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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우주 Oct 08. 2023

당신은 내일 아침을 기대하나요?

자취와 '아침'

출처 : pixabay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사과 먹어야지


사과는 맛있다. 빨갛고 어딘가 투명해 보이는 껍질을 보면 너무나 설렌다. 신선해 보이는 사과는 뭐가 달라도 확실히 다르다. 새벽 1시쯤 잠들기 전에 사과를 한창 쳐다보면서 생각한다.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꼭 사과를 먹어야지!'


자취를 하며 나의 과일 취향을 알게 됐다. 나는 아삭하면서도 시원하고 달달한 과일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감이나 배, 복숭아를 좋아한다.

그중에서 제일은 바로 '사과'다. 자취방에 사과가 줄어들지 않고 계속 있다면, 나는 매일 사과를 먹을 것 같다. 아쉽게도 요즘 사과가 하나에 3000원이 넘는 금값이라 매일 먹지 못하는 게 한이다.


저녁에 먹는 사과는 독이라고 한다.

그런 말이 떠돌아서 다행이다. 저녁에 사과 하나 먹는 게 좋다는 이야기가 있었다면 아마 나는 아침저녁으로 사과를 먹어댔을 테지. 사과는 아침에 먹으면 좋다고 하니, 사과가 있는 날은 그다음 아침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드라마를 보면 주인공이 아침에 "오늘은 나에게 무슨 재미난 일이 펼쳐질까? " 하며 상쾌하게 일어나는 장면이 많다.

나도 비슷한 것 같다. "오늘은 사과가 또 얼마나 맛있을까?"




나에게도 취향이란 게 있구나


원래부터 사과를 이렇게까지 좋아하지는 않았다. 아니 내가 좋아하는 과일이 있는지도 몰랐다. 부모님과 함께 살 때는 엄마가 사 온 과일을 먹기만 했다. 엄마는 과일을 엄청 좋아하신다.


엄마가 가장 행복해 보이는 순간 중 하나는 과일을 고를 때였다. "요즘 포도가 철이잖니. 먹어줘야지." "귤이 슬슬 나오기 시작하네. 지금은 아직 맛이 없을 때야" "딸기 먹자."라는 이야기가 나오면 꼭 그다음 날에는 그 과일이 밥 먹고 나서 등장했다.


또 엄마와 같이 시장에 가면 엄마는 과일가게에서 한참을 서서 어떤 과일을 고를지 이리저리 고민했다. 그렇게 고민하며 데려온 소중한 과일을 집에서 나눠 먹을 때면 엄마는 이번에 사 온 과일은 맛이 있고 없고, 요즘 과일 가격은 어떻다 등 과일에 대한 총평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럼 "아 그래요? 맛있네요."라고 하며 엄마가 내어준 과일을 먹을 뿐이었다.


그랬던 내가 자취를 시작하며 처음으로 내 돈을 주고 과일이란 걸 사 먹기 시작했다. 바나나도 사보고, 포도도 먹어봤다. 가끔 사치를 부려본다고 망고나 딸기도 시도해 봤다. 하지만 '사과'를 먹는 순간 알았다.

사과가 운명이라는 것을!


냉장고에 있는 사과는 정말 시원하다. 그리고 잘 익은 사과는 아삭아삭 식감이 좋다. 거기다가 달달하기까지 하다. 반대로 나는 새콤하거나 물렁물렁한 식감을 별로 안 좋아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 사과 다음으로는 배나 천도복숭아, 감도 괜찮다. 사과가 1등 이긴 하지만, 저 과일 친구들도 가끔 먹으면 "정말 맛있다"라는 감탄사를 남발하곤 한다.


과일 취향이 있다는 게 신기하지 않은가.

가족이나 친구들을 보면 각자 다 자신만의 과일 취향이 있다. 새콤한 걸 좋아하는 사람과 달콤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나뉜다. 부드러운 식감과 딱딱한 식감, 아삭한 식감도 구분된다. 씨가 있고 없고도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다.


과일 취향이란 게 생기게 된 후로부터는 과일을 먹는 순간이 즐거워졌다.

회사에 출근해서 오늘 점심 메뉴판을 볼 때 후식으로 사과가 나온다고 쓰여있으면 " 아 내가 좋아하는 사과다. 너무 맛있겠다"라고 오늘 점심이 기대가 된다.

마트에 가서도 사과를 보면 '이 사과 엄청 맛있어 보이는데 놓칠 수 없지'라는 생각이 들며 장바구니에 요리조리 선별하며 골라 담기도 한다.


이렇게 나만의 취향이 생긴다는 게 '설렘'을 주는 작고 확실한 요소였다니, 이걸 자취를 시작하고서야 알았다.!

 


출처 : pixabay
저는 그냥 평범한 직장인이에요


자취를 하면서 과일부터 시작해서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나의 취미는 무엇인지, 나는 어떨 때 웃고 웃는지 알게 됐다. 나는 이렇게 나만의 취향을 가져가는 게 진심으로 기쁘다.

팔레트에 아무런 물감도 못 올려놓던 과거의 모습에서 이제는 빨간색, 파란색, 황토 색, 노란색 등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여러 색이 채워진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나의 팔레트에는 아무런 색깔이 없다고 느낀 때가 있었다.

5년 전쯤 북촌에서 ‘어둠 속의 대화’라는 전시회에 참여했다. '어둠 속에서 뭘 한다는 걸까?' 하며 제대로 알아보지 않았는데, 들어가 보니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완전한 어둠 속에서 길을 찾고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이었다.


"우리 서로 하나도 안 보이는데 어떤 사람인지 자기소개를 하고 시작할까요?"

프로그램에 참여한 10명의 사람들 사이에서 자기소개를 해야 했는데, 나를 어떻게 소개할지 도무지 생각이 안 났다. 얼굴은커녕 실루엣도 안 보이고,  어떤 회사에서 일하는지 명함을 내밀수도 없었다.  

“그냥 평범한 IT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입니다.”라고 나 자신을 소개했다.


그때 이후로 왜인지 모르겠으나 나를 소개할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이 마음에 계속 걸렸다. 직장인이라는 것 외에는 좋아하는 취미가 뭔지, 잘하는 게 뭔지,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 스스로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자취를 통해 하나씩 알게 된 '나의 모습'이 새로웠다.

블로그 글쓰기와 운동이라는 취미를 가지고, 유튜브를 도전해서 구독자를 늘려가며 재미를 느끼기도 했다. 매일 밤공부를 해서 7년간 했던 직무를 바꿔 새로운 업무에 도전하기도 했다. 서울에서 친구들과 주말이면 맛집을 찾아다니는 재미도 알아갔다.


좋아하는 취미, 좋아하는 음식과 과일, 잘하는 것, 잘하는지는 모르지만 도전해보고 싶은 것이 생겨났다. 이런 작은 변화들이 모여서 내 삶이 풍부해지는 걸 느낄 때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정말 자취하길 잘했다.'



출처 : pixabay
내일 아침을 기대하며.


나는 참 걱정이 많은 사람이다. 예전부터 그랬다.

대학생 때는 '어떻게 취업할까'라는 생각만 가졌다면 이제는 매일 '회사를 계속 다녀야 할까?'를 고민한다.

거기에 더해서 '돈은 어떻게 모을까, 건강은 어떻게 지킬까, 투자는 어떻게 할까, 집은 언제 살까' 등 다양한 고민거리를 가지고 산다.

취업만 하면 고민은 끝인 줄 알았는데, 어른으로 산다는 것은 끝도 없이 고민이 반복된다는 걸 왜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던 것인가!


그런 내가 자취를 통해 삶을 조금 더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결정해 보며, 취향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겪고 있다. 그리고 이 과정은 나에게 자신감과 용기를 준다.


새로운 어려움은 계속해서 생긴다.

그럴 때면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두렵지만 도전해 보면 된다.


마음이 울적한 날도 꽤 많다.

그러면 좋아하는 취미를 하고 맛집을 찾아다니며 나만의 힐링하는 방법을 안다.


외롭거나 겁이 나는 순간도 있다.

그럼 이전보다 더 돈독해지고 건강해진 가족이라는 내 편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힘을 낸다.


회사 동료나 친구들, 가끔 만나는 지인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삶이 쉽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괜찮을만하면 또다시 어려운 순간이 온다.

그럴 때는 이렇게 각자 자신을 단단하게 만드는 요소들을 만들어가며 힘을 냈으면 한다.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소소한 것들을 하기 위해 내일 아침을 기대하며 말이다.


이 글을 마치기 전에 한번 더 냉장고를 보고 왔다. 늦은 시간이라 사과를 먹을까 말까 하다 참았다.


그래 오늘은 참고, 내일이 있으니깐!

내일 아침에 눈을 뜨면 사과를 꼭 먹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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