정 시술을 하자!'
난임병원을 처음 찾았을 때부터 모든 게 낯설고, 모든 게 처음이었는데 앞으로도 내가 모르는 것들 투성이일 것 같다. 아무리 인공수정에 관한 글을 읽어도 내가 직접 경험하는 것과는 그 깊이부터가 다를 테지.
매번 희망의 성을 쌓았다, 속절없이 무너지는 그 성을 바라보는 일은 쉽지 않다. 그래서 난임부부, 특히 난임으로 고생하는 아내들의 멘탈관리가 특히 중요하다.
모든 수치가 정상인 우리 부부에게 아이가 쉽게 찾아오지 않는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셀 수 없이 많다고 한다. 그 말은 결국 우린 그 정확한 이유를 죽었다 깨어나도 확실하게 알 수 없을 거란 말이다.불확실성 속에서 일상을 살아내는 것은 고통스럽지만, 생각해보면 그게 인생이다.
언제 우리가 내일 우리에게 벌어질 일을 속속들이 알고 살았던가.
오늘도 최면을 걸어본다.
'아이가 없는 삶도 하나의 인생이고, 그것은 또 그것대로 괜찮아. 노력은 하되, 자책하지 마. 너무 많은 것에 의미를 두지 말고, 너무 많은 것에 감정을 담지 마. 괜찮아. 괜찮아.'
머리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어느 정도까지 속아줄지 모르겠지만, 부디 오늘은 아무런 근심 없이 달콤한 잠을 잘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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