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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창 신부범 May 07. 2021

사진 속 아버지가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 가슴 먹먹한 사연의 소개하려 합니다

내일이 어버이날이지만 나에게는 어버이가 없는 어버이날이 된 지 수년째다. 아버지와 어머니 두 분 다 하늘의 별이 된 지금,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 드리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안타까운 현실이 됐다. 그래서인지 꽃이라도 사들고 집에 갈 수 있는 자식들이 마냥 부럽기만 한 어버이날이기도 하다.


어제저녁 밥상을 물리치고 좀처럼 꺼내 들지 않았던 사진첩을 펼쳐 보게 되었다. 어버이날을 앞두고 사진 속 얼굴이라도 보고 싶어서다. 그리고 몇 장 되지도 않는 아버지와 어머니 사진을 찾아 한 장 한 장 넘기던 중 유난히 눈에 들어오는 아버지의 사진 한 장을 보게 되었다.


2011년 6월 28일의 날짜가 선명히 찍힌 사진,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동네 공원에서 6월의 푸르름을 벗 삼아, 새끼손가락이 불편한 오른손을 슬며시 치켜세운 채, 굴곡진 인생만큼이나 짙게 패인 주름진 얼굴을 살짝 머금은 미소로 곱게 화장한 채 찍은 사진이었다.


사실 이 사진 이전만 해도 아버지께서는 어머니와 함께 농사일로만 한평생을 사셨다. 없는 집안에 태어나 배우지도, 그렇다고 가진 것도 없으셨던 아버지께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농사일이셨고, 이일로만으로도 8남매를 남부럽지 않게 키워내신 자랑스러운 아버지셨다.


이런 아버지께서도 더 이상 농사일에 매달리지 않으셔도 될만하다고 판단하셨던 나이 칠십을 넘길 무렵에서야 시골생활을 청산하셨다. 그리고 아들들이 모여 살고 있는 인천으로 올라오셨다. 나이 드시고 농사일이 힘에 겨워 도시로 올라오시긴 하셨지만 도시생활이 꼭 좋은 것만이 아닌 아버지셨다.

잇몸만 보인 사진에서 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시골의 농사일이 힘들긴 하셨지만 활동공간은 자유롭고 넓었다. 하지만 도시는 그렇지 못했다. 기껏해야 동네 공원에서 같은 나이 때의 어르신들과 하루를 보내시는 게 전부셨다. 그러던 아버지께서 어느 날 동네 공원에 다녀오시면서 한 장의 사진을 들고 오셨다.


공원에서 지인분들과 담소를 나누며 있는데 어느 교회 분들이 다가와 찍어 준 사진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그 사진이 유독 눈길이 갔고 오래도록 나를 붙들어 맨 이유가 있다. 바로 그 사진에는 아버지의 앞니는 하나도 없고 움푹 들어간 잇몸만 보여 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사실 아버지께서는 8남매를 낳고 키우시기도 바빠, 이빨 같은 것은 돌볼 겨룰 도 없으셨다. 이런 아버지의 나이 육십 중반을 넘기면서 이는 하나둘씩 망가지기 시작했고, 결국 인공치아를 통째로 해 넣으셔야 할 상황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래서 자식들이 임플란트 등 제대로 된 치아를 해 드리려고 했지만 아버지께서는 '이 나이에 무슨 이빨이냐 한두 푼 들어가는 돈도 아니고 그냥 끼웠다 뺐다 하는 틀니로 만으로 도 충분하다며 한사코 손사래를 치셨다. 우리는 못 이긴 척 그렇게 아버지 뜻에 따르고 말았다. 그런데 그게 사진 속 아버지로 남아 내 가슴을 아리게 만들 줄 그때는 몰랐다.


아버지께서 얼마나 답답하셨으면 틀니를 끼우지 않는 사진을 찍으셨을까, 그리고 그 틀니로 식사나 제대로 하셨을까, 안쓰러운 마음에 한참이나 그 사진을 쳐다봤다. 그러다 보니 그때 아버지의 만류를 뿌리치고서라도 제대로 된 이를 해드렸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운 후회가 밀려왔다. 하지만 이미 때늦은 후회였고 그게 더욱더 아버지께 미안하고 죄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진정한 효자는 부모님 돌아가시고 후회 없는 자식이라는 것을 어버이날을 앞둔 이 시점에 새삼 깨달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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