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에서 일어나기가 싫었다. 30분만 더 자자, 10분만 더 자자 하다가 8시를 넘기고 그제야 일어났다. 병원에서 처방받는 배란유도제와 다른 약을 며칠 전부터 먹기 시작했는데 아마도 그 때문일 것이다. 걷기 운동을 하며 일정하게 유지하던 기분도 요 며칠 출렁인다. 몸속 호르몬 때문에 감정도 널뛰는 것을 생각하면 아이러니하다. 온전히 내 것이라고 생각했던 무언가가 실은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니었던 기분이다.
평소보다 떨어진 식욕. 저번에 산 불고기를 대충 익히고 어제 산 올리브 치아바타에 올려 먹었다. 양상추 사다 놓은 게 생각나 꺼내왔다. 입맛은 없어도 꽤 맛있는 아침 식사였다.
오늘은 아침 식사를 하며 텔레비전을 켜지 않았다. 식탁 맞은편에 위치한 텔레비전. 리모컨 하나만 까닥하며 재까닥 켜질 텐데... 그러면 또 한 동안 텔레비전 영상에 빠져서 걷기 운동이 늦어질 것 같았다. 오늘은 학원 출근하는 날이기도 하니 점심 전에 모든 것을 끝마쳐야 한다.
식욕과 마찬가지로 의욕도 떨어져서 걸으러 나가는 길이 전처럼 신나진 않았다. 매번 저 약을 먹을 때마다 겪는 부작용이라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공원으로 향했다. 오로지 걷기 위해서 아침에 일어난 사람처럼 내게 주어진 목표를 완수하고 싶었다.
2020.04.29 매일 걷기 16일차
이틀 만에 되찾은 이어폰을 귀에 꽂고 처음엔 책을 들었다. 아멜리 노통브의 <푸른 수염>이란 작품인데 컴퓨터가 읽어주는 소설책은 어쩐지 더 기괴하게 들린다. 게다가 문장들을 세심하게 집중해서 들어야 해서 눈 앞의 시각 정보들은 그냥 스쳐 지나갈 뿐 남는 것이 없었다. 라디오나 음악을 들으면서는 청각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감각들도 비슷한 수준으로 열려 있는데 책을 듣는 것은 좀 다른 영역에 있는 것 같다. 한 바퀴를 돌고 나서 평소 즐겨 듣던 부동산 팟캐스트를 다시 켰다.
어제부터 걷기 운동에 뛰기를 덧붙이기 시작했다. 어제는 4 바퀴 중 2번 숨일 찰 때까지 뛰었는데 오늘은 4 바퀴 내내 코스 중 일부는 숨이 찰 때까지 뛰고, 나머지는 걸었다. 스트레칭을 운동 끝날 때마다 해서 그런지 오늘은 허벅지 근육통이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뛸 때도, 걸을 때도, 자전거를 타고 집에 돌아올 때도 아침부터 가라앉은 감정은 변화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나의 몫을 다하고 돌아와서 뿌듯하고 안심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