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의 탄생과 남편의 퇴사
첫째는 뱃속에서부터 시계를 째려보고 있었다. 예의 바르고 참을성 있게 예정일까지 얌전히 기다리다, 예정일 정각이 되자 '자 이제 슬슬 나가볼까?' 하곤 자궁문을 두드렸다.
전날까지도 아무런 전조(이를테면 이슬이나 가진통)가 없어서 이틀 뒤에 유도분만 예약을 잡고 돌아왔는데 그날 새벽 진통이 시작되었다.
첫 출산은 무엇을 예상해야 하는지 아무것도 알 수가 없어서 두려웠다. 물론 정보는 넘쳐났다. 출산 과정에서부터 회복까지, 여러 선배엄마들은 열과 성을 다하여 유튜브나 블로그에 자신들의 경험담을 생생하게 들려주었다. 그러나 그런 글들은 갓난아기에게 인생을 논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나는 투명하고 맑은 눈으로 그 경험담을 읽었다. 그 무엇도 진정 마음과 머리에 '앎'이라는 형태로 저장되지 않았다.
나는 무려 17시간 동안 진통을 했다. 자궁문이 2cm에서 도저히 더 열리지 않았다. 14시간쯤 생진통을 하고서야 3cm가 열려, 무통주사 천국을 맛보고 아이를 낳았다.
후루룩, 몸속에서 빠져나온 아기가 곧 내 품에 안겼다. 이상했다. 마치 권투경기 결승전까지 갔다가 패배한 얼굴이었다. 힘겨운 출산으로 정신이 몽롱한 와중에도 나와 남편과 닮은 구석을 찾아보려 열심히 훑어봤다. 정녕 우리의 DNA를 가지고 태어난 아기가 맞을까? 의심스러웠던 찰나 나와 똑 닮은 세모난 입술에 속으로 웃음이 터졌다.
'영락없는 나구나, 너.'
17시간 진통은 신생아 육아에 비하면 명함도 못 내밀 수준이었다. 코로나가 만연한 시절에 태어나 '조리원천국'은 '조리원감옥'행이 되었다. 황금 같은 연말 연휴를 모조리 화장실 달린 방에 갇혀서 지낸 셈이다. 남편과의 면회는 조리원 출입문에서 잠깐 가능했다. 결혼 이후로 서로가 그렇게 애틋했던 적이 없었다.
출산으로 손목이 나가고, 회음부는 뾰족한 실밥에 찔려 불에 타들어가듯 아팠고, 젖꼭지는 아기에게 뜯겨 피와 진물이 났다. 사지 멀쩡한 곳이 없었다. 그런데도, 매일 일기장은 아이에게 보내는 사랑의 세레나데로 빼곡했다.
결혼으로 나는 다시는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너왔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사실, 결혼으로 건너온 강은 서로 합의만 한다면 몇 번이고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출산은 정말, 정녕, 진실로, 결단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강이었다.
일단 내 육체가 돌이킬 수 없었다. 그리고 평생 이렇게 강한 사랑은 처음 느꼈다. 남녀 간의 사랑이 제아무리 뜨겁다 하더라도, 아이를 향한 모성은 맹목적이고, 진하고, 질겼다.
출산 후 100일이 지날 때까지는 무슨 정신으로 살았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절대 익숙해지지 않는 피로와 육체적 고통으로 점철된 그 시절... 사진첩엔 온통 첫 아이와 때때로 바보처럼 웃고 있는 남편과 피곤에 절었지만 역시나 웃고 있는 나뿐이라는 것이 아이러니했다.
육아에 잠시 정신이 팔려서 뭔가 잊고 있는 게 있었다. 생각해 보니... 남편이 스타트업에 취직한 지 만 1년이 넘어가고 있었다. 우리 프로퇴사러가 아이가 태어나서 책임감이 더 생긴 걸까?
훗, 그럴 리가.
남편은 역시 프로였다. 프로퇴사러는 때를 가리지 않는 법. 그는 느닷없이 취직하더니, 느닷없이 퇴사를 갈겨(?) 버렸다. 첫 아이 6개월 때였다. 하지만 예상은 하고 있었기에 잠시 어안이 벙벙해졌다가 이내 평정심을 찾았다.
남편은 퇴사를 하기 반년 전부터 슬슬 기미를 보였다. 처음엔 자신을 알아봐 준 대표를 칭찬하기 바빴다. 사업 아이템의 성장 가능성과 핑크빛 미래에 대한 예찬이 매일 이어졌다. 그러다 조금씩 회사에 대한 불만이나 대표에 대한 불만 섞인 투정이 새어 나왔다. 그 투정은 비탈길의 눈덩이처럼 점점 크고 거대해졌다.
정신을 차려보니, 그 투정은 왜 퇴사를 해야 하는지 설득하는 장광설이 되어 있었다. 앞선 두 번의 퇴사와 마찬가지로 남편의 주장은 매우 논리적이고 타당했다. 그가 다니던 스타트업은 곧 투자유치를 앞두고 있었다. 그러면 더 잘된 일 아닌가? 싶겠지만 여기엔 문제가 있었다.
막상 투자유치에 성공하면 거기에 상응하는 성과를 반드시 내야 했고, 그 책임은 고스란히 남편의 어깨에 올라가게 되어 있었다. 왜냐하면, (남편의 말에 의하면) 대표가 무능력했기 때문이다. 이 사업 아이템을 실현시키기에 기술적 이해도가 매우 떨어지고, 매끄러운 의사소통이 어려울 정도로 합이 맞지 않았다. 사람은 착했다. 그런데 리더로서는? 갸우뚱을 넘어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게 만드는 캐릭터였다고 한다.
수장의 카리스마가 이미 바닥에 떨어진 상태에서 괜히 코가 잘못 꿰였다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고통받을 미래가 훤히 보여 또 도망치듯 퇴사를 선택한 것이었다.
남편은 이번 스타트업 근무로 또 배운 것이 많다고 했다. 바로, 자신이 말한 '뭔지 모르지만 나중에 꼭 사업을 할 거야!'에서 '스타트업 창업'이 제거되었다는 것이다.
이야... 정말 값진 교훈이로구나, 여봐라 어서 꽹과리를 울리고 풍악을 울려라! 에헤라디야... 눈에서 땀이, 아.. 아니 기쁨의 눈물이 흘렀다.
남편은 이제 다시는 회사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했다. 이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자기 사업을 시작해 볼 것이고 하다못해 시장에서 생선을 파는 한이 있어도 나와 아이를 먹여 살릴 테니 자신을 믿어 달라고 했다. 나는 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지지했다. 당시 내 속사정은 이러했다.
나는 남편이 그제야 사회가 정한 안정적인 트랙에서 스스로 빠져나온 것이 기뻤다. 남편은 그제까지 남의 인생 족보를 답습하며 살았다. 어릴 때는 동네에서 가장 공부를 잘한다는 형이 다니던 학원을, 학창 시절에는 상위권 아이들만 듣는다는 과외를, 대학도 수능 성적에 맞춰 가장 좋은 곳, 친구 따라 선택한 대학원 연구실, 연구실 선배 따라 선택한 첫 직장, 대학동기가 다니고 있던 두 번째 직장. 남들의 뒤꽁무니만 쫓다가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살아온 그의 인생을 나는 애석하게 생각했다. 시부모님에겐 자부심일 그의 행로가 나에겐 그저 애처롭고 텅 비어 보였다.
나는 속으로 남편이 대차게 실패하기를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