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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PD 빅대디 Jul 12. 2024

첫 번째 미운 정

노인과 바다

교회에 있는 아이들에게 저는 ‘포비 아저씨’로 불렸습니다. 덩치도 크고 동글동글한 몸을 가져서이기도 하지만, 웬만하면 허허 웃어넘기는 아저씨라 그랬답니다.

편백나무로 애들이랑 같이 만들었던 포비 얼굴 :)

전 아주 지독한 태생적 ‘평화주의자’입니다. 싸움이 일어나는 걸 견디질 못하죠. 저로 인해서 싸움이나 갈등이 일어나는 것도 싫고요. 그래서 그런 일이 생기면 안절부절못하게 될 때가 참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소개할 인간극장을 만들게 되면서 일로 만난 갈등 상황에서는 결국 어느 정도 소신을 굽히지 않고 싸워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에 대해 배우게 되었습니다. 무디기만 하던 저에게 단단함을 알려준 이번 인간극장의 주인공, 인천 앞바다의 마도로스, 유동진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팀장님이 여름에 하루이틀 정도 인천에 촬영을 나가셨습니다. 배를 짓고 있는 까칠한 할아버지 한분이 계시는데 캐릭터도 세고 볼만은 할 거 같아서 일단 나가서 며칠 찍어오셨다는 거예요. 100년 가는 배를 만들고 싶으시다는 그 할아버지는 성경에 나오는 노아 할아버지처럼 땅 위에서 나 홀로 목선을 뚝딱뚝딱 만들고 있었습니다. 한번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인천광역시 동구의 한 작은 부두로 할아버지를 만나러 갔습니다.

인천 동구의 화수부두. 가운데 보이는 하얀색 천막이 유동진 할아버지의 작은 조선소였죠.

비닐로 만들어진 커다란 천막 안에서 깡깡 거리는 쇳소리가 나고 있었습니다. 천막의 문 격인 비닐을 밀고 들어가니 해병대 모자를 눌러쓴 할아버지가 배 바닥에 누워서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깊게 파인 주름에 꽉 다문 입술, 틱틱 거리는 말투와 뭔가 깊어 보이는 눈매까지... 처음 본 순간부터 ‘이 사람, 쎄다!’ 하는 느낌이 드는 그런 분이었습니다. 이분이랑 촬영을 진행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저는 평화주의자니까요. 그런데 뭔지 모를 이상한 끌림이 있었습니다. 학창 시절을 보냈던 인천에서의 촬영할 수 있다는 것도 좋았고, 무엇보다 할아버지의 캐릭터에서 이상한 매력을 느껴버리고 말았던 것 같아요. ‘나쁜 남자’의 그런 매력.


그리고 유동진 할아버지의 아내 분의 캐릭터도 너무 좋았습니다. 말의 내용에서는 분명히 한 서린 부분들이 드러나지만, 할아버지를 대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은 할머니 특유의 재치와 유머가 드러나서 상당히 재미있는 그런 분이셨어요. 그래서 두 분이 함께 있는 시간에 생기는 캐미는 굉장했습니다. 그리고 이때만 해도 배를 올해 안에 만들어서 (당시가 11월 말 정도였던 걸로 기억해요) 바다에 내리는 게 가능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캐릭터도 괜찮고, 배가 바다에 내려가는 장면까지 찍을 수 있다면 충분히 이야깃거리가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할아버지의 캐릭터 때문에 일주일 정도 고민을 하긴 했지만, 인천의 노아 노부부를 다음 인간극장의 주인공으로 정하고 촬영에 들어갔습니다.


이번 인간극장의 특징은 20일을 주욱 찍어서 방송을 낼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면 20일을 연달아서 찍으면 거의 같은 배 작업 장면만 찍게 될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매일 서울을 오가며, 하루만 다녀오기도 하고, 3-4일 연달아 가기도 하고 하면서 촬영을 진행했습니다. 나머지 시간에는 촬영본의 씬을 조금씩 계속 편집해 두면서 말이죠. 매일 아침에 오늘은 뭐 하시냐고 전화하고 갈지 말지 결정해서 촬영을 진행하는 조금은 낯선 방식으로 촬영을 진행했습니다.


나무로 뼈대를 만드는 작업은 한참 전에 마무리하셨고, FRP(할아버지 말로 ‘에팔피’)라 부르는 유리섬유강화플라스틱을 배 전체에 펴 바르는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나무로 만드는 배니까 물이 들어가면 썩을 수 있으니 정말 최선을 다해 바르셨습니다. 하루. 이틀. 사흘. 매일 ‘에팔피’만 바르고 계셨습니다. 매일 같은 작업만 하는 걸 방송에 내보낼 수는 없는데... 조금 쎄한 기분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날이 갈수록 배를 내릴 수 있다는 시간이 늦어졌습니다. 크리스마스면 되겠다, 연말에는 할 수 있다, 그러다가 이거 안 되겠는데... 아무래도 내년으로 넘어가야겠어... 까지 나아갔습니다.

여름부터 겨울까지 무한 반복되던 애증의 '에팔피'(FRP) 작업

물론 바다에 배가 내려가지 않아도 방송을 낼 수 있게 만들 수는 있지만 문제는 매일 똑같은 작업을 하시는 걸 가지고는 방송을 만들기가 너무 어렵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결국 어느 날 밤, 할아버지의 집에서 할아버지와 독대를 했습니다.


아버님, 에팔피만 매일 바르고 계시면
방송을 만들 수가 없어요.
저한테 거짓말하신 거예요?
할아버지가 배 만드는 데에
목숨이 달렸다고 하시는 것처럼,
저도 이 방송을 만드는 데
목숨이 달렸어요!
계속 안 도와주시고 고집만 부리시면
저는 이 방송 접어야겠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생에서 제일 단호하게 말해본 말이었던 것 같습니다. 할아버지는 잠시 먼 산을 바라보며 곰곰이 생각을 해 보시더니 대답을 툭 던지셨습니다.


알았어.


그 뒤로는 저녁 시간에는 할머니가 하고 싶어 하시던 것들을 해보는 시간으로 정했습니다. 병원에도 가보자고 하니 같이 가주기도 하시고, 노래를 좋아하는 아내와 노래방도 같이 가고 했습니다. 그러다 며칠은 낮에도 시간을 내주셔서 아내에게 선장옷 맞춰줄 거라던 말을 하셨던 걸 기억했다가 함께 가서 옷도 맞춰드리고, 고사도 지내고요. 보통은 인간극장 출연자 분들과 고운 정만 많이 들었는데 이 인간극장을 찍으면서는 미운 정, 고운 정이 다 들었던 것 같아요. 처음에 좀 갈등이 있었지만, 할아버지의 그 고집이 점점 이해가 되고 인정이 되면서 저도 제 욕심을 조금씩 내려놨습니다.


그러고 보니 할아버지의 매일 똑같아 보이는 일상 속에도 굉장히 많은 버라이어티가 있다는 사실이 10일 이상 촬영한 다음에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다른 사람들이 천막에 다녀가고, 할머니와 나누는 말들도 다 다르고, 철판도 붙이고, 스크루도 달고 생각보다 다양한 많은 작업들을 담을 수 있었습니다. 손주와의 하루, 그물 시험하러 나가본 바다. 그냥 묵묵히, 더디면 더딘 대로 하루만큼 진척을 만들어가는 삶. 어찌 보면 그 누구보다 정직한 삶이다 싶었습니다. 결국 출항은 못했으니 방송 나가기 전날까지도 촬영을 해서 보강 촬영을 했습니다. 그리고 방송이 나갔죠.


배는 어떻게 됐냐고요?


결국 저랑 촬영하고 나서도 1년을 더 작업해서 그 해 연말에 선광호는 진수를 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가을부터는 본격적인 조업도 시작하셨어요. 바다에 다니며 팔뚝 만한 수조기도 잡으시는 모습이 후속편에서 나오는 걸 보고는 내심 감사하고 안도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연락을 드린 지 꽤 오래 지났습니다. 지금도 선광호는 바다를 잘 누비고 있겠죠? 조만간 부두로 한번 두 분을 만나 뵈러 가봐야겠습니다.



혹시나 궁금한 분이 계시다면


인간극장 <노인과 바다> 1부 다시 보기

https://youtu.be/xbrf4cm4-Zo?si=bzFqJt2Y-IhE7A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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