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바꿀 문자 하나

by 마리뮤

평소와 다름없는 오후였다.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그게 우리 부부의 인생을 뒤바꿀 문자인 줄도 모르고, 심드렁하게 핸드폰을 들어 문자를 확인했다.

○○○님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여성의원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그동안 저희 병원에 보관 중인 배아의 보존 연한 안내 차 연락 드립니다.

내용을 읽어보니 난임병원에서 마지막 시험관 시술 때 보관해 둔 5일 배아 한 개의 보존 연한이 곧 만료가 된다고 했다. '벌써 3년이 지나간다고?' 혹시 몰라 보관해 둔 냉동배아의 존재를 문자를 받기 전까지 떠올린 적이 없었다. 종종 둘째를 가져야 할까? 에 대해 고민을 한 적은 있지만 프로퇴사러 남편과 첫째 아이 케어만으로도 버거워 현실적인 고려는 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그 문자를 읽자마자 마음이 이상했다. 한 번 더 최대 2년까지 연장보관이 가능하다고는 하지만... 연장이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그때가 되면 나는 이미 마흔도 넘어있을 테고, 여기서 삶이 더 나아지리라는 보장도 없었다.


그냥 폐기를 하는 게 맞나? 생각한 찰나 너무 큰 상실감과 슬픔이 몰려왔다. 당시 아이를 갖기 위해 내가 쏟았던 노력과 눈물이 모두 떠올랐다. 외로이 아침, 저녁으로 내 배에 직접 주사를 넣던 일, 수많은 약과 질정을 때에 맞춰 복용하고 넣던 일, 매일 기대와 부푼 희망으로 눈을 떴다가 울어서 퉁퉁 부은 눈으로 잠이 들던 나날들...

이성은 '아무리 그래도 지금 시기는 아니야'라고 외쳐대는데 마음은 이미 그 5일 배아를 소중히 받아 품었다. 도저히 폐기할 수 없다,라는 게 내 결론이었다. 그렇다면 내 결정에 맞춰 현실의 문제들을 해결해야 했다. 우선 2년째 방구석에서 창업공부 중인 남편을 설득해야 했다. 과연 그는 뭐라고 할까?

"그래! 여보만 괜찮다면 그러자"

의외였다. 이렇게 쉽고 간단하게 동의하다니? 내 말을 제대로 알아들은 건가 싶어 재차 진짜 괜찮아?라고 물었더니 너무 해맑게 둘째 생기면 내가 시장에 생선이라도 팔러 나갈게, 했다.


그놈에 생선... 생선... 내가 너를 또 믿으면 사람이 아니다. 나는 진지하게 대답해 달라고 했다. 내가 만에 하나 진짜 임신이 되면 지금 하고 있는 수업도 다 정리해야 하고 당분간 일을 할 수 없어서 무조건 생계를 위해 여보가 일을 해야 한다고. 남편은 여전히 해맑게 당연하지! 걱정 마, 진짜 뭐라도 할게, 하고 답했다.

익숙한 패턴, 이를테면 오늘 예스!라고 외쳤다가 내일 헬~ 노우!!!! 를 외치는 남편을 알기에 조금 찝찝했지만, 아이를 워낙 좋아하는 남편의 진심을 믿어보기로 했다. 그래, 어쩌면 내가 너무 그를 못 믿고(?) 일을 도맡아서 위기의식이 없었던 것일지 몰라.

어차피, 냉동배아 딱 한 개뿐이다. 사실 가능성만 따지자면 안될 확률이 훨씬 컸다. 그럼 적어도 시도는 해봤으니, 둘째에 대한 미련은 남지 않겠지... 생각했다.

문자를 받고 바로 시험관 시술을 진행했다. 또다시 주사와 질정 지옥이 펼쳐졌다. 내가 제 발로 또 그 고생길을 가다니... 정신이 아득했다.


냉동배아 이식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난자 채취 과정과 배양 과정이 생략되니 날을 잡고 이식만 하면 되었다. 이식 직전에 해동한 우리 부부의 5일 배아를 보여주었다. 동글동글 귀여운 눈사람 모양이었다. '안녕, 아가야! 엄마 기다려줘서 고마워. 예쁘게 집 짓고 우리 꼭 만나자' 속으로 인사를 건넸다.

기다란 기구가 자궁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초음파 모니터로 보였다. 곧 작디작은 점 하나가 자궁 가운데에 콕 찍혔다. 그렇게 순식간에 배아 이식이 끝났다. 회복실에 누워 있을 때에도 모든 게 꿈같았다. 나는 기적적으로 임신에 성공한 미래와 역시나 확률의 법칙에 따라 임신에 실패한 미래를 동시에 상상했다. 벅찬 설렘과 씁쓸한 실망감도 동시에 느꼈다. 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라 무표정하게 누워있었다.

냉동배아를 이식한 날은 괜스레 저녁 수업을 하고 싶지 않았다. 딱히 많이 힘들진 않았지만, 마구 응석 부리고 꾀병을 부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동네방네 '저 오늘 배아 이식했어요!' 외칠 수도 없는 노릇이라 감정을 꾹 누르고 여느 때처럼 성실하게 수업을 했다.

이식 후 일주일 동안 시간의 중력에 압사당하는 기분이었다. 나는 평소에도 궁금함을 잘 참지 못한다. 그런데 하물며 임신 여부는... 오죽할까. 1분 1초가 지나는 것을 고스란히 느꼈다. 내 모든 촉각은 뱃속에 집중되었다. 조금만 더부룩해도 둘째 대학 보내는 상상까지 내달렸다. 컨디션이 유난히 좋고 멀쩡하면 그렇게 속상하고 우울할 수가 없었다. 둘째를 임신한다면 따라오는 많은 현실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토록 아이를 원했던가? 나조차도 놀랐다.

나는 갑자기 여행을 떠나고 싶었다. 혹시나 진짜 임신이면 이제 당분간 나의 자유를 모두 헌납해야 할 터! 임신이 아니더라도 이 수고로운 과정을 기꺼이 수행한 나 자신에게 보상을 하고 싶었다. 난생처음으로 홀로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남편은 흔쾌히 그러라고 했다. 나는 바로 여행지를 물색했다.


내가 걱정 없이 여행 준비를 할 수 있었던 데에는 남편의 퇴사가 큰 몫을 했다. 딸이 신생아 때 퇴사한 남편은 나와 함께 주양육자로 2년을 함께 했다. 아이는 우리 둘 모두에게 안정적인 애착이 형성되어 있었다.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는 것에 거리낄 것이 없었다. 프로퇴사러 남편이 참 섹시해 보였다. "고마워! 퇴사한 남편 최고!!"


부산으로 여행지를 정했다. 파워 J답게 계획표를 촘촘히 짰다. 기분에 따라 식사 메뉴나 코스를 달리 할 수 있도록 플랜 B와 C도 저장해 두었다.


취향이 극과 극인 남편과 여행할 때는 못 느끼던 완벽한 자유에 정신이 아득할 정도로 행복했다! 이제 매 끼니 빵을 먹든, 갔던 음식점을 또 가든, 가성비는 떨어져도 훨씬 감도 좋은 숙소를 고르든 잔소리할 사람이 없었다!!!


이 좋은 걸 이제야 알게 되다니 개탄스러울 정도였다. 임신에 쏠려 있던 정신을 여행 준비로 돌릴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부산행 KTX에 몸을 싣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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