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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창 신부범 Aug 16. 2019

어김없이 찾아온 귀뚜라미,이제 가을이구나?

귀뚜라미는 매년 가을을 싣고 왔다

1년 전 딱 이 맘 때였다. 그날 퇴근 후 시원한 냉수 한 잔을 들이켜 달라는 뇌파의 신호에 따라 정수기 쪽으로 다가섰었다. 그런데 발아래 방바닥에서 무언가 '톡~톡~' 튀어 오르는 게 눈에 들어왔었다. 움직임으로 보아 징글맞은 바퀴벌레는 아닌 것 같았었고, 도대체 뭐지?


자세히 보려니 이 녀석, 주방 틈새 구멍 찾아 기어 들어가려 더욱더 '톡~톡~ 튀어 오르는 게 아닌가, 이 좁은 거실에서 튀어 봤자 벼룩이지, 딱 걸렸어! 어? 귀뚜라미네! 요 녀석 어떻게 3층 높이까지 기어올라 왔을까? 아니면 날아 들어왔을까? 신기하기도 했었다.


그래도 사람과 동거할 수 없는 엄연한 곤충인 귀뚜라미, 바퀴벌레라면 당장이라도 때려잡아 변기 속 소용돌이와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할 텐데.. 그렇게까지 할 수 없는, 그나마 착한 곤충인 귀뚜라미, 현관문을 열고 그쪽으로 고이 내보내려는데 나가지 않겠다며 자꾸만 옆길로 튀려고만 한 귀뚜라미,


안 돼. 나가야 해~ 나가, 나가란 말이야~ 제발.


네 녀석이 밖으로 나가지 않고 어느 틈새로 기어들어 운둔하고 있다 한참 자는 어둠 컴컴한 저녁시간 스멀스멀 기어 나와 잠자는 침실까지 튀어 올라 내 얼굴과 접촉이라도 한다면...? 그때는  '으~' 생각만 해도 소름 끼쳐! 그래서 꼭 나가야 한단 말이야. 이렇게 두 손 모아 빈다 빌어~ 응? 

사진 출처:pixabay


나가지 않겠다 버티는 귀뚜라미 녀석과 나가야 한다는 나 사이에 밀고 밀리는 줄다리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일개 곤충이 사람을 이길 수 없지, 귀뚜라미 네 녀석이 나갈 수밖에... 이 녀석 겨우 달래고 달래 '잘 가라~' 등 떠밀듯 내보내고 현관문을 굳게 닫아버린 그날이었다.


난데없는 귀뚜라미 출몰로 한바탕 소동을 벌였지만 그래도 가을의 전령 귀뚜라미와 그다지 기분 나쁘지 않은 실랑이를 벌였던 그날 저녁은 잠까지 꿀잠이었고, 다음날 아침 선선한 가을바람과 기분 좋은 동행의 출근길이었음도 기억한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오늘 아침 출근길 역시도 왠지 모르게  전날 아침과는 사뭇 다른 체감기온에 바람까지 살랑살랑, 하루 만에 가을이 우리 앞에 성큼 다가선 느낌, 아침부터 푹푹 쪄댔던 며칠 전만 해도  도저히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이런 날이 올 줄이야...


우리가 '엄동설한' 그 추운 겨울을 견딜 수 있는 힘도 따뜻한 봄이 있기에, '삼복더위' 무더운 여름을 버틸 수 있는 끈기도 바로 선선한 가을이 있음은 아닐까, '아~ 그런데 오늘 아침이 바로 그날이구나~'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 상쾌한 기분에 콧노래로가 저절로, 발걸음도 가볍게 골목길을 걸었다. 


그런 그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낯익은 선율의 소리, 가만히 들어보니 그 정체의 소리는 1년 전 집안까지 침투해 나와 주거문제로 한바탕 밀당의 소동을 나눴던 귀뚜라미라는 녀석이 내지르는 소리 었다. 1년 전 그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일 년이 지나 올 가을을 알리려 어김없이 찾아온 요 녀석들, 가을의 전령사가 확실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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