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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창 신부범 Jun 25. 2021

무더운 여름, 시원한 겨울 이야기

강추위가 맹위를 떨치던 겨울 어느 날 수도배관이 꽁꽁얼었다

월요일 아침이 이유도 없이 우울하다면 금요일 저녁은 이유도 없이 즐겁지요, 올해 1월 초, 겨울 한파가 절정으로 치달았던 어느 날 금요일 저녁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틀간 주어지는 달콤한 자유와 휴식은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는 것조차도 행복하게 만들었으니까요,


 '삑~삑~삑~삑~'


디지털 도어록 비밀번호를 누르고 현관문을 열였습니다. 하지만 후끈 달아오른 내 기분과는 달리 집안의 분위기는 냉기로 가득했습니다. 좀 이른 시간이어서인지 식구 누구 하나 아직 집에 들어오지 않았고 불 꺼진 썰렁한 집안 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주방부터 들렀습니다. 때를 놓쳐 점심을 먹시 못했던 그날, 시장기가 들었고 식구들이 오기 전 우선 라면이라도 끓여먹을 요량으로 말이죠, 냄비를 들고 싱크대 물을 받기 위해 수전 핸들을 위로 올렸습니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물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영문을 모른 나는 애꿎은 핸들만을 붙들고 핸들을 '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했지만 여전히 물은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왜 갑자기 물이 나오지 않는지 참 난감했습니다. 


우리 집 창문에 핀 얼음꽃, 지금 보니 시원하다


상수도 업체에서 물공급 중단 예고도 없었고, 그렇다면  이건 급수배관 동결이 원인일 거라는 직감이 들었습니다. 그럴 것이 당시 살인적인 강추위가 계속됐었지요, 최저 기온이 영화 16도, 18도까지 오르내리고, 한낮의 기온 또한  영화 11도에 머무는 등  그야말로 역대급 강추위가 한반도를 강타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때 강남역 4번 출구 뒤편 유리창이 빙벽으로 변했던 모습도 처음으로 봤습니다.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집안의 창문의 얼음꽃이 피었기도 했습니다. 이런 강추위에 수도배관이 얼어 그래서 외출 모드의 보일러 가동도 중지가 되어버렸고 물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한겨울 저녁 7시에 업체를 불러 문제를 해결할 시간도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넋 놓고, 손 놓고 멍하니 앉아만 있을 노릇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뭐라도 해봐야겠다'는 마음으로 우선 화장실, 베란다 등 노출된 수도관을 모두 옷가지 등으로 몇 겹을 감싸 보온을 하고 수전 모두를 열림 상태로 놓아두었습니다.


그렇게 약 3시간 반가량이 흘렀을까요, 갑자기 주방의 수전에서 '치~익', 치~익' 에어가 빠지는 소리가 나더니  '뻥~'소리와 함께  수전에서 물이 '콸~콸~'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반갑고 기분이 좋던지 정말이지 이보다 유쾌하고, 상쾌하고, 통쾌한 소리는 반평생을 넘게 살면서 들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았습니다.


이상 무더운 여름에 쓰는 시원한 그 겨울의 이야기였고요, 더불어 우리 사는 이 세상에도 이렇게 유쾌하고, 상쾌하고, 통쾌한 기분 좋은 소리가 들린 날들이 많았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가져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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