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내 조언을 듣고, 퇴사 6개월 만에 외부활동을 조금씩 늘려갔다. 1회성 오프라인 강의를 들으러 가기도 했고, 온라인과 오프라인 모임이 연계된 한 두 달짜리 네트워킹 모임을 가기도 했다.
남편은 모임에 참석하고 나면 생기가 돌았다. 그동안은 공장에서 찍어낸 듯 같은 결의 삶을 사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던 그는 세상에 얼마나 다양한, 제각각의 삶이 존재하는지 사업모임에 온 사람들을 통해 목격했다.
심지어 비정형의 삶을 살아온 그 사람들은 가방끈은 짧을지언정 돈 버는 것에 있어서만큼은 남편을 압도했다. 누구는 양말 도매로, 누구는 닭꼬치로, 누구는 생선 손질로 큰돈을 벌었다고 했다. 겉으로 볼 때 우아하진 않을지 모른다. 그런데 그래서 그게 뭐? SKY 나와서 세상물정 모르고 월급이나 받다가 겨우 40대나 50대에 회사 잘리고 그제야 발등에 불 떨어져 이제 뭐 해 먹고 사나? 궁리하는 건 우아한가? 남편은 말했다.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은 남편의 공고했던 세계에 일격을 가했다. 콰-직!
남편은 모임에서 술 한 잔을 걸치고 집에 돌아오면, 육퇴 후 동태눈이 된 나를 앉히고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그날 뒤풀이에서 들은 이야기를 쉴 새 없이 쏟아냈다. 워낙 말도 빠르고, 말도 많은 사람이지만 참을성 있게 들었다. 신난 어린아이처럼 떠드는 남편에게 차마 '내 다크서클 안 보이니?' 물을 수 없었다. 그나마 남편이 상당한 달변가라서 이야기가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었다. 덕분에 나도 세상을 보는 눈이 점점 커졌다.
그즈음, 남편은 대학동기들의 모임이나 친구들 모임을 참석하기 힘들어했다. 일단 현재의 상태를 말하는 걸 괴로워했다. 만약 이직 준비 중이라면 차라리 설명이 쉬웠을 텐데... 사업 준비 중이라면?
'사업? 뭔 사업? 지금 뭐 하는데? 뭐? 퇴사한 지 6개월이 넘었는데 아직도 사업 아이템도 못 정했다고? 너 애기 몇 개월이랬지? 와.. 씨 너 와이프는 암말 안 하냐? 이 새끼 존나 꿀빠네. 야 사업은 아무나 하냐 그냥 다시 공부해서 공기업 들어가 인마.'
끔찍하다.
그러니 그냥 입 다물고 대충 얼버무리고 만다는 거다. 어차피 걔네들은 말해도 모르니까, 굳이 입 아프게 설명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친구들의 연봉에 남편은 더욱 현타를 세게 맞았다. 나도 사실 조금 놀랐지만, 더 놀랍게도 그들이 전혀 부럽지가 않았다.
우선 나는 남편이 우리 딸의 신생아 시절을 모두 함께 한 것이 두고두고 흡족했다. 잘 나가는 남편 친구들은 모두 놓친 그 보석 같은 시간을 그는 온전히 아이와 함께 보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미래 가능성을 더 높게 샀다. 당시 상황만 놓고 보면, 친구들에게 남편은 대책 없는 또라이였다. 그런데 남편은 친구들보다 십수 년 먼저 홀로 서는 법을 배우는 중인 것이었다. 회사라는 우산이 사라진 후에 인생에서 내리는 비를 어떻게 피할지 고민하는 게 아니라, 지금 좀 더 젊었을 때 소나기를 때려 맞고 대신 직접 튼튼한 우산을 만드는 중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이미 비를 맞을 준비가 되어 있다면, 더 이상 폭우가 두렵지 않은 법이다.
그러나... 남편은 프로퇴사러 이전에 프로회피러였다. 아니, 회피 종목에 있어서 만큼은 세계 챔피언급! 사업 모임을 나가며 어쩔 수 없이 실행해야만 하는 환경에 몰아넣었지만 큰 효과는 없었다. 크고, 작은 삽질을 '직접' 해봐야 얻어걸리는 게 있다는 걸 어렴풋이 깨달은 내가 계속 닦달을 하는데도 요리조리 실행을 피했다.
남편의 삽질은 확실히 나와는 많은 면에서 달랐다. 우선 남편은 삽질을 위해 삽을 공부한다. 삽의 종류, 삽의 형태에 따른 장단점, 삽과 땅의 역학 관계... 삽이 어느 정도 파악이 되면 나에게 지식을 뽐낸다. (이 과정이 가장 중요) 충분히 뽐내고 나면 이제 땅을 공부한다. 공부한 지식을 뽐낸다. 그리고 어딜 어떤 삽으로 파야 최단 시간, 최저 비용, 최고 효율이 나는지 또 연구한다. 뽐낸다. "아 제발 좀 그만하고, 뭐라도 좀 해봐!"라고 외치는 아내를 가볍게 회피. 지금까지 공부한 것들에 흥미를 잃고, 최근 눈에 띈 새로운 삽과 땅을 찾아 떠난다.
그렇게 공부만 하면 입버릇처럼 말했다. "되게 쉬워." "금방 해." "하기만 하면 돼." "다 알았어! 다른 사람보다 훨씬 빠르게 할 수 있어"
아니... 저기요. 그래서... 다 아셨다는 건 알겠고요. 삽은 언제 들고, 땅에는 언제 꽂아보실 건데요?
남편은 내 성화에 못 이겨 몇 번은 정말 삽을 들고 땅에 내리꽂았다. 그럼 또 입버릇처럼 말했다. "내가 간과한 게 있어" "재미가 없어" "이건 가능성이 낮아" "이거보다 더 좋은 게 있을 거야!"
그렇게 또 정신을 차려보니 남편 퇴사 후 1년이 되어 있었다. 이때부터는 참고 참던 나도 이성을 잃고 광분하기 시작했다. 결혼 이래 가장 잦은 다툼과 가장 규모가 큰 전쟁이 벌어졌다. 별 것 아닌 것에 내 분노 버튼이 눌리곤 했다.
예를 들어, 남편이 오래간만에 설거지를 하는데 "아 배달음식 먹고 남은 거 그냥 싱크대에 놓지 좀 마!" 하며 나에게 핀잔을 주면, 그날은 전쟁이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내로남불이다. 본인의 설거지 차례가 아닐 땐 기름 묻은 프라이팬이던, 붉은 양념 범벅인 그릇이던, 썩어서 문드러진 야채가 든 봉투던 마구잡이로 싱크대로 던져 넣으면서... 내가 한 번 그러면 짜증을 그렇게 내는 것이다.
나는 내가 묵묵히 해오고 있던 사사로운 집안일을 랩처럼 읊으며 종국에는 "너는 내가 수백 번 얘기해도 아직도 양말 아무 데나 벗어던지면서 그게 내게 할 소리야!!!!!"까지 포효하듯 뱉었다.
아주 작은 트리거는 내 안의 억울함, 분노, 서러움을 한 번에 폭발시켰다. 그 당시 제일 억울한 것은 이랬다. 남편이 회사를 다니며 경제적인 부분을 더 많이 책임지던 당시에는 내가 집안일을 더 많이 하는 게 당연했다. 그런데 반대의 상황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나는 가사, 육아, 경제 활동까지 모두 떠안고, 남편은 보조 역할로 남아있는 게 맞나? 싶었다. 게다가 남편의 상담사 역할까지... 이 결혼이 나에게 이로운 게 도대체 무엇이 있나 곱씹게 되었다. 이런 이기적인 남자인 줄 알았더라면 결혼하지 않았을 거란 생각을 하고 또 했다. 그제야 '아이 때문에 산다'는 사람들의 말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크게 싸우는 날이면 정말 당장이라도 이혼 도장을 찍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내 인생에 이혼? 상상해 본 적은 없지만, 못할 건 또 뭐야! 싶기도 했다. 그런데 잔뜩 뿔이 나 있는 나에게 미안하다고 손 내미는 남편을 항상 뿌리치기 어려웠다. 또다시 싸울 걸 알지만, 화해하고 또 화해했다.
숱한 싸움과 화해의 반복으로 나는 점점 지쳐갔다. 싸움의 발단은 항상 남편의 말투나 일관성 없는 태도 때문이었다. 연애시절 그 깍듯하고 예의 바른 태도는 다 무엇이었을까? 차라리 나를 남처럼만 대해 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싸움이 무엇으로 시작하든 끝은 똑같았다. 나는 푸념처럼 내 희생에 대해 넋두리를 늘어놨다. 서운함은 풀리지 않는 매듭처럼 갈수록 단단히 꼬였다. 남편은 남편대로 계속 반복되는 내 넋두리에 인내심을 잃고 있었다.
우리 관계는 더 이상 회복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무렵, 남편의 관심사가 심리학과 명상으로 옮겨갔다. 항상 그랬듯, 그는 새로운 관심사가 생기면 아주 빠르게 그 세계에 몰두했다. 남편이 처음으로 '나는 왜 이 모양일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 것이다. 매일 자기 자신에 대해 깨달은 바를 나에게 열정적으로 말했다.
가장 큰 깨달음은 TCI 검사(기질검사)를 통해 얻었다. 그 결과는 아내인 나에게도 남편을 이해하는 결정적 힌트를 제공해 주었다.
상담사가 말하기를 남편의 기질은 말하자면 브레이크와 엑셀을 동시에 누르고 있는 상태라고 했다. 자극추구, 위험회피가 둘 다 극상으로 높은 특이한 케이스로 지킬과 하이드가 한 몸에 있는 걸 상상하면 이해가 쉽다. 게다가 사회적 민감도마저도 극상인... 정말 기질적으로 까다로운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 설명을 들으니 그제야 납득이 안 가던 남편의 이상한 행동들이 하나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남편은 종종 어떤 동일한 상황에 대해 어떤 날은 긍정적으로 이야기했다가, 어떤 날은 마치 기억을 잃은 사람처럼 부정적인 면을 극화해서 표현할 때가 있었다. 알고 보니 자극추구가 높아서 기본적으로 모든 일에 관심이 가고 호기심이 넘치지만, 위험회피 성향도 지나치게 높아서 막상 하려고 마음을 먹으면 동시에 불편함 감정이 올라와 피하고 싶어 안달이 나는 것이었다.
이거였구나! 와...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적어도 미친놈은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니 관계회복을 위해 힘쓸 여유가 생겼다.
그 후로도 남편이 얼토당토 안 한 것으로 널뛰면, '브레이크와 엑셀이 함께 눌렸군'하고 생각했다. 열은 받지만, 측은지심이 함께 올라왔다. 그렇게 우리는 전우 관계로 변모하고 있었다. 너도, 나도 어쩌지 못하는 우리의 기질과 성향을 끌어안고 인생이란 전쟁터에서 의지하며 서로를 지켜내자!
싸움의 빈도와 강도가 조금씩 낮아지니 다시금 온화한 나를 되찾았다. 남편의 사업준비가 이렇게 지지부진하게 길어질 줄은 몰랐지만, 애초에 내가 그토록 원했던 '실패'를 경험하고 있다는... 그로 인해 남편이 스스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들여다보게 되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꼈다.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하고, 불안했지만 지금이 남편 인생의 진정한 터닝포인트가 될 거란 강한 확신이 들었다.
남편은 그렇게 스스로를 돌이켜보며 자신의 예민함을 다루는 능력을 키워나갔다. 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남편이 퇴사한 지 2년이 되어갔다.
그때, 우리 부부의 인생을 바꿀 하나의 문자 메시지를 받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