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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우주 Sep 18. 2023

혼자 사는데 부양가족이 생겼습니다

자취와 ‘부양가족’


출처 : pixabay

최근에 회사에서 팀원들과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대리님은 혼자 밥 먹으면 어디까지 갈 수 있으세요?

저는 아직 혼자 먹는 게 어색하네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다양했다.


옆에 앉은 차장님은 혼자 분식집, 해장국 집 등 주로 혼자 먹는 사람이 많은 곳 위주로 간다고 했다. 그 옆에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입사원은 음식점에서 혼자 먹는 건 외로워서 잘 가지 않는다고 했다. 그럴 바에는 집에서 배달을 시켜 먹는다고 했다.


나의 대답은 이랬다.

"전 웬만해서 다 먹어요. 다음에는 삼겹살도 도전해 보려고요"




자취를 하면서 크게 변한 점 중 한 가지는 '1인분'을 먹어야 하는 상황이 많아진 것이다.

아니 많아진 것보다는 대부분의 상황에서 혼자 먹어야 했다.


특히 아침밥이 곤욕이었다.

자취를 시작하고 나서야 엄마가 왜 맨날

"다음날 아침에는 뭐를 먹어야 하지? "

하면서 반찬걱정 하셨는지 드디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아침에 아무것도 안 먹고 회사에 출근하기에는 너무 배가 고프고, 그렇다고 혼자 아침밥을 챙겨 먹기에는ㅍ시간도 부족했다.

집 주변 마트를 둘러보면서 '뭐를 먹지?' 하면서 몇 바퀴를 돈 적도 있다.


견과류에서 계란을 삶아 먹기도 하다가, 샐러드를 먹어보기도 했다.

그렇게 이렇게 저렇게 시도하다 보니 나에게 잘 맞는 아침식사는 그래놀라와 요거트를 먹거나 닭가슴살 제품이라는 아침밥 취향이 점점 생기기 시작했다.


이 두 가지 아침식사의 공통점이라 하면 모두 요리가 필요 없는 초간단 식단이다.

이제는 마트에서 파는 그래놀라는 종류별로 다 먹어본 것 같고, 나름 고수가 된 듯했다.


그렇게 아침에 루틴 하게 혼자 1인분의 식사를 하는 것이 익숙해질 무렵, 자취를 하던 자취선배들이 매일 하던 이야기가 문득 떠오르며 100% 공감이 갔다.

" 엄마가 해주는 집밥이 최고야."





출처 : pixabay

1인분으로 사야 하는 건 음식뿐만이 아니었다.

자취 전에는 내 돈 주고 사본 적도 없는 생활용품도 1인분으로 구매를 해야 했다.

휴지부터 시작해서 칫솔, 치약, 샴푸 등의 욕실 용품과

수세미와 그릇과 수저 하나까지 직접 사야 하는 현실이 다가온 것이다.


처음에는 진짜 이걸 하나하나 사야 하는 현실을 부정하고 싶을 정도였다.

"나 한 명 1인분으로 살아가기 위해 이렇게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고? "라고 깜짝 놀랐다.


혼자 살기 전 부모님과 함께 사는 30년의 생활동안은

항상 집에 구비되어 있던 생활용품이었다.

휴지가 부족한 적이 없었고, 샴푸는 항상 꽉 차있었다.

어린아이스럽게도 이런 생활용품은 자동으로 리필이 되는 줄 알고 살았던 것이었다.


1차로 무수히 많은 생활용품을 사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인정하지 않으면 별 수 있나?

없으면 당장 쓸게 없었다.

당장 화장실에서 휴지를 못 쓰고, 아침에 머리를 못 감는다.(상상하지 말아 주세요)

그래서 부랴부랴 다이소와 절친한 친구가 되며 하나하나 사기 시작했다.


2차로 놀랐던 점은 1인분의 생활용품이 오히려 비싸다는 점이었다.

부모님과 함께 살 때 필요한 4인분이 1만 원이었으면, 1인분은 2500원이 돼야 정상적이지 않는가?

하지만 막상 마트에 가보면 1인분은 3000원에서 4000원일 때도 많았다. 최소 2~3개는 묶음으로 되어있는걸 사야 조금 저렴해지고, 한 개씩 사려고 하니 가격 부담이 많이 되었다.


나도 모르게 핸드폰 계산기를 두드리며

'이렇게 사면 한 개당 얼마지? 이거 다 사서 어디다 두지? '를 고민하고 있었다.


첫 자취를 시작하고 나서 엄마와 함께 집 근처에 다이소에 방문한 적이 있다.

가위, 칼부터 시작해서 수세미, 그릇 등 다양한 걸 보이는 데로 다 담고 있었다. 엄마의 손길은 거침이 없었다.

필요한 것을 모조리 다 담아보겠다는 강한 의지가 보였다.

그리고 이것저것 생활용품을 고르는 엄마의 표정이 너무 밝았다.

"엄마, 이거 사는걸 왜 이렇게 좋아하세요? "

라고 물으니 엄마가 대답한 게 4년이 지난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다.

"우리 집 물건 사는 게 아니고, 네 거 사는 거잖아.

가격 안 보고 필요한 거 다 담으니 쇼핑하는 것 같고

기분이 좋네."

장바구니에 쌓이는 물건의 개수가 많아질수록 엄마는 어린아이마냥 신이 나고, 나는 급격히 표정이 안 좋아졌던 첫 생활용품 쇼핑날의 기억이었다.




1인분이 이렇게 크고 비싼지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혼자 자취하기 때문에 부양가족이 없지만, 내가 나를 부양해야 했다.


나 혼자 먹고살기 위해서 필요한 '1인분'이 내 생각보다 꽤나 크고 비싸다는 걸 자취하고서야 처음 느낀 것이다.

이제는 스스로 먹여 살리기 위해서 1인분은 꼭 필요하며 그 돈을 벌어야겠다는 부담감도 생겼다.


한편으로는 혼자 살고 나서야 내가 독립된 1인분의 사람이 된 것 같다는 뿌듯함도 공존했다.

내가 혼자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모든 생활용품과 음식을 고민하고,구매해서 사용하다 보니 진짜 독립하는 어른이 된 것 같아 괜히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부모님 집을 방문할 때 뭐를 먹고 싶냐고 물어보는 엄마의 물음이 너무 기대되고 설렌다.

집에서 따듯한 밥 한 공기를 먹을 때면 절로 이런 말이 나온다.

"역시 남이 해주는 밥이 최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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