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인근 전통시장을 방문하다 보면 시장입구에 옹기종기 모여 나물이나 채소 등 푸성귀를 파는 할머니들이 있다. 가지고 나온 푸성귀라고는 다 팔아도 기껏해야 몇만 원이나 될까 말까 할 정도로 적은 양이다. 더군다나 번듯한 판매대도 없이 푸성귀들을 땅바닥에 내려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할머니들을 보고 그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돈 몇 푼이나 번다고 힘들게 앉아서 팔고 있을까, "
맞다. 한 바구니에 2,000원 내지는 3,000원 하는 돈 몇 푼 되지도 않는 푸성귀를 팔겠다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같이 그 자리를 꿋꿋이 지키고 있는 할머니들을 볼 때 나 역시 그러했듯이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날 그곳을 지나다 할머니들과 잠깐 나눈 대화는 내 생각이 짧아도 한참이나 짧았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할머니들이 가지고 나온 푸성귀를 그저 돈으로만 본 편협한 자신이 한없이 부끄럽고 할머니들에게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집에만 있으면 쓸쓸한데 여기에 나오니 얼마나 좋누"
이렇게 어느 할머니께서 나에게 했던 말을 보면 그저 돈을 벌겠다고 푸성귀를 들고 나오지는 않았던 것이다. 가지고 나온 것 다 팔면 좋고, 그렇지 못한들 어떠랴, 할머니들이 푸성귀를 들과 나온 진짜 이유는 돈도 돈이지만 삶에 대한 외로움이었던 것이다.
그렇다. 미루어보아 칠순의 중반은 훌쩍 넘었을 법한 할머니들이다. 집안에 홀로 외로이 지내는 것보다 푸성귀라도 들고 나와 그 누군가와 이런저런 얘기 나누며 잠시나마 외로움을 달래고, 분주히 오고 가는 사람들을 통해 삶에 대한 활력을 얻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그들 할머니들을 삶에 대한 활력과 희망을 스스로 만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하루 일과를 마치고 비록 몸은 힘들고 고단하지만 하루를 열심히 살았고, 또 내일 그 자리를 향한 희망이 있기에 푸성귀 할머니들의 삶이 그렇게 지루하지도 않을 것이기에 말이다.
나 역시 삶에 대한 희망과 활력이 시들시들 해 질 나이가 분명히 올 것이다. 그때 나도 그 푸성귀 할머니들처럼 삶에 대한 희망을 스스로 만들어 가는 사람이 되겠다 다짐을 해 본다. 그것이야 말로 노년의 삶을 젊고 건강하고 활기차게 사는 한 방법이라는 것을 푸성귀 할머니들을 통해 터득했기 때문이다.
오늘 퇴근길에는 푸성귀 할머니들 곁으로 달려가야겠다. 그래서 내일 또 하루를 힘차게 살 수 있는 기운을 푸성귀 할머니들에게 듬뿍 얻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