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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뮤 Sep 22. 2019

극한추석(시댁편)

시댁과 친정, 두 가족이 추석을 보내는 방법

극한추석(시댁편)

 몇시간째 작은 방에 갇혀있다. 점심식사 후 설거지까지 마친 다음에 작은방에 들어왔으니 세 시간쯤 지났을 것이다. 남편은 누가 밥에 수면제라도 탔는지 여태 코를 골며 자고 있다. 본인은 굉장히 큰소리로 코를 골면서도 옆에서 누가 조금만 뒤척여도 깨버리는 예민한 인간이라 최대한 방해가 되지 않도록 누워서 핸드폰만 줄창 들여다보고 있는 중이다. 부동산 카페에 들어가서 예의주시하고 있는 동네 게시판 글을 쭉 훑고, 구독하고 있는 브런치 작가의 밀린 글을 정독하고, 간만에 인스타도 들어가 친구들이 올린 여행사진이나 아이들 사진을 빠짐없이 챙겨 봤는데도 남편은 물론이고 시부모님의 기척은 없다. 새벽같이 일어나 아침밥을 준비하고 분주히 집안일을 하신 어머님이 낮잠을 주무시는 것은 이해가 가고도 남으나 시댁에 와서 기껏해야 식탁에 반찬 좀 나르고 내가 설거지할 때 옆에와서 조금 거드는 일 말고는 아무것도 한게없는 남편은 왜 여태까지 일어나지 않는지 정말 의문이다.


  이 집안에서 유일하게 잠이 별로 없으신 아버님은 거실 티비 앞 돌침대에 누우셔서 3시간째 미스트롯을 정주행 중이시다. 평소 고향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이 대단하신 아버님은 송가인에 푹 빠지셨다. 그녀의 트로트 실력이야 넘사벽이라는 것을 익히 알지만 그녀가 전라남도 출신이 아니었다면 아버님이 이렇게까진 열광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매 회 누구 다음에 송가인 무대가 나오는지, 심사패널들의 반응은 어땠는지, 각 무대별 정확한 점수까지 꿰고 있으시면서도 채널을 돌리지 않으시는 아버님의 모습에 '존경'이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작은방에서 불도 못 켜고, 소리도 못 내고 남편이 깨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리자니 좀이 쑤셔 죽겠지만 거실에 나가서 아버님과 미스트롯을 보며 앉아있는 것도 난감한 일이다. 일단 아버님은 며느리와 단둘이 있는 상황을 무척 어색해하신다. 한 번은 거실에서 남편과 나 그리고 아버님 이렇게 세 사람이 야구중계를 본 적이 있었다. 한참 보고 있는데 안방에서 친구분과 긴 통화를 하시던 어머님께서 잠깐 나오시더니 남편에게 심부름을 시켰다. 남편이 슈퍼를 다녀오겠다며 나가버리자 자연스레 거실에는 아버님과 나만 남게 되었다. 대문이 닫히기도 전에 이미 거실은 어색함으로 점령 당했다.  

 티비 속 야구선수들은 이 거실의 사정은 아무것도 모른채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이어나갔다. '어색함'이라는 입자가 공기 중으로 둥둥 떠다니는게 보이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이 분위기를 반전시키고자 아버님에게 말을 걸었다. 서로 공통주제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야구 용어에 대한 질문을 몇 개 하는 것이 자연스럽겠다고 생각했다. 야구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지만 박민규 작가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라는 책을 워낙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있어 '병살타'라든지 '삼중살'이라는 용어는 대충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는 '야구는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무구한 며느리'가 되는 편이 전략적으로 덜 어색할 것이라 판단했다. 최대한 호기심이 넘치는 목소리로 "아버님 자꾸 병살타, 병살타 하는데 그게 무슨 뜻이에요?"라고 물었다. 

 아버님은 아무 소리도 못 들으신 것처럼 몇 초간 아무런 말씀도 미동도 없으셨다. 내 이야기를 들으시긴 하신건가 싶어 옆을 쳐다보니 내 시선이 큐사인이된 것처럼 입을 떼셨다.

  "저 시끼가 다 된 밥에 재 뿌려부러따." 

 약간 어리둥절했지만 내 질문 대한 아버님의 설명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혹시몰라 조금 더 전문적인 설명이 이어지지 않을까 기다렸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내가 병살타를 알고 있지 않았더라면 엄청나게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병살타 = 어떤 새끼가 다 된 밥에 재 뿌린 것. 

 나는 그 대답이 모든 궁금증을 해소해주었다는 듯이 크게 감탄하며, "아~~~ 저 선수 때문에 갑자기 다 아웃된거구나"했다.  

 나의 2번째 질문, 3번째 질문도 다 그런 식의 대답이 돌아왔다. 다만 내가 4번째 질문을 던졌을 때 달라진 점이라면, 대답을 해주실 아버님이 그 자리에 없었다는 것 정도. 그렇다. 며느리와의 독대 10분만에 아버님은 공식적인 본인의 지정석을 박차고 안방으로 들어가신 것이다. 아버님의 돌침대에 홀로 앉아 느꼈던 그때의 그 씁쓸한 승리감을 떠오르자 아버님을 위해서 이 작은방에서 조금 더 갇혀있기로 한다.


 다행히 남편이 꼼지락 거리며 일어날 기미를 보였다. 나는 이때다 싶어 뻐근한 허리를 펴고 침대에 일어나 앉았다. 남편은 눈을 뜨더니 "왜 안 자고 일어나 앉아있어?"라고 물었다. 나는 아랫입술을 삐죽이며 "여보 심심해 죽겠어. 여보가 밥 먹는 시간 말고는 하루종일 자니까 이 작은 방에 감금된 거 같아"라고 투덜거렸다. 본인이 생각해도 좀 너무했다 싶었는지 "우쭈쭈, 그랬어? 미안미안. 아 왜 이렇게 피곤하지? 그럼 자기 혼자라도 좀 나가서 산책이라도 하지 그랬어?"라고 했다. 

 사실 혼자라도 잠깐 나갔다 올까 생각도 해봤다. 하지만 길도 모르는 낯선 동네라 무섭기도 했고, 며느리 혼자 바람쐬고 오겠다며 하면 시부모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실지 알 수가 없어서 몸을 사렸다. 미친듯이 지루했지만 나의 이 지루함을 시부모님께 들키고 싶지 않았달까? 


 어릴적부터 가족끼리 시간을 많이 보냈던 우리 가족과는 달리 식사때 아니면 각자의 방에서 휴식을 취하는 이 집안의 로우텐션은 아직도 적응이 안된다. 며칠 동안 있어도 식사, 설거지, 낮잠의 무한 루프다. 확실히 아들만 있는 집안은 다른건가 싶기도 했다. 도련님이 와도 매한가지기 때문이다. 그나마 이 집안 두 아들들이 쌩쌩할 때는 밤시간인데, 일 년에 몇 번 안되는 명절때만 집에 오기 때문에 꼭 밤에는 동네친구들과 약속을 잡는다. 

 남편은 친구들과의 모임에 항상 나를 같이 데려가려고 했다. 처음 몇 번은 친구들에게 나를 소개해주고 싶어서 그런가 싶어 내심 기분이 좋아 따라나갔는데 몇 번 나가보니 그냥 내가 따라나가야 본인 마음 불편하지 않게 친구들이랑 신나게 놀 수 있어서 그렇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후로는 굳이 불편한 그 자리에 끼지 않고 남편 혼자 다녀오라고 한다. 매년 별로 다르지 않은 그들의 레파토리도 지겹고, 일단 낮에 내내 자다가 술이 들어가자마자 한껏 텐션이 올라 시끄럽게 떠드는 남편이 꼴뵈기 싫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나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시댁에서 작은방 붙박이 신세를 진다. 쉴틈없는 노동지옥에서 헤어나올 길 없던 앞선 세대의 며느리들에 비하면 정말 복에 겨운 소리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다른 누군가의 추석과 내가 겪은 경험을 비교하려는 의도는 없다. 그저 결혼을 통해 내가 길러진 환경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추석을 지내면서 느낀 것들을 적어보고자 했다. 


 남편을 위한 수면용 안대와 귀마개, 중독성 강한 핸드폰 게임과 여분의 핸드폰 베터리는 나의 다음 추석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자고로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다.









극한추석(친정편)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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