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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우주 Aug 21. 2023

'70만 원'짜리 방 한 칸에 삽니다

자취와 ‘월세’

월세를 70이나 낸다고? 진짜 아깝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근황을 나누면서 자취를 하게 되었다고 하니, 모두의 첫 질문은 똑같았다.

"전세야? 월세야?"


이 질문에 담겨있는 슬픈 이야기는 후보 중에 매매는 없다는 게 아닐까 싶다.

나의 대답은

"월세지. 전세는 요즘 무서워서 못 들어가겠어."

라는 대답이었다.


그럼 다시 돌아오는 질문도 99% 일치했다.

"월세는 얼마야?"

친구들을 더욱 깜짝 놀라게 해 줄 대답으로화답해줘야 한다.

 "70만 원이야. 조금 비싸지?"


한 달을 살아가는 비용, 서울에서 방 한 칸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대가로 내는 70만 원은 직장인에게는 매우 큰돈이다.


70만 원이 10 달이면 700만 원이다.

평상시에 10만 원짜리 옷을 사는 것도 큰 마음먹고 살까 말까 고민하다가 결국 인터넷 최저가로 구매하곤 한다.

그런데 숨만 쉬어도 사라지는 비용이 70만 원이라니, 그 생각을 하면 돈이 아까워서 잠을 못 이룬다.


이렇게 70만 원이라는 비용이 항상 고정비용으로 나가다 보니 내 삶의 기준은 70만 원에 고정되어 있다.

월급이 들어오면 우선 70만 원을 빼고 이번달에 지출할 예정인 항목이 있는지 확인하는 게 일상이 되었다.

 '70만 원을 빼면 얼마가 남지? '


이 숫자가 주는 압박감은 생각보다 크다.

일상생활에서 나를 스치는 모든 돈의 크기를 이 숫자와 비교한다.

내 월급은 70만 원 대비 몇 배인지, 이 숫자를 빼면 얼마가 남는지가 이번달을 살아가는데 기준이 된다.


무리하게 쇼핑을 하거나, 여행을 가게 되어 예산을 초과하게 되면 난감하다.

저녁밥의 퀄리티를 조금 줄이더라도 줄일 수 없는 숫자란 말이다.



출처 : pixabay
올해는 2만 원을 올려야겠네요


물론 처음 자취를 시작할 때는 70만 원이라는 숫자보다 적은 금액이었다.

첫 자취집은 전국에서 서울에 올라온 모든 자취생이 모인다는 관악구의 서울대입구 근처였다.

특히 서울대입구는 서울 2호선이 다니기 때문에 강남으로 출퇴근하기가 편했다.


강남 근처는 월세가 워낙 비싸다 보니 한 정거장씩 멀어지는 곳을 찾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자취생이 정말 많은 서울대입구 주변으로 정할 수밖에 없었다.


최대한 40만 원 이내로 월세를 구하겠다고 다짐하고

부동산을 최소 10번은 방문했다.

그러나 40만 원에 집을 구하려면 역에서 10분 이상 떨어져 있거나, 집이 정말 오래됐거나 둘 중에 하나였다.

통창 뷰가 있는 멋진 오피스텔을 꿈꿨지만 택도 없었다


그렇게 찾고 또 찾다가 48만 원에 다가구 주택이 마음에 들어 바로 그날 계약금을 넣게 되었다.  

'48만 원에 역세권이고 집도 거의 신축이니깐 너무 잘 구한 거 같아. '

라고 생각하며 기분 좋게 지내면서 일 년이 지나갔다. 초보 자취생인 내가 간과한 게 있었다.

바로 이 숫자는 고정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집주인에게 집이 마음에 들어 1년 후에 계약 연장을 하고 싶다고 하자 바로 이렇게 대답했다.

"아가씨가 얼마나 싸게 사는지 알아?

내가 진짜 싸게 준거야.

그래서 올해는 2만 원을 올려야 할 거 같아.

그리고 보증금도 좀 올려주고. 1500으로 하자."


당연히 금액 그대로 연장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당황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집주인의 화려한 말솜씨를 듣다 보니 정말 내가 저렴하게 사니깐, 금액을 올리는 건 당연한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네 알겠어요. 그렇게 할게요"라고 말하며 그 집에 일 년을 더 살게 되었다.


여기서 더 이상 월세금액이 오르지 않았다면 해피엔딩이었겠지만, 그 집에 3년을 살면서 매년 금액을 올려줘야 했다.


처음 해에는 보증금이 천만 원이었고,

다음 해에는 천오백만 원,

그리고 이천오백만 원까지 올랐다.

이에 질세라

월세도 48만 원, 50만 원, 55만 원까지 올랐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집주인에게도 질리고,

그 동네에도 질린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나 여기를 떠나야겠다.'



출처 : pixabay
매일 조깅만 해도 돈이 아깝지 않겠어


첫 자취 집 주변에 공원이나 조깅할 수 없는 공간이 없어 매일 주변 아파트에서 뛰곤 했다.

그래서인지 다음 자취집을 구할 때는 금액을 더 주더라도 조깅할 수 있는 공간을 찾고 싶었다.


그러다 친구들과 우연히 잠실에서 저녁을 먹고 석촌호수를 걷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이곳에 와야겠다. 호수를 보며 매일 조깅할 수 있잖아?'


너무 순수한 마음이었을까.

아니면 내 집이 없다는 핑계로 시세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내 잘못일까.

보증금 2000만 원에 월세 60만 원이라는 나름대로 돈을 더 주고도 살겠다고 다짐했으나 턱없이 부족했다.


송파구 특히 석촌호수를 주변으로 둘러싼 잠실과 석촌은 관악구에 비해 월세 가격이 훨씬 높았다.

회사를 퇴근하고 일주일 동안 거의 매일 석촌역에 있는 부동산에 들려봤지만 성과가 없었다.


"저 60만 원에 나온 원룸 있나요?

석촌역에 가까웠으면 좋겠는데요."

하지만 부동산 중개인이 데려다주는 집은 역과 너무 멀고 25년이 넘은 오래된 빌라 밖에 없었다.


어떤 중개인은 집을 보여주지도 않고

"그런 집 구하기 어려워요. 돈을 올리셔야 해요."

라며 딱 잘라 말했다.

그렇게 60만 원에서 62만 원, 65만 원이 됐다가 최종적으로 70만 원이 되어 현재의 숫자가 된 것이다.


지금의 원룸을 구한 날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이미 5번 이상 석촌 주변에 부동산을 돌아다니며

지칠 대로 지친 나는 큰 기대 없이 석촌 호수 주변에 부동산을 찾았다.


부동산 중개인은

"70만 원 보신다고 하셨죠? 마침 오늘 딱 나온 집이 있는데, 이전에 살던 사람이 급하게 나가느라 나온 집이에요. 빨리 보러 가시죠."라고 운을 띄웠다.


사실 나는 그렇게 이야기해도 감흥이 없었다.

부동산을 하도 다니다 보니, 중개인이 하는 이야기는 거기서 거기였다.


하지만 같이 집에 방문해 보니 생각이 싹 바뀌었다.

원룸이지만 주방과 안방이 분리되어 있는 분리형 원룸이었다.

그리고 주방에는 밥을 먹을 수 있는 작은 테이블도 놓을 공간이 있었다.

안방도 이전 자취방보다 훨씬 넓었다.

침대를 놓고 소파를 넣어도 되는 면적이라니.

과장 보태서 약간 눈물이 날 것 같은 마음이었다.

그리고 바로 중개인에게 말했다.

" 저 이 집 할게요. "


그렇게 자취 3년 차만에 나는 관악구를 떠나 송파구에

두 번째 자취집을 얻게 되었다.

70만 원이라는 숫자는 물론 너무나 큰 숫자였다.

하지만 내가 원하던 역세권과 집 크기, 무엇보다 석촌호수를 걸어갈 수 있다는 것이 나에게는 너무나 큰 행복이었다.


이왕 이렇게 70만 원을 써야 한다면

그 시간을 더 가치 있게 살아보기로 다짐했다.

70만 원이

'소비'가 아니라 '투자' 라면

충분히 쓸 수 있는 돈이다.

월세를 숨만 쉬어도 나가는 소비라고

생각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투자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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