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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뮤 Mar 08. 2020

마왕 (이사카 고타로)

웃기지만, 정신 차려보면 심각한 이야기





작년에 우연히 악스(AX)라는 소설을 읽고 발견한 보석같은 소설가다. 처음에는 별기대도 없었고 읽다가 재미없으면 그만 읽으려 했는데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 책을 다 읽고 그제야 이 작가를 기억해야지 생각하며 검색을 해보았더니 예전에 친구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던 '마왕'이란 책을 썼던 작가였다. 역시 하나를 잘 쓰면 나머지도 잘 쓰는 게 당연할지도 모른다. 


일주일 전에 밀리의 서재에서 문자가 왔다. 다시 돌아오면 한 달 무료 이용권을 주겠단다. 작년에 한 달 무료 서비스를 이용하려고 가입하고 홀딱 반해서 몇 달간 계속해서 결재를 했는데 어느 순간 읽을 만한 책이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열정이 시들해져서 해지를 했었더랬다. 공짜의 유혹은 뿌리치기 어렵다. 게다가 코로나19로 도서관도 무기한 휴관을 한마당에 한 달간 마음껏 책을 읽게 해준다니... 엎드려 절이라고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다시 돌아온 밀리의 서재에서 책들을 살펴보던 중 익숙한 '마왕'이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읽기 버튼을 눌렀다. 신기하게도 처음 몇 장밖에 읽지 않았는데 "바로 이런게 '이사카 고타로'의 글이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유의 시니컬한 유머가 베어있는 문장과 가벼운 듯 진지한 분위기가 이 소설가의 시그니쳐가 아닐까 생각했다.




이 책은 크게 두 장으로 나뉜다. 첫 번째는 안도라는 형의 이야기, 두 번째는 동생 준야 이야기이다. 특이한 점이라면 첫 장은 안도가 화자인 반면 두 번째는 준야의 이야기지만 그의 아내 시오리가 화자가 되어 이야기를 이끈다는 점이다. 


영문을 알 수 없는 사건과 이야기들이 펼쳐지지만 그 조각들을 조금씩 따라가다보면 작가가 이 형제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무엇인지, 어떤 담론을 펼치고 싶었는지 깨닫게 된다. 좀 더 이해하기 쉽게 표현하자면 '허, 뭐 이런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다 있어?'하고 한 쪽 입꼬리를 씰룩이며 읽다가 '앗, 당했다! 엄청나게 심오하고 굉장해!!!'하고 혀를 내두르게 된다. 




스포일러는 최대한 피하고 싶지만 그래도 간단히 줄거리를 이야기 해보자면 어느날 갑자기 굉장히 시덥잖고 하찮은 초능력을 얻게 된 형 안도가(내 입장에선 전혀 시덥지 않고 엄청난 능력인데...) 자신의 그 초라한 초능력을 사용해서 자신의 거대한 두려움에 맞서고자 하는 이야기이다. 형에 이어 동생 준야도 굉장히 사소한 능력을 갖게 되는데... 나는 그 능력이 그렇게나 부러울 수가 없었다. (궁금하면 이 책을 읽어보시라!) 


각설하고 이 소설은 파시즘으로 대변되는 집단 행동의 명과 암을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다. 개인의 생각과 행동이 약삭빠르고 영리한 정치인에 의해 교묘하게 조종 당한 사례는 역사에서 흔히 발견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미 형성된 집단사고를 깨달았다고 한들 한낱 개인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개인이 느끼게 될 공포와 무력감은 또 얼마나 클까?  


자신이 마주한 공포와 맞서 싸우기 위해 형 안도는 "생각해, 생각해"를 되뇌이며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한 반면 동생 준야는 "생각하지 마, 생각하지 마"를 되뇌이며 자신에게 닥친 문제를 타개하려 한다. 이 두 형제의 대비가 참 아이러니하면서도 코믹하다. 


사회를 둘러싼 묵직하고 심각한 주제를 이 소설에서처럼 가볍고 유쾌하게 들리게 만들 수만 있다면 어린 학생들이 학교 안에서 더 많은 질문을 던지고 유익한 담론을 펼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내가 만약 학교 선생님이었다면 이런 보석 같은 소설들을 교과서로 삼아 깊이있는 대화를 나눠보았을 것 같다. 


소설에서 뚜렷하거나 명쾌한 결말은 나오진 않는다. 다만 아래 대화를 통해서 작가의 최종 변론이랄까? 마지막 당부랄까? 그가 스스로 도출해낸 답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엉터리라도 좋으니까 자신의 생각을 믿고 대결해 나간다면."
"나간다면?"
"그렇게 하면 세상이 바뀐다. 형은 그렇게 말했어." 준야는 깨어 있으면서도 잠꼬대를 하는 것만 같았다. "형은 그렇게 말하곤 했어."


나도 엉터리라도 좋으니까 내 생각을 믿고 대결해 나가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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