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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뮤 Dec 15. 2019

친구 같은 남편의 숨은 의미

우리 남편은 친구 같다.

제발 좀 그만 놀러 왔으면 좋겠는 친구 같다.

시도 때도 없이 놀러 와서 이제 좀 그만 본인 집에 갔으면 좋겠는데 집에 갈 생각은 1도 안 하는 친구 같다.

친구가 집에 온다는 말에 설레어서 집 청소도 하고 나름 맛있는 음식도 준비해서 맞이하는데 친구는 손님이라 그런지 도울 생각이 별로 없다. 옷장이 어딨는지도 몰라서 대충 보이는 바닥에 외투를 벗어놓고, 내가 얼마나 편한 친구이면 양말까지 벗어서 대충 방구석에 던져놓는다. 무언가가 필요하면 뭐가 어디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내가 찾아주어야 한다. 또한 우리는 서로 못할 말이 없는 막역한 사이라서 친구는 내가 차려놓은 음식에 대한 감사함과 칭찬보다 앞으로의 발전을 위한 쓴소리에 더 시간을 할애한다. 밥을 먹으며 재미있는 티브이 프로그램을 같이 보는데 와하하하 웃음을 터뜨리기도 하고, 부아아악 방귀를 터뜨리기도 한다. 친구는 티브이 프로그램이 끝나도 일어나서 상을 치우지 않는다. 나는 슬슬 친구가 집에 돌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친구의 방문으로 난장판이 되어버린 집도 다시 깔끔하게 치우고, 나도 좀 나만의 조용한 시간을 갖고 싶다. 그런데, 이 친구는 자기 집에 갈 생각이 전혀 없다. 이젠 아예 침대에 드러누워 핸드폰을 하며 낄낄거린다. 친구가 있는데 부산을 떨며 그 옆에서 청소를 하기도 그렇고, 나도 왠지 쉬고 싶어 그냥 옆에 누워 딴짓을 한다. 아무래도 친구는 '오늘도' 여기서 자려는 모양이다. 내일 친구가 돌아가면 그때 맑은 정신으로 집안일을 하고 다시 나만의 일상으로 돌아가야지, 다짐한다. 다음날 아침, 친구는 떠나고 고요한 아침이 선물처럼 찾아온다. 하루 밤사이 나를 기다리던 설거지와 빨래 거리, 흐트러진 물건들이 '어서 나를 치워주세요!'하고 애원한다. 아침 허기를 달래고 세수로 정신을 차린 후 다시 집을 원상복귀시킨다. 사소한 일들로 분주한 나의 아침과 구슬땀을 알아주는 사람은 오직 나 하나뿐이다. 뻔뻔하고 무딘 내 친구는 집은 아무리 흐트러놓아도 저절로 원래대로 되돌아가는 법이라고 생각한다. 매일 저녁 우리 집에 놀러 오면서도 매번 같은 질문을 한다. "오늘은 집에서 뭐했어?" 나는 속으로 '보면 모르겠냐? 니 뒤치다꺼리했다'라고 소리치지만 괜히 우정에 금이 갈까 봐 "집안일했지 뭐"라며 가볍게 대답한다. 내 집을 제집처럼 드나드는 이 친구는 언제쯤 자기 집에 나를 초대해줄까? 나도 한 번쯤 차려주는 상 받고, 청소 걱정 없이 마음껏 즐기는 손님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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