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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뮤 Oct 16. 2019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위한 주문

아브라카다브라, 다 이뤄져랏!

"모든 것을 그와 함께하려 욕심내지 말지어다!"


취향에서 만큼은 물과 기름과도 같은 나와 남편. 취향의 대척점에 있는 남편과 살기 위해 내가 주문처럼 외는 말이다. 이는 7년의 연애기간 동안 눈물깨나 쏟으면서 얻어낸 나만의 비기(?)인 것이다.


그를 처음 보았을 때, 바로 끌렸다. 객관적인 미남은 아니었지만 내 취향이었다. 키가 늘씬했고, 미소는 순박했다. 두뇌 회전이 빠른 사람이었고, 과묵하지 않았다. 그를 제대로 알기도 전에 나는 그를 사랑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둘 다 소심한 탓에 서로를 좋아하면서도 표현하지 못하고 끙끙 앓던 긴 시간을 보냈다. 평생 평행선만 그릴 것 같던 그 시간들 속에서 그는 점점 완벽한 내 이상형이 되어 있었다. 그의 주변에서 취득한 모든 정보들은 이성적이지 못한 나의 뇌를 거쳐서 '그와 나는 천생연분'이라는 가짜 데이터 값을 마구마구 쏟아냈다.


평행선을 그리던 우리 사이에 어떤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고, 우리는 '사귀자'는 말 한 마디 없이 연인이 되었다.


천생연분이라 믿었던 그는 놀랍게도 모든 면에서 나와 달랐다. 그냥 비슷하지만 약간 차이가 있다, 정도가 아니라 극과 극이었다.



나는 아침을 좋아하고, 그는 밤을 좋아한다.

나는 맑은 날을 좋아하고, 그는 비가 오는 날을 좋아한다.

나는 양식을 좋아하고, 그는 한식을 좋아한다.

나는 매운 음식을 먹지 못하고, 그는 매운 음식에 환장한다.

나는 락을 좋아하고, 그는 발라드를 좋아한다.

나는 휴양을 좋아하고, 그는 관광을 좋아한다.

나는 술이라면 질색하고, 그는 술이 없어 못 마신다.

나는 돈 쓰는게 아깝고, 그는 돈 쓰는게 즐겁다.

나는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고, 그는 실용적인 것을 좋아한다.

나는 글로 표현하는 것이 편하고, 그는 말하는 것이 편하다.

.

.

.

.

.

심지어 나는 이런 작은 차이를 민감하게 느끼는데, 그는 별다른 감흥이 없다.







취향이 다르다는 것은 본격적인 연애를 시작하기 전에는 차마 다 알 수가 없었고, 알았다한들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의 나는 그가 어떤 사람이었더라도 사랑했을 것이다. 


그와 사귀는 동안 가장 나를 슬프게 했던 것은 감정을 '공유'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예를 들어, 기절 할 정도로 맛있는 이탈리안 피자집에서 피자 한 입을 베어먹고는 폭풍감동에 휩싸인 나에게 남자친구(현 남편)가 '동네피자 맛'이라고 평했을 때 내가 발 딛고 있는 이 세계가 와장창 무너지는 심정이었다.


'왓?!!!!!!!!!!!!!!'


이해 할 수 없었다. 그의 혀는 당최 무엇으로 만들어졌기래 이 미치도록 담백하고 쫀득한 도우의 맛과 현기증이 날 정도로 진하고 고소한 치즈의 풍미를 못 느낀단 말인가! 이러한 예는 수두룩 했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음악을 감상하면서, 책을 읽으면서, 티비를 보면서, 길을 걸으면서, 하늘을 바라보면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어떤 특정한 것들에 대해서는 결코 이 남자와 공유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때마다 미치도록 외로웠다.


나에게 '사랑'은 '공감'과 같은 말이었다. 내가 지금 느끼는 이 감정을 상대가 같이 느낀다는 것만큼 나를 황홀하게 하는 것은 없었다. '이런 사람과 결혼해도 되는 걸까?' 사귀는 내내 고민했다. 울어도 보고, 싸워도 보고, 토라져도 봤지만 취향이 다른 것은 그의 잘못도 나의 잘못도 아니었다.


어느 날, 나에게 새로 산 잉크젯 프린터기에서 뽑아져 나오는 종이를 보며 '이 속도 좀 봐!!!'라며 아이처럼 광분하는 그를 보며 그제야 깨달았다. 나도 이 사람에게 같은 것을 줄 수 없다는 것을. 그는 나를 억지로 앉혀놓고 계속 프린터기에서 종이가 나오는 것을 지켜보게 했는데 그에겐 미안하지만 '자기야, 그냥 프린터기가 다 똑같은거 아니야?'하면서 그의 감동을 와장창 내버렸다. 그는 그 기계의 매커니즘과 기술력, 향상된 속도가 놀랍다고 했지만, 나에게는 그저 '동네피자 맛' 정도였달까.


그래서 그날 결심했다. "모든 것을 그와 함께 하려 욕심내지 말자!" 그와 모든 감정을 나누고, 모든 감동을 함께 느끼려 했던 것은 그야말로 '욕심'이었던 것이다. 그와 함께 즐길 수 있는 것들은 그와 함께 하고, 딱 봐도 사이즈가 안나오는 것들은 사이즈가 나오는 사람들과 함께하면 그만이다. 예술에 대한 이야기는 친언니와 나누고

맛있는 피자는 부모님과 먹고 속 깊은 이야기는 브런치에 쏟아내고 느긋한 힐링 여행은 친구와 가면 된다.


남편에게 지우려했던 모든 짐들을 조금씩 나눠서 내 주변에 다른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하기 시작하자 남편과 나의 관계의 균형이 다시 조금씩 맞기 시작했다. 


여전히 어떤 순간에는 이 세상에 그 누구도 아닌 이 남자, 내 남편이 공감해주었으면 하고 욕심이 날 때가 있지만 그가 마음으로 깊이 공감해주지 않아도 괜찮다고 되뇌인다.


고로, 취향이 달라도 

난 이 결혼 찬성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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