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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뮤 May 02. 2024

방심하면 피를 본다

둘째 임신은 뭐 하나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시험관을 결심한 것도 충동적(?)이었는데, 사실 정말 둘째를 가지고 싶다는 마음보다는(물론, 그런 마음도 있었지만) 스스로 이 정도면 나로서는 '최선'을 다했다는 결정적 제스처가 필요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자연임신이 힘든 우리 부부기에, 하나 남겨둔 냉동배아를 이식하는 것은 최선의 그리고 최후의 수단이었다. 이 시험관 시술이 실패로 돌아가도 나는 조금 떳떳하게 둘째 임신에 대한 책임이나 죄책감을 덜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늘에 맡겨보자! 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이런 심정이랄까.


그래서 솔직히, 이번에 단박에 둘째 임신이 성공할 거라는 생각을 크게 하지 않았다.


예상은 못했지만, 임신인 것을 알고 나서 진심으로 기쁘고 행복했다! 우리에게 둘째라니?! 벌써부터 꽁냥꽁냥 노는 두 아이를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는 우리 부부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그런데 다른 글에서도 말했듯이 6주 차에 예상치 못한 하혈을 시작으로... 2주째 눕눕(일명, 눕고 또 눕기)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맘카페에 들어가 '눕눕' 기준이 무엇인지 좀 찾아봤는데... 정말 식사, 화장실 등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고서는 계속 누워있는 것이 정석이라고 했다.


6주 차에 하혈 너무 많이 한 이후 3일간은 정말 꼼짝 안 하고 누워있었다. 먹고 더부룩해 또 하혈이 두려워 누웠다. 그렇게 누워만 있으니까 정말 피가 멈췄다. 좀 쑤시고, 소화가 안되고, 괴로워도 피가 멈춰 다행이었다.


3일째 후에는 조금 앉아 있기도 하며 살짝 고삐가 풀렸다. 그래도 큰 일은 없었다. 갈색 피 비침이 있었지만, 흐르는 피는 아니라 걱정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어제, 그러니까 마지막 병원진료 이후로 5일째 되던 날... 도저히 답답해서 못 견딜 정도로 집에만 누워있던 나는 저녁에 딸아이와 남편이 산책을 나간다기에 "나도"하며 겉옷을 챙겼다.


5일 동안 정말 거짓말하지 않고 현관문 밖에 나가본 적이 없었고, 대부분 누워서 지냈기에 잠깐의 산책이 큰 무리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내가 누워만 지내는 동안 날씨는 참 따스해져 있었다. 밤산책하기에 딱 좋은 날씨였다. 춥지 않고, 적당히 선선하고 공기는 상쾌했다.


2주간 잘 놀아주지도 않고 누워만 있던 엄마가 같이 나가니 기분이 좋았는지 딸아이는 고사리 같은 손으로 내 손을 흔들며 걸어갔다.


"엄마! 이리 와봐요"하며 나를 이끄는 딸아이를 따라 조금 빠른 걸음으로 걸었더니 아랫배가 조금 당겼다. 그래봤자 조금 빠른 종종걸음이었는데... 고까짓 속도에 힘든 나 자신이 참 한심했다.


남편에게 나는 정말 천천히 가야겠다며 아이를 부탁하고 뒤에서 느릿느릿 사이좋은 부녀를 따라 걸었다.


아이와 남편이 공원에서 노는 동안 나는 벤치에 앉아있었다. 3~40분 정도 밤공기를 마시며 나와있으니 살아있는 기분이 들었다. 집에서는 우울을 뒤집어쓰고 누워있었는데... 역시 사람은 바깥공기를 쐬야 하는구나 새삼 느꼈다.


다시 천천히 집으로 걸어갔다. 다시 좁고 갑갑한 나의 아파트... 잠깐 걸었는데도 힘이 빠진 나는 도로 이불속으로 직행했다. 그리고는 한동안 누워서 에너지를 채우고 요의가 느껴져서 화장실에 갔다.


오 마이갓.


또, 피다.


방심하면 이렇게 피를 보는구나. 며칠 피 비침도 없어지고 컨디션도 조금 좋아져서 고삐를 조금 풀었더니... 다시 또 피다.


에잇.


다행인 건 흐르는 피는 아니고, 아마 고여있던 피가 조금 나온 것 같다. 아휴... 달콤한 밤산책의 대가가 이거라니. 당분간은 피가 멈췄다고, 컨디션이 조금 좋아졌다고 방심하지 말고 조심, 또 조심해야지.


딱, 1년만 고생하자! 아기 낳고, 훨훨 나는 기분으로 30분 달리기를 다시 시작하는 그날까지 나는 내 몸이 아니다.


둘째야, 건강하게만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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