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떴는데 기분이 좋았다. 기대가 되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걷기 운동이다. 전에는 아침에 눈을 떠도 아침 시간에 특별히 기대할 만한 일이 없기 때문에 미적거리는 시간이 길었는데 오늘은 카톡으로 코로나 관련 새로운 기사가 없는지 살펴보고 침대에서 바로 일어났다.
오늘의 아침은 또 우동이다. 이제 하나 남았는데 유통기한이 어제부로 지나서 선택했다. 아침부터 별로 영양가 없는 음식이라 죄책감이 들었지만, 멀쩡한 음식을 버리는 것도 죄책감이 들긴 마찬가지라 타협을 봤다. 오늘의 우동을 마지막으로 당분간 인스턴트 면요리는 자제해야겠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오늘은 어제보다 더 가벼운 차림으로 운동 갈 채비를 마쳤다. 적당히 보온이 되는 트레이닝 카디건과 청바지를 입었다. 걷기 편한 트레이닝 바지가 간절했지만 언제 살지 모르겠다. 아마 그냥 이대로 버티다가 곧 여름을 맞이해서 반바지를 입을 것 같다.
날씨가 하루가 다르게 따듯해진다. 오늘은 어제보다도 더 바람이 안 불고 볕이 따듯했다. 조만간 카디건 안에 반팔 티셔츠를 입고 나왔다가 카디건을 벗고 걸어야 할 것 같다.
설레는 마음으로 공원에 도착하자마자 인증 사진을 찍었다.
2020.4.16 걷기 운동 3일차
매일 운동을 하고 있다는 증거를 사진으로 남기면 나중에 분명 큰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일기를 쓰는 심정으로 매일 한 장씩 남겨야지. 언제쯤 저 검은 마스크를 벗을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밖에 나와서 걸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쁘다.
오늘로써 걷기 운동 3일 차. 작심삼일은 지켰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두 다리를 움직였다. 오늘은 걷기 전에 간단한 목표를 하나 세웠다. 어제보다 단 1 보라도 더 걷기! 어제 6,500 보 정도 걸었으니 오늘은 그 보다는 많이 걷고 집에 돌아가야지.
걸으면서 오늘도 역시나 팟캐스트를 들었다. 계속 부동산 투자 방송을 듣는데 광명 지역분석에 대한 내용이 나왔다. 올해 초에 남편을 꼬셔서 임장을 다녀온 지역이었는데 현재 남편 직장과 가깝고 재개발, 재건축 추진 중으로 앞으로 주거 환경이 개선될 여지가 많은 지역이라 관심이 갔다. 우리 주머니 사정으론 그림에 떡이었지만 준비하는 자에게 기회가 온다는 생각으로 다녀왔었다.
확실히 한 번이라도 직접 다녀온 장소라 그런지 동네가 머릿속에 그려지면서 설명이 쏙쏙 들어왔다. 내가 다녀온 곳은 철산역 근처였는데 방송을 듣다 보니 광명역 근처에 모든 교통 호재가 모여있었다. 광명역 인근은 현시점에선 아직 주거 단지가 크지 않아서 가격은 하늘 높이 치솟았지만 과연 실거주에서도 만족도가 가격만큼 높을지 모르겠다.
요새 그냥 다 내려놓고 지방 경치 좋은 곳에 작업실 달린 집을 사서 살고 싶단 생각을 한다. 다분히 현실 도피성 짙은 생각이지만 상상만 해도 몸이 이완되면서 스트레스가 풀리는 기분이다.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 공원의 아름다운 풍경을 집 안에서도 만끽하는 삶은 얼마나 행복할까.
행복한 삶에 대해 생각하자 오늘 새벽에도 잠을 설친 남편이 떠올랐다. 퇴사하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는데 엊그제 드디어 퇴사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모양이다. 나는 극심한 스트레스에 힘겨워하는 남편을 보며 적극적으로 퇴사에 동의를 했는데 그럼에도 매일 밤 통잠을 자지 못하고 깼다 잠들기를 반복하는 남편이 너무 안쓰러웠다. 다 행복하게 살자고 하는 일인데 돈 때문에, 명예 때문에, 남들 시선 때문에 모두가 자발적으로 투명 족쇄를 차고 살고 있는 요즘 시대가 안타까웠다. 남편이랑 아침 햇살을 맞으며 동네 공원을 거니는 여유는 꼭 부자가 돼야만 누릴 수 있게 되는 걸까? 순간 이 시간에 이 따사로운 햇살과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며 걷고 있는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 그리고 이 행복을 나 혼자만 누리는 게 얼마나 미안한지 몰랐다.
복잡한 감정을 느끼며 걷고 있을 때 장에서 신호가 왔다. 오늘은 두 바퀴째에 신호가 왔다. 어제보단 느렸지만 장에서 오는 신호를 느끼는 게 걷기 운동의 또 하나의 카타르시스이다. 매일 내 몸이 정직하게 보내오는 신호가 여간 반가운 게 아니다.
공원이 넓기 때문에 공공화장실이 두 군데에 있다. 하나는 공원이 지어졌을 당시 같이 지은 건물이고, 하나는 최근에 새롭게 지은 건물이다. 각각의 건물은 공원의 한쪽 끝에서 반대편 끝쪽에 위치해서 보통은 현재의 내 위치에서 가까운 화장실을 쓰면 된다. 하지만 나는 급하다는 장의 신호를 무시하고 억척같이 걸어서 새 건물로 갔다. 거짓말 안 하고 우리 집 화장실보다 더 좋은 곳에서 아침마다 쾌변을 할 수 있다니... 이 목적으로 걷기 운동을 매일 한다고 해도 납득이 갈 수준이다.
걷기 운동을 삼일째 하니 몸에 작은 변화도 민감하게 눈치채게 된다. 첫날 걸을 때는 몰랐는데 걷기 운동을 하면서 양팔을 앞뒤로 크게 휘두르니 한 두 바퀴가 지나면 양손에 피가 쏠려 퉁퉁 붓는다. 그럴 때는 적당히 팔꿈치를 구부려 손이 하늘을 향하게 하고 걷는다.
오늘은 어깨에서도 이상한 느낌이 났다. 팔과 어깨가 만나는 부분이 삐그덕 거리는 느낌이랄까. 요새 몸을 하도 안 움직여서 그런지 팔 돌리기를 하면 영 뻑뻑하던데... 그래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양철 나무꾼이 된 기분이다. 삐걱, 삐걱, 삐걱. 나는 어깨에 기름칠도 할 수 없고 난감하다. 걷기 운동을 계속하면서 팔운동이 지속되면 괜찮아질지 두고 봐야겠다.
그리고 오늘도 역시나 4 바퀴째 걸으니 골반이 저렸다. 이제 보니 왼쪽 골반에서 주로 그런 느낌이 왔다. 아마도 왼쪽 다리에 근육이 덜 발달해서 먼저 피로를 느끼는 게 아닐까 싶다. 앞으로도 몸에서 느껴지는 신호도 세세하게 기록을 남겨둬야겠다.
4 바퀴를 다 걷고 손목밴드를 확인했다. 오늘은 6989보를 걸었다. 어제보다 대략 500보 더 걸은 것이다. 소소한 오늘의 목표도 가볍게 달성했다. 똑같은 4 바퀴여도 오늘은 더 바지런히 다리를 움직였나 보다.
공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이마트가 있어서 간단히 장을 보고 갈 생각이다. 예전에는 집에서 마트 나가는 것도 종종 귀찮아서 냉장고에 있는 재료로 대충 끼니를 해결했는데 걷기 운동을 시작하니 나온 김에 장까지 볼 수 있어서 좋다.
걷기 운동이 기다려지는 이유가 점점 늘어난다.
걸으면서 듣는 팟캐스트
장에서 오는 반가운 신호
오감으로 느끼는 자연
집에 오는 길의 장보기
활력 있는 낮 시간
부쩍 오른 식욕
오늘 밤도 꿀잠 예약이라는 설렘
내일은 엄청난 폭우가 쏟아진다는데... 벌써부터 걷기 금단 현상이 올 것 같다. 내일은 어떤 하루가 펼쳐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