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꾸준한 글쓰기에는 실패했지만, 임신에는 성공했다. 결혼 4년 차, 난임 병원 2년 차, 인공수정 4번, 시험관 1번 만의 일이다. 나의 지난하고 절실했던 임신 도전기가 이렇게 한 문장으로 정리되고 나니 조금 허탈한 기분이다.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결말을 알고 있었더라면 그 시간을 견디기가 훨씬 쉬웠을까.
지금 내 뱃속에는 나의 우주가 자라고 있다.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자그마한 생명체가 열심히 내가 삼키는 영양분을 받아먹으며 자라고 있다. 36주 3일. 2.8kg. 우주는 매일 자신의 존재를 나에게 알리고 있다. 배가 동그랗게 솟아오르고, 배꼽이 밖으로 튀어나오고, 배를 수직으로 가르는 임신선이 날로 진해지며, 나의 우주가 꿈틀거릴 때마다 그에 맞춰 뱃가죽이 춤을 춘다. 이렇게 내 안에 우주가 자라고 있다는 증거가 차고 넘치는데 어쩐 일인지 아직도 모든 것이 판타지 소설 속 일 같다. 하루키의 소설 1Q84에 나오는 두 개의 달이 떠오르는 세상처럼 말이다. 종종 이런 생각이 든다. 지금 내가 밟고 선 이 세상은 내가 예전에 알던 세상과 모든 면에서 흡사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미세한 균열이 있는 게 아닐까. 그 미세한 틈을 비집고 들어가 달이 하나만 떠 있는 진짜 세상에 가면 나는 여전히 매일 밤 나의 텅 빈 배를 감싸 앉으며 울고 있진 않을까.
우주가 세상에 나와 앙-하고 울음을 터뜨리기 전까지 그 어떤 증거도 내가 진정한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음을 자각하게 만들지 못할 것 같다.
지난주에는 조기진통을 느끼고 갑작스레 병원에 입원을 했다. 평소보다 배가 자주 뭉치고, 왼쪽으로 돌아누워 쉬어도 풀리지 않기에 고민이 되었다. '병원에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벌써 저녁 8시가 넘어가는 시간이었고 초산 산모라 아는 것이 하나도 없어서 이게 자연스러운 통증인지 아닌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일반 진료시간이 끝난 저녁에 병원에 가려니 정말 '특별한' 일이어야만 될 것 같은 생각에 결정이 쉽지 않았다. 맘 카페에서 주워들은 통증 어플을 다운로드하고 배가 뭉칠 때마다 기록을 했다. 4번인가 5번인가 기록을 했을 때 '지금 바로 병원에 가세요'라는 말이 떴다. 나는 이제 출발해도 좋다는 신호를 받은 경주마처럼 지체하지 않고 몸을 움직였다. 지갑과 핸드폰만 챙기고 남편과 함께 택시를 탔다.
온통 적막으로 뒤덮인 병원 건물에 들어가는 일은 어쩐지 으스스했다. 우리는 그 고요한 공기를 가르며 3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3층에 내려 오른쪽 복도를 따라 조금 걸으니 응급실 문이 보였다. 문이 열리고 간호사님이 우리를 맞아주셨다. 그리곤 건물 입구에서부터 3층 응급실까지 오는 동안 우리가 느꼈던 으스스함을 한 번에 털어낼 만큼 따듯한 음성으로 필요한 절차를 설명해주셨다.
나는 태동과 수축 검사가 필요했는데 병동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나와 보호자인 남편, 우리 두 사람의 코로나 음성 확인서가 필요하다고 했다. 갑자기 병원을 방문하게 된 터라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한 번에 3만 원이나 하는 급속 검사 키트로 바로 검사를 받았다. 총 6만 원. 돈은 아까웠지만 어떻게 얻은 생명인데 조금의 리스크도 감수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 문제가 없는 거라면 그거로도 다행이고, 문제가 있었던 거라면 더더욱 잘한 일일 테니.
간혹 어딘가 아파서 병원에 가면 그럴 때가 있다. 집에선 정말 아팠는데, 병원에만 가면 말짱해지는. 이번에도 그러지 않을까 괜히 마음이 졸였다. 왜냐하면 집에서 출발해서 병원에 도착하고 수축 검사를 위해 배에 장치를 부착할 때까지 배뭉침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천장을 바라보며 바로 누웠고, 간호사님은 내 높이 솟은 배에 차가운 메탈 장치 두 개를 올려놓고 고무밴드로 고정시켰다.
뚜구- 뚜구- 뚜구- 뚜구-
무척 빠른 비트로 아기의 심장소리가 들렸다. 우리 아기의 심장... 잘 뛰고 있구나, 안도했다. 심장박동 소리와 함께 또 다른 기계음이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프린트기처럼 생긴 기계가 빨간 눈금이 촘촘하게 그어진 종이를 천천히 내뱉고 있었다. 그 종이에는 검은색 선이 끊임없이 그어지고 있었다. 마치 지진의 파형 그래프 같았다. 잔잔하게 오르락내리락 반복하는 물결 그래프가 찍혔다.
그런데 한 5분쯤 지났을까 배가 딱딱해지면서 수축이 느껴졌다. 나는 재빠르게 종이를 쳐다보았다. 시종일관 잔잔하던 파형은 이제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며 위로 치솟았다가 배의 통증이 가라앉을 즈음 같이 하강하며 다시 잔잔해졌다. 그렇게 40분 정도 모니터링을 했고, 나는 그동안 4~5번의 수축을 느꼈다. 수축의 강도는 점점 세고 강한 통증을 동반했다. 집에서는 '통증'이라고 부를 만큼의 수축은 없었기 때문에 적잖이 당황했다. 이게 바로 출산의 고통의 예고편인 것인가! 예고편이 이 정도면 본편은 어느 정도란 말인가?!
검사가 끝나고 당직 의사 선생님께서는 바로 입원해야 한다는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하셨다.
'네? 이렇게 바로요?'
내가 더 지체하지 않고 병원을 찾기를 잘했다는 뿌듯함과 안도의 감정을 충분히 느끼기도 전에 내 오른쪽 팔에는 링거 주사기를 통해 라보파라는 약물이 투여되고 있었다. 약이 들어간 지 몇 분이 지나지 않았는데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간호사님께서 라보파를 맞으면 심장 두근거림, 손 떨림 등의 부작용이 생길 수 있는데 너무 심하지 않다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니 너무 놀랄 필요는 없다고 했다.
한쪽 팔에 주사기가 꽂혀 있어서 핸드폰을 하기가 어려웠다. 남편은 나의 갑작스러운 입원에 급히 집으로 돌아가 필요한 짐을 챙겨 오기로 했다. 핸드폰도 대화할 사람도 없어서 그저 병원 천장만을 바라보며 무료한 이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응급실에서 라보파를 맞은 지 한 시간이 지났을 즈음 드디어 제대로 된 병실로 옮길 수 있었다. 2인실을 사용하기로 했는데 다행히 나뿐이었다. 딱딱하고 불편한 병원 침대에 누운 지 몇 초도 안되어 집이 그리웠다. 여기에선 단 한 시간도 편히 잘 수 없겠다란 예감이 들었고, 내 예감은 그대로 적중했다. 어느 방향으로 누워도 불편했다. 게다가 한쪽 팔에 주사기가 꽂혀 있으니 편한 자세를 찾기가 더더욱 어려웠다.
그렇게 3박 4일간 입원을 하고 퇴원을 할 수 있었는데 그 3박 4일간의 이야기는 자세히 적고 싶지가 않다. 끼니때마다 잘 차려진 식사가 제공되었다는 것 말고는 하나 같이 불편하고, 힘들었던 일뿐이었기 때문이다. 통잠은 1~2시간씩 밖에는 자지 못했고, 병실이 너무 건조한 탓에 첫날부터 코가 막히고 헐었다. 조산의 위험 때문에 24시간 거의 웬만하면 누워만 지내야 했기 때문에 허리는 끊어질 듯 아팠고, 1시간에 한 번씩 요의가 느껴져서 아주 성가셨다. 그래도 약이 꽤 잘 들어서 입원 다음날부터는 자궁 수축이 거의 없었고, 비교적 빠르게 퇴원할 수 있었다.
퇴원 후 지금까지 집에서 계속 대부분의 시간은 침대에 누워서 보내고 있다. 식사를 할 때나 화장실에 갈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침대에 누워있기 때문에 잠자는 패턴이 엉망이 되어버렸다. 오늘도 오후 3시쯤 낮잠을 길게 자버려서 새벽 3시가 지난 지금도 눈이 말똥말똥하다. 병원에서는 오래 앉아있는 것도 피하라고 했지만 오래간만에 책상에 앉았다. 글이 너무 쓰고 싶어서 참을 수가 없었다. 이제 일주일만 더 버티면 언제 출산을 하든 안정권이라고 했으니 몇 시간 앉아있는 것쯤이야 괜찮겠지 싶다.
이렇게 글로 시간을 잡아두지 않으면 자꾸만 소중한 시간들이 기억 속에서 증발한다. 난임 병원에서 임신을 준비했던 과정도 그렇고, 임신 초기에 겪었던 괴롭지만 신기했던 경험들도 모두 제때 기록을 하지 않으니 기억이 선명하지 않다. 그 누구를 위해서라기보다 나를 위해서 더 자주 글을 써야겠다. 온전히 나를 위한 글쓰기지만 지금으로부터 십몇 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는 나의 '우주'와 함께 이 글을 읽으며 "그땐 그랬지"하고 미소 짓고 있을지도.
그 시간이 천천히, 그렇지만 확실히 나에게 다가와주길...
(*우주는 우리 부부의 소중한 아이의 태명이자, 이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