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는 현재 다섯 종류의 음지식물이 자라고 있다. 이중 어느 한 식물에서는 지금 앙증맞은 새 잎이 자라고 있다. 또 언제 어느 종류의 식물에서 새로운 잎이 돋아 날지.... 나는 이 식물들이 변화하는 모습만으로도 작은 행복을 맛보곤 한다.
그리고 식물들을 키우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깨닫고 생활의 지혜도 얻었다. 잘 키워 보겠다는 과도한 욕심에 물을 너무 자주 줬고, 적당히 줘야 할 화분용 거름도 너무 과하게 주기도 했다. 그래서 한때 시름시름 앓아 거의 죽음 일보 직전까지 갔던 식물도 있었다.
그러다 어찌 겨우 겨우 다시 살아난 기쁨도 있었지만 과하면 모자란 것만 못하다는 '과유불급'의 삶의 진리도 깨달았다. 그리고 어떤 식물은 잘 크고 어떤 녀석은 더디게 자라는 등 식물에도 생육 조건이 다 같을 수 없음도 알았다.
또한 주기적으로 물도 주고 겨울철 무서운 가스요금도 마다하지 않은 채 사람도 없는 방에 하루 종일 보일러를 켜 온도를 맞춰주는 등 나름 최선을 다해 보살펴 주었는데 이렇게 죽고 저렇게 죽어 간 식물들로 속 상하는 일도 많았다.
어떤 녀석은 처음에는 무럭무럭 잘 자라다 어느 날부턴가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갔다. 또 어떤 녀석은 처음에는 비실비실 곧 죽을 거 같다가도 어느 순간 다시 생기 발랄, 그러다 다시 시름시름 앓다가 서서히 죽어간 식물도 있었다.
그러나 어떤 녀석은 집에 들어 놓자 얼마 못가 시들시들 축 처져 살아날 가망이 거의 없었지만 언제 어느 때 다시 되살아 난 식물도 있었다. 그래서 죽었다고 포기한 그 식물의 꿋꿋한 생명력 그 자체만으로도 그 식물이 고마웠고 더불어 내 마음에 느슨했던 의지력도 생기곤 했었다.
그러니 지금 현재 살아남아 있는 식물들을 볼 때마다 내 눈에 마냥 예쁘기만 보인 것이다. 개나리나 벚꽃처럼 화사한 꽃이 피어서 그런 것도 아니다. 평범하지 않는 아름다움이 있어서 그런 것도 더더욱 아니다. 그저 건강하게 잘 자라서 괜히 예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