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다 되네?!
그 여자는 옳구나 싶어 여자 사는 셰어하우스에 아무리 남자 사장님이라도 이렇게 들어오면 불법이며 신고하겠다고 적반하장의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아니... 본인이 셰어하우스 계약을 먼저 위반하고 외간 남자 둘이나 불러 술판 및 고성방가를 일삼고... 그걸 듣고 찾아온 주인에게 할 소리인가?
하지만 남편은 그녀의 논리에 당황했고, 그 표정을 놓치지 않은 그 여자는 갑자기 울었다고 한다.?!!!! 그전까지는 싸가지 없음과 드센 기운으로 맞받아치더니 한순간에 덜덜 떨며 울고 무섭다고 피해자 코스프레를 했단다. '니.. 네가 더 무서워...'
완전히 그녀의 페이스에 휘말린 남편은 "사장님, 어찌 되었던 오늘 일은 죄송하고 다음부턴 주의할 테니 그냥 계약 끝날 때까지 살게 해 달라"는 말에 맥없이 오케이를 하고 나왔다. 그날 남편은 나보다 더 분노하며 하루 종일 씩씩댔다. 그때 알았다. 맨날 나한테 훈수 두며 잘난 척하던 남편이 실은 나보다 더 간이 작고, 초예민자였다는 사실을...
그때 당시 나는 심지어 난임병원을 다니며 임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임신에 번번이 실패하는 게 그런 사람들에게서 받는 스트레스 때문은 아닐까 괜히 속상했다. 남편에게 세입자들에게 오는 연락을 모두 일임하고 나는 최대한 안정 속에서 임신을 준비하기로 했다.
남편은 그 여자의 전화가 올 때마다 심장이 떨리고, 입이 바싹 마른다고 했다. 한참 어린 이십 대 여자가 이렇게 무서울 수도 있구나 그때 처음 알았다. 자기 일이 아닐 때는 나를 세상 나약한 민감자 취급하던 남편이 얄미웠지만, 동시에 불쌍했다. 우리는 어서 그녀의 계약 기간이 끝나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그 여자가 나가던 날, 우리는 옆방 룸메이트에게 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그날 이후로도 그녀는 종종 남자들을 데려왔고, 심지어 방에서 별풍선을 받는 종류의 스트리밍까지 했었다고 했다. 그녀가 이사 나간 방을 살펴보려고 가니, 방에 커튼까지 싹 뜯어간 걸 발견했다. 내 마지막 남은 인류애 한 방울이 커튼과 함께 사라졌다.
그녀가 이사 나가고 다른 방 사람들도 모두 계약기간이 종료되어 나갔다. 나는 학을 떼고 다시는 셰어하우스의 '셰'자도 꺼내지 않았다. 에어비앤비는 진상을 만나도 며칠만 견디면 되지만, 셰어하우스는 한 번 사람을 잘못 들였다간 몇 개월 동안 시달린다는 걸 배웠다.
다행히 그동안 홍대에 얻은 1호점의 월세 계약이 종료되어 정리할 수 있었다. 세계는 아직 팬데믹의 영향으로 뒤숭숭했다. 코로나로 인해 에어비엔비로 벌어들이던 수익은 오히려 마이너스로 돌아섰고, 잘 다니던 학원 아르바이트는 확진자 수가 늘 때마다 쉬었다 재개했다를 반복했다. 하루 종일 남편이 퇴근하기를 기다리며 어둡고 좁은 방에서 기다리는 날이 많았다. 당시 유일한 외출은 난임병원 진료였다. 그러나 그것도 썩 기분 좋은 외출은 아니었기에 나는 급격히 우울해졌다.
결혼 후 3년이 되도록 찾아오지 않는 아기천사를 기다리고, 아침 일찍 출근했다 늦게 들어오는 남편을 기다리고, 어서 빨리 코로나가 종식되길 하염없이 기다렸다.
내 삶에서 가장 어둡고 우울했던 한 시기가 끝나가고 있었다. 바야흐로 2021년! 멈추었던 긍정회로가 어느 한순간에 다시 돌기 시작했다. 정말 아무런 특별한 일도 없었다. 여전히 남편의 월급은 홍대 에어비앤비로 얻은 두 집 월세에 고스란히 바쳐야 했고, 나는 난임병원을 다니며 N차 인공수정을 준비하고 있었다. 곤두박질쳤던 인생이 다시 위로 튀어 오를 거란 걸 내 무의식이 먼저 알아차린 걸까? 머릿속에 누가 일부러 주입한 것처럼 이 말이 자꾸만 떠올랐다.
된다, 된다, 다 된다!
2021년이 되어 나는 난임병원을 바꿨다. 나처럼 난임으로 고생하던 이웃 블로거가 한방에 임신이 되었다는 병원 원장님께 예약을 했다. 예감이 좋았다. 그러나 내 이성은 김칫국을 마시지 말라고 경고했다. 나는 내가 너무 들뜰까 봐 임신과 상관없이 내 커리어를 쌓는데 몰두하기로 했다.
중구난방으로 운영하던 블로그를 새롭게 재정비했다. 코로나로 인해 줌 수업이 점차 확대되던 시기였다. 나는 파닉스 수업이라는 나만의 강력한 콘텐츠가 있었고, 충분히 온라인 수업으로 이끌어갈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블로그 리브랜딩을 하고, 파닉스에 관련된 글을 차곡차곡 쌓았다. 그러다 어느 날 1일 1 포스팅 모임에서 알게 된 이웃님께서 내가 준비하려고 하던 파닉스 특강을 시범 삼아 자신에게 한 번 해주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어라? 이거 꽤 괜찮은 아이디어네?'
목적이 생기니 일사천리로 자료를 만들었다. 그리고 줌으로 만나 편안한 마음으로 강의했다. 내 강의가 끝나자 그 이웃분께서는 아낌없는 칭찬과 응원을 보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약간의 두려움과 망설임이 있었는데, 이후 정규수업까지의 빠른 실행에 결정적인 힘을 실어주셨다.
2021년 초는 내 인생에서 가장 바쁘고, 가장 생산적인 해였다. 블로그 운영, 학원 아르바이트, 영어미술 자격증 취득, 영어음소 수업 수강, 셰어하우스 관리, 매일 걷기 운동, 브런치 글쓰기, 시험관 준비! 우울에 빠져 허우적거리지 않도록 나의 하루를 빼곡하게 채워 잡생각을 몰아냈다.
매일의 루틴이 나를 우울의 늪에서 한 발자국씩 빠져나오게 했다. 큰 반응은 없어도 블로그든 브런치에 나의 창작물이 쌓이는 것도 성취감이 컸다. 더 이상 내가 쓸모없는 잉여인간이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렇게 긍정의 조각들을 하나씩 모으다 보니 강력한 한방이 빵! 하고 터졌다.
그 해 4월, 결혼 3년 만에 임신에 성공한 것이다! 된다, 된다, 다 된다를 외쳤더니... 와, 뭐야 진짜 다 되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