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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뮤 Apr 14. 2020

진짜 세계를 걷는 기쁨

봄, 걷기에 좋은 계절

이미지 출처: https://peterimage.tistory.com/83



올해도 어김없이 봄이 찾아왔다. 삭막한 아파트에도 따스한 봄햇살이 스며들고, 겨울 동안 우리의 보금자리를 온몸으로 감싸주던 뽁뽁이도 이젠 자신의 임무를 마치고 쉴 때가 되었다. 먼지를 뽀얗게 머금은 뽁뽁이를 치우고 환기를 시키기 위해 창문을 여니 따스한 볕과 아직은 쌀쌀한 바람이 나를 유혹했다.


그러고 보니 나의 몸에도 군살과 나른함이 뽀얗게 내려앉아 있었다. 연초에 매일 지속할 수 있는 간단한 운동을 꾸준히 해보자 다짐했지만 침대가 내뿜는 장력이 나의 의지보다 훨씬 컸다. 그렇게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집안에서 생활하기를 몇 달째. 코로나 19라는 예상치 못한 복병 때문에 칩거생활이 좀 더 길어지긴 했지만 기지개를 켜야 할 때가 왔다는 직감이 들었다. 


날이 좋아 코트도 벗어놓고 가벼운 후드티와 청바지 차림을 하고 밖으로 나섰다. 오늘의 외출은 순수하게 운동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거추장스러운 짐은 아무것도 챙기지 않았다. 지갑도 식탁 위에 놓고, 핸드폰만 달랑 주머니에 넣었다. 나의 애마 자전거를 타고 공원까지 달렸다. 


장을 보러 나가거나 볼일을 보러 나간 적은 많지만 오늘의 외출은 기분이 남달랐다. 매일 보던 똑같은 풍경임에도 그 풍경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달랐기 때문이다. 발목에 채워져 있던 무거운 족쇄가 풀린 것처럼 발걸음이 한없이 가벼웠다. 목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차가운 바람이 마치 온몸의 세포를 깨우며 인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집에서 텔레비전과 핸드폰 화면으로만 접하던 세계를 내 두 발로 직접 밟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경이로웠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는 동안에도 인터넷 세상에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내 이야기를 쓰며 소통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반쪽짜리 세상이었다. 마치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에서 슬픔이 와 빙봉이 추상화되는 공간에 갇혔을 때와 같은 느낌이다. 나라는 존재의 본질은 같지만 '온라인 세계의 나''진짜 세계의 나'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오감이 그 사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의 한 장면





공원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진짜 세계를 발로 누비며 만끽하고 있었다. 나도 부지런히 두 다리를 움직였다. 아직 수줍게 피어있는 벚꽃과 눈이 시릴 정도로 푸릇한 새싹이 마음을 위로했다. 아파트의 시멘트 벽을 마주하고 보냈던 지난 몇 달간 무겁게 내려앉은 우울이 비로소 말끔히 씻겨나갔다. 매 걸음마다 앞으로는 진짜 세상에서 보내는 시간을 더 많이 가져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공원을 걸으면서 팟캐스트를 들었다. 진짜 세계를 운운해놓고 결국 핸드폰이 제공해주는 편의를 포기 못하는 것이 아이러니하지만 공원을 걸으면서 듣는 팟캐스트의 재미는 두말하면 입이 아프다. 오늘 들은 방송은 걷기 운동 이상으로 내게 유익했다. 마침 '몸이 먼저다'라는 책의 저자가 나온 방송 분량을 듣고 있었는데 작가님께서 몸, 즉 건강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셨다. 작가님이 말씀해주신 '매일의 운동으로 내 몸이 변화되었을 때 따라오는 삶의 변화들'을 나도 꼭 경험해보고 싶었다. 내가 그동안 물속을 부유하며 흘러가는 데로 몸을 맡기고 살아왔다면, 이제는 나의 팔다리를 직접 움직이며 방향을 잡고 헤엄치고 싶었다. 나의 그 첫 스트로크(stroke)가 바로 오늘의 걷기가 될 수 있으리라!


그리고 또 한 가지 꼭 기억하고 싶었던 내용은 인풋(input)과 아웃풋(output)에 관한 이야기였다.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책을 읽고, 유명한 강사들의 강의를 찾아 듣고, 유튜브로 배움을 얻는다. 하지만 아무리 인풋이 늘어도 아웃풋이 함께 늘지 않으면 물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말씀을 하셨다. 책을 읽거나 강의를 들을 때는 모든 것들이 이해되고 아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 내용들을 다시 한번 나의 언어로 정리해서 쓰는 과정(output)을 거치지 않으면 진정한 내 것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그러고 보니 최근 읽은 책들의 독후감을 쓰려다 정리가 어려워 포기했던 내 모습이 스쳤다. 글로 쓸 수 없다는 말은 내가 결국 그만큼 밖에 이해하지 못했다는 말이었다. 


따사로운 햇살과 아름다운 꽃길 사이를 걸으며 나는 다짐했다. 매일 아침 걷기와 글쓰기를 실천해보리라고. 나는 거창한 계획 세우기를 좋아해서 항상 며칠 만에 에너지가 고갈되어 버리는 단점이 있지만 그래도 또다시 계획을 세워본다. 매일 걷기와 매일 쓰기가 어떤 면에서는 별거 아니고, 어떤 면에서는 거창하지만 적어도 이런 방향성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내가 원하던 '헤엄치는 삶'이 가능하지 않을까?




오늘부터 진짜 세계를 걷는 기쁨을 매일 누리며 매일의 생각을 기록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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