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가 8시간 일하고 나서 저녁이나 주말, 휴가 때 직장의 존재 자체를 깡그리 잊을 수 있는 나라야말로 노동자에게 좋은 나라다. 대한민국이 그렇게 되자면 회식 강요에 대한 처벌이 강화되는 한편 ‘회식 없는 회사야말로 우량 회사’라는 의식부터 빨리 확산되어야 할 것이다.
한겨레신문 [박노자의 한국, 안과 밖] 직장 회식, 복종의 의례 (daum.net) 중에서
내가 군대를 제대하고 직장 초년생으로 근무하던 어느 날이었다. 우리 부서 부장은 전 직원들에게 다음과 같이 부서 회식을 알렸다.
'오늘 저녁 부서 회식에 한 사람도 빠질 생각 마' '도중에 도망가는 사람도 알아서 해'
일방적인 회식을 알리는 부장의 말에 직원들의 표정과 반응은 두갈레 었다. 얼굴에 화색이 도는 직원들도 없지는 않았지만 싫다는 표정이 역력한 직원들이 많았다. 하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전자나 후자나 모두들 '네~'라고 만 대답할 뿐이었다.
그런데 그때 나보다 입사 2년 선배인 서 아무개 직원이 보무도 당당하게 나서 한마디 한다.'저는 오늘 갑자기 일이 좀 생겨서 회식에 빠지면 안 될까요, 그러자 부장은 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안돼' '직장이 먼저야 개인 약속이 먼저야' 라며 단호한 어조로 전원 참석을 재차 강조한다.
하지만 서 아무개 직원 역시 강요된 회식의 부당성을 말하며 물러서지 않았다.'회식 그 자체를 탓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동료직원 혹은 상사와 평소에 못했던 얘기를 나누면서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를 풀고 원만한 직장생활을 위해서도 회식은 좋은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회식에 참석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다 똑같을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사교성도 있고 술도 좋아 자기 돈 안 쓰고 술 먹을 수 있는 회식자리가 즐거운 사람도 있을 것이고, 반대로 회식자리가 꼭 반갑지 만은 않은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저와 같이 술도 못하고 회식자리에 나가 봐야 별 즐거움도 느끼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적게는 2~3시간 많게는 4~5시간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만 해도 큰 고통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먹지 못하는 술 '먹자니 그렇고, 먹지 않자니 그렇고..'
그러면서 그는 자리만 같이 하고 일찍 뜨고 싶은데 그럴 분위기도 아닌 것도 회식자리에 참석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에겐 크나큰 고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직장생활의 원칙이라는 이유로 전원 참석을 강요하며 개인의 성향을 무시하면 안 된다고 말한다.
그는 또한 부서 회식이 있더라도 회식 참석이 달갑지 않은 직원들에게는 친구나 가족 혹은 연인 등 각자가 따로 원하는 사람들과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하루의 나머지를 보내도록 배려를 해주는 것도 올바른 일 아닙니까?'라며 자신의 주장을 거침없이 펼쳤고 결국 그 뒤 부장의 일방적인 회식 강요의 변화가 조금씩 일기 시작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사실 우리 직장문화의 특성상 상사의 요구에 모두 다 '예"라고 하는데 '아니요'라고 당당하게 외칠 수 있는 용기 있는 직장인은 그리 많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그때 그 서 아무개 직원과 같이 모두가 '네~'라고 할 때 '아니오~'라고 할 수 있는 용기가 바로 직장 회식 문화를 바꿀 수 있는 힘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