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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창 신부범 Aug 14. 2024

폐지 줍는 진짜 속사정을 아시나요?

몇 푼 된다고 폐지 줍냐고요.. 외로움 때문이라오

말만 들어도 괜스레 기분 좋아지는 입추도 일주일이 지났다. 더욱이 더위가 가시고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어온다는 처서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이렇게 계절은 빠르게 가을을 향해 달려가고 있지만 날씨는 여전히 여름의 한 복판에 서있는 듯하다. 한낮 기온은 35~36도를 넘나드는 폭염에 밤잠을 설치게 하는 열대야는 좀처럼 식을 줄 모른다. 동트기 전 새벽이 가장 어둡다는 말이 생각나는 요즘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 낮과 밤을 가리지 않는 살인적인 무더위에 사람들의 왕래조차도 뜸한 길거리에서 폐지를 줍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보고 그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연일 계속되는 폭염에 온혈질환이 우려되는 대낮에 굳이 나와 폐지를 줍겠다고 여기저기 힘들게 돌아다니며 폐지를 줍는 이들의 모습은 보편적 기준으로는 좀처럼 이해가 가지 않을 것이다. 더군다나 끌고 나온 수레에 가득 모아 실어 판들 기껏해야 돈 몇천 원에 불과한 그야말로 흘린 땀 값도 안 되는 일에 열중하고 있으니 '차라리 집에나 계시지'라는 말도 나올 법하다.

 

그러나 이들이 저렇게까지 해야만 하는지 또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 보고 이해를 하면 쉽게 나올 말은 아니다. 그것은 이들에게는 꼭 돈만이 아니라 더위보다 더 고통스러운 외로움과 고독감이다. 폐주지를 줍는 이들 대부분은 홀로 사시는 독거노인들이다. 나이 들고 오갈 때 없는 이들 뭔가를 하지 않고 집에만 있기에는 차라리 뜨거운 태양볕에 나가서라도 폐지라도 줍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기에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는 진짜 속사정이면 말이다.


우리 빌라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는 또 다른 빌라에 거주하시는 할머니가 있다. 그분 역시도 홀로 사신 독거노인으로 폐지를 줍는 할머니다. 그래서 동네에서 자주 마주치곤 하는데 얼마 전 폐지를 줍고 계시던 그 할머니와 나눈 대화는 나 역시도 할머니의 폐지를 그저 돈으로만 본 편협한 자신이 한없이 부끄럽고 할머니에게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할머니 더운 날씨에 힘들지 않으세요,?



힘이야 왜 안 들겠어요, 그래도 집에 있는 것보다는 더 나아요, 집에만 있으면 답답하고 외롭고 시간도 안 가고... 그래도 밖에 나와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몸은 조금 힘들지만 집에 있는 게 답답할 때 폐지를 줍는다오?


할머니의 말씀을 요약하자면 집안에 홀로 외로이 지내는 것보다 수레라도 끌고 나와 그 누군가가 건네주는 폐지를 매개로 이런저런 얘기 나누며 잠시나마 외로움을 달래고, 가끔씩이라도 말 걸어와 준 사람들을 통해 삶에 대한 희망과 활력을 얻기 위함이 더 컸던 것이지 그저 돈 몇 푼 벌겠다고 폐지를 모으려 다니지 않았던 것을 엿볼 수 있다.


다시 말해 그 할머니는 삶에 대한 외로움과 고독을 폐지 수집을 통해 스스로 이겨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비록 몸은 힘들고 고단하지만 하루를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는 보람과 희망이 있기에 폐지 줍는 할머니들의 삶이 그렇게 곱지 않는 시선으로만 볼 게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와는 달리 생계유지를 위해 폐지를 줍는 시선으로만 바라보는 경향이 강하다. 심지어는 생계유지를 위해 폐지 수집을 할 수밖에 없다면 정부 재정을 지원해서라도 폐지수집 활동을 없애자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너무 단편적인 시각이라 본다.


저출산 문제도 그렇고 우리 사회는 그저 돈에 논리로만 접근하고 있다. 폐지 줍는 이들에 대한 시각도 마찬가지다. 나이 들고 돈이 없는 궁핍한 생활에 한 푼이라도 벌기 위해서 폐지를 줍고 다닐 거라는 자본적 시각으로만 접근하려 하는데 이 지점이 바로 우리 사회가 진정으로 고민해야 할 부분은 아닐까 싶다.


초고령 사회, 나이 들고 홀로 된 독거노인들의 외로움 돈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아주 무서운 서러움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가 인식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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