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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뮤 Oct 18. 2019

김금희 작가의 책 두권

너무 한낮의 연애,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

 내가 독서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고등학생 때였다. 중학교 3학년을 마칠 무렵, 가족 모두 미국으로 가게 되었고 나는 졸지에 미국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부끄럽지만 사교육 없이 티 없는 학창 시절을 보낸 나는 겨우 알파벳만 떼고 미국에 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매일 긴장의 연속이었다. 혹시나 숙제를 놓칠세라 하교할 때까지 신경을 곤두세웠다. 낯선 공간, 낯선 사람, 낯선 언어에 둘러싸여 잔뜩 움츠려있던 나에게 유일한 도피처는 동네 도서관 한쪽 서가에 비치된 한글 소설 몇 권이었다. 


 한국에서는 외부에 강압이 없이는 일절 책에 손을 드는 일이 없던 나였지만 먼 타국 땅에서 발견한 모국의 언어는 참으로 따스하게 다가왔다.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아도 문장을 읽고 이해하고 웃고 울 수 있었다. 그때부터 시작한 나의 책 사랑은 이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 소설을 많이 읽으려고 노력한다. 고등학교 시절과 대학시절에는 유명한 베스트셀러나 명작들을 위주로 읽었다. 으레 책을 좋아한다고 하면, 이런 책 정도는 읽어야 한다는 나름의 기준이 있었다. 대부분이 번역서기 때문에 한글로 쓰인 맛깔난 문장의 맛을 느끼기엔 부족함이 있었다. 작품성이야 세월을 통해 입증되었겠지만 아무리 유명한 명작이라도 난해한 번역 때문에 머리가 지끈거리는 책들이 꽤 많았다. 그런 가벼운 두통을 겪고 나면 시원한 한글소설 한 사발을 마셔서 체증을 쑥 내리고 싶은 기분이 든다. 



너무 한낮의 연애

김금희 작가 이름은 익히 들어본 적 있었지만 실제로 그녀가 쓴 책을 읽는 것은 처음이었다. 실은 제목을 보곤 연애에 관한 하나의 장편소설인 줄 알았는데 짧은 단편들이 모여있는 소설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김금희 작가와 나의 케미는 맞지 않는 걸로... 나에게는 그녀의 단편들이 짧은 소설보다는 난해하고 긴 시 같았다. 내가 대중적인 취향을 가져서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문체는 좀 올드한 느낌이 들었다. 고등학교 시절 읽던 그때 당시 한국소설 느낌이랄까. 구체적으로 설명을 할 만큼의 식견이나 지식이 없다는 점을 고백해야겠다. 느낌적인 느낌이 그렇다는 이야기라서 나도 글을 쓰면서도 조금 멋쩍다. 


도서관에서 빌려 온 책이라서 반납하기 전에 그래도 끝까지 읽으려 노력했다. 모든 단편들이 비슷하게 추상적이었다. 서술되는 이야기들의 행간에 분명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의미들이 함축되어 있는 느낌이 들었지만 피로했다. 몇 개의 단편에 관해서는 인터넷에서 다른 이들의 감상을 읽어봤는데 확실히 나의 내공부족이 느껴졌다. 다른 사람들의 해석을 읽다 보면 그제야 공감이 가면서 이해가 되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현재의 나의 솔직한 감상으로는 내 취향의 글은 아니었다. 그래도 이 책 말고 김금희 작가의 책을 한 권 더 빌렸기 때문에 성급한 결론을 내리지 않고 보류하기로 했다.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

두 권 정도 읽었으면 이제는 확실하게 말해도 되는 것일까? 그녀의 책은 내 취향이 아니다. 이 책은 단편보다 훨씬 짧은 글의 묶음이었다. 한편 한편이 정말 짧아서 같은 자리에서 내리읽다 보면 마치 넥플릭스를 켜고 뭘 볼까 1시간 내내 방황하는 기분이 든다. 무언가 더 있을 것 같아서 흥미에 시동이 걸릴라치면 끝나버리기 일쑤라서 '너무 한낮의 연애'와는 전혀 다른 느낌의 책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비슷한 찝찝함이 남았다. 쓰다 보니 너무 신랄한 비평이 되어버린 기분이지만 어디까지나 개인의 감상일 뿐이다. 분명 글을 잘 쓴다는 것은 확실히 느껴졌다. 그녀의 비유들이 실제보다 훨씬 생생해서 읽는 재미가 있었다. 그저 이 두 책에서 흐르고 있는 무드랄까, 그런 게 나랑 맞지 않는 것 같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책에서는 SF적인 상상력이 가미된 두 개의 단편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책 전체를 놓고 본다면 다른 글들과 가장 달랐는데 말이다. 인터넷에 그녀의 장편소설 '경애의 마음'이 무척 좋았다는 평들이 많았는데 읽어볼까 말까 고민이 깊다. 한 권 더 읽어보고 판단해도 늦지는 않을 것 같다. 


책의 제목이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였지만, 나는 이 책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할 거리가 없다. 지금 정유정 작가의 '종의 기원'에 푹 빠져버렸기 때문이다. 짧게 사귄 전 남자 친구에 대한 기억처럼 헤어진 지 하루 만에 모조리 잊어버렸다. 혹시라도 위에 두 책에 대해 나와 전혀 다른 감상이었던 분들은 부디 너그러이 읽어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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