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 늦복 터졌네
꿈 꾸는 소년, 정우와의 이야기를 마치고 오랜만에 가족과 한 주 간의 꿀 같은 휴식을 가졌습니다. 잠시 일에서 떨어져 쉼을 갖는 건 참 좋더라고요. 그리고 쉴 때 느끼는 또 하나의 유혹 아닌 유혹은 이렇게 계속 놀면서 살면 얼마나 편할까, 얼마나 좋을까 하는 것인데요. 네번째 인간극장 연출작을 통해 만났던 주인공은 바로 이 생각을 정면에서 반박하는 분이었습니다. 소소하더라도, 몸을 움직이는 것의 가치를 보여주셨던 분이시죠.
휴가를 마치고 주인공을 찾기 위한 회의에 들어갔습니다. 이번에도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후보로 올라왔죠. 그런데 이 텀에는 유독 눈에 띄는 이야기가 없었어요. 지금 와서 돌아보면, 일하기 싫었던 그 마음이 그런 고자세에도 영향을 주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다 작가님이 책 하나를 들고 오셨습니다. 그 책 안에는 꼭 어린이가 쓴 것 같은 삐뚤빼뚤한 글씨로 아주 짧고 간결한 시들이 적혀 있는 책이었습니다.
<집1>
달이 훤히 떴을 때
집을 보면 집이
그렇게 이뻣다
<어머니가 제일 좋았을 때>
니가 우리 집에 올 때
환장하게
이뻣다
- 나는 참 늦복 터졌다 中 -
어찌 보면 별 거 아닌 이 짧고 담백한 글들이 마음에 남았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누가 쓰신 거냐 물었습니다. 작가님은 섬진강 시인, 김용택 시인의 어머니인 박덕성 할머니가 쓰신 거라고 하셨죠. 느즈막히 한글을 배우시고 글을 쓰기 시작하셨다고 말이죠. 학교의 선생님이었고, 시인이었던 김용택 선생님의 어머니가 여든이 넘어서야 한글을 배우셨다는 것도 뭔가 어색하고 신기했지만, 저 담백함 속에 담긴 어머니의 삶이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전주로, 임실로, 김용택 선생님의 가정을 만나러 갔습니다.
일단 김용택 선생님과 사모님을 전주 한옥마을에서 만났습니다. 두 분의 티키타카도 상당히 재미있었습니다. 은근한 신경전과 나이보다 귀여운 투닥거림이 너무 좋았습니다. 그리고 툭툭 던져주시는 삶의 지혜들도 너무너무 좋았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할머니의 이야기였으면 했습니다. 그래서 할머니를 뵙고 싶다고 말씀드리고 사모님과 함께 이동했습니다. 함께 향한 곳은 전주 시내에 있는 한 요양병원. 몸이 여기저기 많이 아파지셔서 할머니를 요양병원에 모신 지 몇달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머릿속에선 요양병원에 있는 할머니들의 일반적인 모습이시면, 이야기를 풀어가기 어렵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병원에 들어섰습니다.
방에 들어서기 전 보이는 몇몇 침상에 있는 할머니들은 생각하던 모습이었습니다. 옆으로 누워서 티비를 보고 계시고, 멍하니 누워 하늘만 보고 계신 할머니들. 그러다 박덕성 할머니 자리로 눈을 돌렸는데 빛이 나는 느낌이었습니다. 홀로 꼿꼿이 자리에 앉아 바느질로 수를 놓고 계셨습니다. 수를 놓는 것도 최근에 가지신 취미라고 하셨습니다. 표정도 밝으시고, 무엇보다 웃으시는 얼굴이 너무나 예쁘셨어요. 다른 분들과 다르게 웃고 계시는 할머니의 모습에서 뭔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게 있겠다 싶었습니다. 제 마음 속에서는 그 자리에서 결정했었습니다. 이번 인간극장은 이 이야기로 해야겠다... 말이죠.
돌아오는 길에 사모님은 저에게 할머니와의 이야기들을 좀 더 들려주셨습니다. 원래는 꼬장꼬장한 전형적인 시골 할머니셨고, 예전에는 표정도 더 무섭고, 화도 많으신 분이었다고 말이죠. 그러다 몸이 아파지셔서 농사도 못 짓게 되시고, 그러다 보니 되게 우울해 하셨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한글을 배우기 시작하시고, 수를 놓기 시작하시면서, 확 좋아지셨다는 거였어요.
소소한 걸 손으로 다시 하시니까
확 피어나시더라고요.
그 때 머릿속에 한가지 문장이 확 스쳐갔습니다. 이번 편의 주제가 된 문장이었죠.
가을의 초입에서 전주와 임실을 오가며 촬영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안 나오고 싶어했던 손녀 민해 씨까지 이야기에 가세하자 이야기가 풍성하게 피어났습니다. 할머니와 손녀의 케미는 대단했죠. 할머니를 가장 밝게 웃게 만드는 건 손녀딸이었습니다. 밝게 웃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면 이전의 모습이 쉽게 읽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방송을 만들기 위해서 여러가지 사진을 모으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지금 할머니의 모습이 아닌 눈살이 딱 찌푸려져 있는 무서운 할머니의 모습이었거든요. 이렇게 바뀔 수가 있다니... 놀라웠습니다. 가족들도 똑같은 말을 해주셨습니다. 예전에는 정말 힘들게 사셨다고. 일도 너무 많이 하시고, 예전에는 잔소리도 많이 하고 그러셨다고. 아파서 일을 하실 수 없게 되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시게 되면서 오히려 할머니의 삶에는 새로운 페이지가 펼쳐졌던 것 같습니다. 할머니가 좋아하시는 것들을 통해 말이죠. 한글도 배우시면서 좋아하는 가족들의 이야기를, 추억들을 기록하기 시작하셨고, 천 위에 예쁜 그림들을 수를 놓기 시작하셨어요.
할머니의 글씨도 너무나 따뜻했지만 할머니의 수는 정말 따뜻했습니다. 놀라울 정도로요. 기술적으로 뛰어난 수는 아닐지도 몰랐지만, 할머니가 선택하신 알록달록한 색깔로 만들어진 닭, 소, 꽃들을 바라보면 웬지 모를 따뜻함이 마음 속에서 피어올랐습니다. 특히나 시골집에서 할머니의 작품들을 펼쳐보고 작은 전시회를 했던 적이 있는데, 시골집과 어우러진 할머니의 작품들은 정말 장관이었습니다. 제가 봤던 어떤 전시보다도 뭉클한 전시였어요. 할머니의 웃는 얼굴을 할머니가 수놓은 황소와 함께 찍어드렸는데, 10년이 넘는 PD 생활 속에서 손에 꼽는 잊을 수 없는 한 컷입니다.
촬영을 할 때도, 카메라를 끄고 저녁에 가족들이랑 수다를 떨 때도, 유쾌하고 편안한 촬영이 계속 되었어요. 인상 깊었던 건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다른 가족들도 내가 지금 시작할 수 있는 각자의 ‘수 놓기’를 시작했다는 거였습니다. 새로운 것을 시작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얼굴이 점점 피어가는 할머니는 가족들에게도 새로운 영감을 주고 있었습니다.
촬영을 마치고 마지막 저녁 수다를 다 떨고 나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정말 감사한 말을 해 주셨습니다. 이게 내가 다큐멘터리를 하는 이유구나, 나의 즐거움이구나 생각했던 그 말.
덕분에 진짜 제 삶을 돌아봤어요.
생각도 안했던 걸 옆에서 계속 물어보니까 생각해 보게 되더라고요.
감사했어요.
휴먼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즐거움.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구성하는 기쁨. 지금도 힘이 들면 이 말을 되뇌입니다. 어쩌면 박덕성 할머니의 이야기는 저에게도 새로운 영감을, 힘이 들 때 다시 돌아갈 원동력과 회복력을 주신 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방송을 마치고, 아이가 태어난 후에 할머니를 찾아뵈러 갔습니다. 할머니는 그 때도 너무나 밝은 웃음으로 저희 가족들을 맞아주셨어요. 나중에는 집으로 직접 꽃을 수놓은 아기이불도 보내주셨어요. 이제 그 아이는 초등학생이 되었지만, 여전히 저희 집에 보물처럼 간직하고 있습니다. 부고를 아무에게도 보내지 않으셔서 마지막 가시는 길 인사를 드리지는 못했지만, 지금도 유튜브에 남아있는 할머니 모습을 보면서 그 때의 따뜻한 기억들을 떠올리곤 합니다.
우리 모두는 늙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니까요. 그런데 나이가 들어서 늙는 건 아니었습니다. 박덕성 할머니는 늙지 않는 비결을 저에게 보여주셨거든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즐겁게 사는 것. 갈수록 밝게 피어나던 할머니의 얼굴을 기억하며, 오늘도 즐겁게, 좋아하는 이 일을 하면서, 지금을 살아갑니다.
혹시나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
인간극장 <우리 엄마 늦복 터졌네> 1부 다시보기
https://youtu.be/5K-o_Ge1JEY?si=VbYuy2uHEsuY_Zd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