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세 번째 퇴사를 하며 내게 했던 호언장담은 일주일을 넘기지 못했다. 그는 늦게 일어났고, 매일 야식에 맥주를 마셨고, 넷플릭스나 핸드폰을 하는 시간이 점차 길어졌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또 간만의 퇴사(?)라서 그에게 이런 자유시간이 좀 필요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가만히 보면... 나는 정말 전생에 최소 테레사 수녀 아니면 보살이었던 게 틀림없다. '오 주여!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남편이 퇴사를 용감하게 지른 것은 어쩌면 내 탓(?)도 있다. 나는 출산 4개월 만에 온라인 수업을 재개했다. 첫 출산이라 백일 정도면 몸 회복을 하고 충분히 다시 일을 시작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나에게 수업을 맡기던 어머님들은 3개월 정도 몸 추스르고 다시 돌아오겠다는 내 말에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어쨌든, 거의 대부분의 학부모님들은 '쉽진 않겠지만' 꼭 빠른 시일 내에 돌아오시라며 기다리겠다고 했다. 나는 남편이 퇴근하고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수업 시간을 조정하고 수업을 다시 시작했다.
내가 수업을 하는 동안 남편은 딸을 돌봤다. 저녁 시간만 수업을 해도 한 달 생활비 정도는 벌 수 있었다. 남편이 퇴사하고 싶다는 의향을 슬쩍씩 내뱉을 때마다 처음엔 그래도 '아이 조금 더 클 때까지만 일하면 안 돼?' 묻다가도 나중엔 '정 그러면 오후에 여보가 아이 케어하고 내가 수업을 늘릴게. 낮시간엔 사업 준비를 해' 하고 완벽한 해결책을 제시해 버렸다.
그리하여, 어느 날 남편은 진짜 퇴사를 했고 나는 처음으로 완벽한 가모장이 되었다. 수업을 대폭 늘리기 위해 나는 다시 한번 블로그를 재정비했다. 사실 남편과 나는 그동안 마케팅의 중요성에 대해 서서히 인지하며 관련 책을 읽어오고 있었다. 책에서 배운 내용들을 적용해서 랜딩페이지 글도 쓰고, 신청서 폼도 만들고, 처음으로 인스타 광고까지 내봤다. 준비하면서 나는 다이소에서 산 작은 화이트보드에 '최종목표: 월 수입 500만 원'이라고 적었다. 칠판에 그 숫자를 적어 넣으면서도 살짝 민망한 미소를 지었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 나는 김승호 회장님의 <돈의 속성>이라는 책을 읽었다. 돈에도 인격이 있다는 말이 처음엔 일종의 무속신앙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사람들은 부를 원하면서도 사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나는 그런 부를 평생 소유할 수 없어'라는 불신이 자리 잡고 있다는 말에서는 날카로운 칼날에 베인 듯 쓰렸다.
읽으면 읽을수록 틀린 말이 아닌 것 같았다. 당장에 내 궁극의 월수입을 천만 원도 안되게 적는 걸 보라. 그리고 천만 원도 안 되는 숫자를 적어 넣으면서도 '이게 될 리가...' 하며 민망해하는 나를 깨닫고는 여러 감정이 뒤섞였다.
나도 비범한 사람들처럼 큰 배포를 가지고 싶었다. 하지만 책 몇 권으로 내 몸 깊숙이 배어있는 가난한 마인드를 몰아내긴 역부족이었다. 될 리가 없지만 에라 모르겠다 하고 최종적으로 그 숫자를 적어 넣었다.
그다음 달, 나는 칠판의 숫자를 지웠다.
목표했던 수입을 넘겨버린 것이다.
월 수입 500만 원을 넘기자 내 삶이 360도 달라졌다! 그렇다, 180도가 아니라 360도. 나는 내 삶이 크게 달라질 줄 알았다. 그런데 실상은 그냥 기분 째진 상태로 일주일 빙그르르 돌다 제자리로 착지!
'뭐야? 정말 이렇게 아무런 변화도 없다고?!!'
수입이 늘었지만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나의 순진한 생각을 깨닫기까진 며칠이 걸리지 않았다. 수입이 는다는 건 외식 횟수가 살짝 늘고, 약간 더 좋은 생활용품을 사고, 카페에서 케이크를 고민 없이 고르고, 원하던 물건 한 두 개 더 사는... 그리고 약간의 돈을 더 저축할 수 있게 되는 삶,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나는 상상했다. 그럼, 월 천만 원의 삶은? 역시 크게 다르진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월 천의 삶이 궁금했다. 하루아침에 내가 만족할 줄 모르는 욕심꾸러기가 된 기분이 들었다.
나는 화이트보드에 월 천만 원이라 고쳐 썼다.
당시 내가 상상할 수 있던 가장 큰 목표를 달성하자 삶 자체보다, 나의 인식이 완전히 변해버렸다. 나는 내가 고만고만하게 살다가, 고만고만하게 죽을 거라고 예상했다. 이전에 그려놓았던 삶의 청사진을 모두 갈기갈기 찢어 폐기했다. 겸양의 미덕인 양, 나를 속이는 짓을 그만두기로 했다. 나는 분명 더 많은 성취를 원했다.
내 소기의 성과를 함께 지켜본 남편 역시도 달라졌다. 우리는 매일 사업, 마케팅, 부에 관한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눴다. 또 관심이 가는 온라인 수업은 망설이지 않고 수강하며 공부했다.
책을 읽으면 당장이라도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그 느낌이 좋았다. 베일에 감춰있던 돈이 벌리는 과정을 하나씩 알게 되는 것도 짜릿했다. 책을 한 권 읽을 때마다, 강의를 하나 들을 때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우리가 읽거나, 배워야 하는 것들이 주르륵 딸려 왔다.
정신을 차려보니 남편 퇴사 후 6개월이 훌쩍 지나있었다.
남편은 6개월 안에 뭔가 꼭 하고 있을 거라 호언장담했다. 남편의 약속에 의하면, 그는 이제 음식점에서 설거지를 하든, 시장에서 생선을 팔든, 공사장에서 막노동을 하든 돈을 벌러 나가야 했다. 그러나 그는 모르쇠로 일관하며 책을 읽고, 공부를 했다.
가끔은 뭘 했다고 매일 낮잠까지 꼬박꼬박 챙겨 자는 모습이 꼴 보기 싫어 엉덩이를 뻥 차주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기가 힘들었다. 사업을 하고 싶다던 남편은 '사업 공부'만 하면서 방구석 전문가가 되어가고 있었다. 뭔가 조치가 필요했다. 나는 어느 날 남편에게 외쳤다.
"당장 집에서 나가!"
(물론 진짜 내쫓고 싶을 때가 많았지만) 집 밖을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라고 했다. 공부를 하더라도 오프라인으로 배우고, 실행을 돕는 모임을 찾아서 진짜 사람들과 교류하라고 했다. 남편은 내 이야기를 잠자코 듣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 말이 맞아!"
그은 밖으로 나갔고, 인생 첫 삽질을 시작했다! 삽질 선배인 나는 흐뭇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