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우연히 책상 위에 펼쳐진 아이의 그림일기를 보게 되었다. 그 속에는 주말마다 아빠와 보냈던 시간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캠핑장에서 타닥타닥 타오르던 캠프파이어,
둘이서 숨 가쁘게 올랐던 보문산의 능선,
케이블카에서 내려다본 푸른 바다.
돌이켜보면, 아이에게 늘 좋은 날들만은 아니었다. 불편한 마음에 짜증을 내고, 아빠에게 혼이 나 눈물을 글썽였던 날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아이는 그 시간들 중에서 가장 눈부셨던 장면들만을 골라 필름처럼 간직하고 있었다. 고마움보다 미안함이 먼저 차올랐다.
한때 아이에게 아빠는 전부였다. 우주였고, 가장 편안한 놀이터였다.
퇴근하자마자 가방을 내던지고 녀석을 목마 태워 밖으로 나가는 게 일상이었고, 깜깜해져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매일 함께 씻고, 함께 잠들었다.
주변에서는 "보통 엄마를 더 찾을 텐데"라며 아빠만 찾는 아이를 신기해했다. '아빠 껌딱지'라는 별명이 훈장처럼 느껴지던 시절이었다.
변화는 초등학교 입학과 함께 찾아왔다. 아내의 휴직으로 아이의 곁은 엄마의 차지가 되었고, 나는 자연스레 뒤로 밀려났다. 밀려났다는 서운함을 혼자 삼키는 날들이 늘어갔다.
아이를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는 조급함은 아이를 기다리는 시간을 점점 어렵게 만들었다. 잔소리와 통제는 늘어났고, 누구보다 가까웠던 관계는 조금씩 멀어졌다.
'혹시 이런 아빠가 불편해진 건 아닐까.' 둘만 있을 때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괜히 망설이게 되었다. 이러다 정말 대화 없는 어색한 부자관계가 되는 것은 아닐까, 걱정으로 밤을 지새운 날들도 있었다.
그러다 얼마 전, 학원 선생님과의 면담에서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새로운 활동을 할 때마다 아빠랑 해봤다고 꼭 자랑해요. 아빠가 참 잘 놀아주시는 것 같아요."
그 말을 듣는 순간 깨달았다. 잠깐의 갈등과 어색함이 우리가 함께 만들었던 견고한 우주를 뒤덮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가 함께 보냈던 그 시간은 아이의 마음 어딘가에 단단히 남아 있다는 것을.
언젠가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사람들은
당신이 한 말과 행동은 잊지만,
당신이 어떤 느낌을 주었는지는
결코 잊지 않는다.
훗날 아이는 아빠와 정확히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아빠가 그때 무슨 말을 했는지 희미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함께 웃고, 함께 놀고, 함께 있었던 그때의 감정만은 오래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