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의 이야기
우경은 화들짝 놀라며 이미 나가버린 남자를 향해 손을 뻗었다. 워낙 순식간의 일이라 경황이 없기도 했지만 무의식 중에 도원의 눈치를 보느라 한 행동이다. 우경은 괜히 앞치마를 한 번 꽉 잡았다가 탁탁 펼치며 도원을 바라보았다.
“미안해요.”
도원은 대꾸 없이 턱을 괴었다. 혼자 사는 공방의 죽은 여자 이야기. 자신도 알고 있는 일이다. 이 소란이 도원에게 의문쩍은 부분은 전혀 없었다. 다들 갑자기 등장하여 신문쪼가리나 흔들다가 비싼 커피를 마시게 된 남자의 행동이 과장되고 우스울 테지만 도원이 기분이 상한 부분은 남자가 꼭 제가 무엇이라도 된 것마냥 굴었다는 것이다. 사실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요란스럽게도 조심을 해야 하느니 말아야 하느니 왈가왈부한다. 마치 그 커다란 숨소리가 섞인 속삭임이 들리지 않을 것처럼.
“아저씨 말이 맞아요.”
“네?”
“남자든 여자든 혼자인 시간이 오래인 사람들은 조심하는 게 낫다구요.”
“하지만-”
하지만 우경은 이미 조심성이 많았다. 낯을 가렸고 남이 두려워서 이런 돈도 안 되는 카페나 하며 근근이 산다. 스무날이 넘게 본 도원이 아직 낯설고 그 시선이 조금도 반갑지 않다고 우경은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도원은 알았다.
“손님들은 결국 다 남이니까.”
도원은 잔을 들어 단숨에 마신 뒤 쟁반을 들고 일어섰다. 카운터에는 아직 신문이 펼쳐져 있었는데 불에 탄 입구 사진이 눈에 익었다.
“저는 어땠나요? 좀 특별했나요?”
“네?”
우경이 쟁반을 건네받으며 바보처럼 대답했다.
“우경씨한테 저는 좀 특별한 손님이 되었나요?”
“손님은…그냥 다 손님이죠. 특별할 것 없습니다.”
도원은 쓰게 웃었다.
“아뇨. 그래도 우경씨가 그렇게 말해줘서 기뻐요.”
스물여섯 날 째부터 도원은 하얀 민소매 원피스를 입고 긴 머리를 반만 묶어 길게 늘어뜨린 채 현금으로 커피값 외에는 아무것도 들고 오지 않았다. 보통의 그녀라면 아침 해가 뜨고 나서 와서 제 지정석에 앉아 시간을 보내다가 점심이 조금 지나 집에 가고는 했는데 이 날부터는 우경의 퇴근시간까지 함께 하는 것이다. 우경이 점심 도시락을 먹고 저녁 식사 전에 문을 닫을 때까지 도원은 미동 없이 무언가 기다리는 사람처럼 창밖을 응시했다. 우경은 그 이유를 전혀 묻지 않았다.
스물여덟 날 도원은 물을 한 잔 달라고 했다. 공복은 고통스러워도 참을 수 있지만 목이 마른 것은 몸이 안다. 우경은 물과 함께 제 몫으로 싸 온 샌드위치 반을 같이 내밀었다.
“하루종일 식사를 안 하시네요.”
“네, 긴장해야 하거든요. 음식을 먹으면 사람이 느슨해지니까요.”
“누굴 기다리나요?”
도원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정말이지 놀란 얼굴을 했다. 그리고 입을 감춘 채 한동안 말을 잇지 않다 얼굴을 쓸어내리고 말했다.
“뭔가를 기다리고 있어요.”
도원은 소름이 돋아 더 이상 말을 하기 힘들었다. 고맙다는 말 대신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 자리로 돌아가 양팔을 꽉 끌어안았다. 이것은 일종의 환희였다. 기다림에 대한 보상이었고 성공에 대한 일종의 시그널이었다. 달콤하고 씁쓸한 것은 이제 곧 시간이 끝난다는 것. 약속의 날까지 단 이틀이 남은 순간 맞이한 대화의 순간에 도원은 감사하고 또 전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