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퇴사러의 꿈
맞아... 내가 이래서 반했었지. 남편에겐 내게 없는 게 있었다. 수학머리, 치밀한 계산 능력, 데이터 분석력...
내가 감으로, 깡으로, 몸으로 부딪혀 무언갈 열심히 하고 있으면 그는 뒤에서 조용히 지켜보다가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전체를 파악하고 해결책을 안겼다.
'하... 거들먹거리지만 않았어도 딱 내 이상형인데...'
남편은 그날 이후로 한동안 본인의 영웅담에 심취해 있었다. 고맙지만, 거슬렸다. 심히 거슬리지만, 나는 그를 향한 우쭈쭈를 멈추지 않았다. 그의 도움으로 내 블로그 수치가 쭉쭉 올랐다.
하지만 핫한 키워드에는 심각한 부작용이 있었다. 이슈가 사라지고 나면 바람 빠진 풍선 마냥 블로그 방문자가 확 빠졌다. 우리 부부는 일일 방문자 수에 중독되었다. 한번 높은 숫자를 맛보니, 밤낮으로 핫이슈 키워드 사냥을 하며 그 숫자를 유지하려 발버둥 쳤다. 어느샌가 정신을 차려보니 남편은 공기업 시험 준비보다 블로그에 더 정신을 팔고 있었다.
블로그 일일 방문자가 확 늘자, 그때부터는 신청한 체험단은 거의 대부분 뽑혔다. 매일 저녁 체험단으로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했다. 주말은 아예 데이트 풀코스를 체험단으로 채웠다. 남편이 공부를 제대로 안 하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그저 같이 돌아다니고, 먹고, 노는 게 즐거워 나도 흐린 눈을 했다.
두 달쯤 그런 생활이 이어졌다. 에어비앤비는 풀부킹, 학원 알바는 평화 그 자체, 블로그 체험단은 늘 짜릿했던 2019년 말. 드디어 금맥을 발견한 줄 알았던 나의 풀스윙 삽질이... 사실 험한 것을 건드렸단 걸 곧 깨닫게 되었다. 코로나가 온 세상을 덮친 것이다.
공교롭게도 코로나 소식이 중국에서 막 솔솔 풍겨오던 그때, 나는 에어비앤비를 확장하려 계획 중이었다. 부자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했다. 이 상승기운을 타고 수익을 늘리려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이젠 언덕이 없는 평지 매물을 더 높은 가격에라도 인수하리라 마음먹었다.
홍대에 2호, 3호 계약서에 사인한 날, 한국에 첫 확진자 뉴스가 들려왔다. 예약이 연달아 취소되고 새로운 예약은 당연하게도 뚝 끊겼다. 하지만 이미 계약서에 사인을 했고, 나는 이 시기만 잘 버티면 결국 승자는 나라고 생각했다. 코로나가 전 세계 사람들의 3년을 앗아갈 줄은 꿈에도 모르던 때였다.
그러던 어느 날 프로퇴사러 남편은 난데없이 취직을 했다. '난데없다'는 표현은 과장이 아니었다. 어느 날 하루아침에 취직을 해버리고(?) 그날 저녁 나에게 통보를 했으니 말이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물었다.
"여보, 준비하던 공기업 시험은?"
"코로나 때문에 시험이 없을 수도 있고, 이번엔 뽑더라도 정원을 확 줄인다더라"
"그래도 거의 1년을 준비했는데 시험이라도 보지.."
내 눈에는 남편의 취직이 회피처럼 느껴졌다. 남편의 회피스킬은 이미 무수한 부부싸움을 통해 똑똑히 확인했던 터라 일면 납득이 갔다. 다만, 왜 하필 그 취직이 일과 삶의 밸런스가 전혀 보장되지 않는, 팀원이 2명뿐인 스타트업이었는지가 계속 궁금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나는 그의 극단적인 선택들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그를 제대로 이해하기 시작한 것은 그때로부터 3년이 더 지나서였다. 해서, 그때의 나는 그저 남편이 하는 말을 표면 그대로 받아들이고, 해석하고, 이해하려 부단히도 노력했다.
그는 그전까지는 왜 공기업에 취직해야 하는지를 침이 마르도록 설명했지만, 그날은 왜 공기업은 자신이 원하는 삶과 다른지 열변을 토했다. 반면 스타트업은 자신이 주도적으로 모든 영역의 일들을 도맡아 하면서 배울 게 있다고 피력했다. 그 뒤에 자신은 나중에 꼭 사업을 할 거라는 말을 덧붙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작은 회사의 성장을 돕는 역할을 해보는 경험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엄청난 속도로 내가 끼어들 틈 없이 쏟아낸 남편의 말을 0.7배속 하듯 다시 되뇌어봤다. 물음표가 남편의 문장 사이사이로 잔뜩 끼어들었다. 나는 차분하게 다 듣고, 하나씩 의문을 해소하기 위한 질문을 했다.
"왜 지금이야? 자격증 시험 신청해 둔 것도 아직 안 봤잖아."
남편은 이력서를 업데이트해 둔 사이트에서 최근 어떤 스타트업 대표가 커피챗을 하자고 연락이 와서 가벼운 마음으로 나갔다고 했다. 그런데 사업 아이템이 일단 마음에 들었고, 너무도 자신과 함께 일하고 싶어 하는 모습에 기분이 좋았다고 했다.
공기업은 이 스타트업에서 일하다 퇴사를 또 하더라도 시험만 잘 준비하면 들어갈 수 있지만 이 제안은 놓치면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라 했다.
남편 나름의 논리가 완벽했다. 남편은 인정욕구가 굉장히 강한 편이다. 근 1년 간 백수로 지내다 팀원 영업에 진심인 스타트업 대표의 사탕발림(?)이 얼마나 강력한 도파민이었을지 상상이 갔다. 납득하고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사업? 근데 한 번도 나한테 사업하고 싶다거나 꿈이라는 말 한 적 없잖아."
"항상 꿈이었는데? 지금 말하잖아. 난 돈을 벌려면 결국 사업 밖에는 없다고 항상 생각해 왔어. 무슨 사업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꼭 사업을 할 거야."
남편의 대답이 너무 당당하고, 너무 대책이 없어서 두 귀를 의심했다. 아니... 사업이 이렇게 철부지 어린애처럼 접근해도 되는 꿈인 걸까? 그 순간 집안에 험상궂은 사람들이 쳐들어와 빨간딱지를 붙이는 클리셰한 장면이 머리에 스쳤다. 젠장... 내가 어떤 인간이랑 결혼을 한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