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의 이야기
시간은 도원이 카페를 오기 시작한 뒤로 보름이 흘렀다. 그간 하루 문을 열지 않은 날이 있었고 도원은 그날부터 말을 아끼기 시작했다. 내가 30일이란 말을 꺼내서. 그 말이 거스러미처럼 우경의 마음에 거끌거렸다. 16일째. 우경은 작은 쿠키를 하나 쟁반 위에 같이 올렸다. 직접 구운 것도 아니고 어디서 특별히 사온 것도 아닌 마트에서 파는 대량 쿠키의 한 조각. 온 마음의 용기를 끌어모아 우경은 그 쿠키의 한조각을 쟁반 위에 덜렁 올려놓았다.
도원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쿠키와 우경을 번갈아 보며 자리를 뜨지않았다. 그 침묵에 숨이 막힐 무렵 우경이 입을 열었다.
“…커피만 마시면 속이 상해요.”
도원은 아랫입술을 꾹 물었다.
“다른 사람한테도 이래요?”
“…아뇨.”
“그럼 전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해요?”
“그냥…”
“그냥?”
“그냥…그 날 너무 미안해서 그래요.”
파하-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도원의 입에서 났다. 어처구니가 없는 듯도 했고 웃음을 참지 못한 것도 같았다.
“그 날 일은 우경씨 잘못이 아닌데도요?”
“…기다리셨잖아요.”
“내가 기다리고 싶어서 기다린 거에요.”
“알아요.”
“그런데요?”
“그래도요.”
“그래도 미안해요?”
우경은 숨을 한껏 집어 삼키고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네.”
“고맙다고는 안할거에요. 이런 호의...”
말을 잇던 도원은 입을 꼭 다물었다 다시 열었다.
“우경씨가 아니라 내가 줘야 맞는거니까.”
도원은 쟁반을 들고 자신의 지정석이 되어버린 자리로 돌아갔다.
그날부터 도원은 하얀 사탕을 하나씩 가져오곤 했다. 향이 약해 단 맛밖에 없고 씹기엔 너무 딱딱해서 꼼꼼이 녹여먹어야하는 하얀 사탕은 단 걸 좋아하지않는다는 우경의 거절에도 매일 같이 하나씩 카운터에 놓였다. 스무날 째에 우경은 가만히 카운터를 보다가 저도 모르는 사이 사탕 껍질을 까 하나 입에 물었다. 크게 달지않는 사탕에는 희미하게 박하향이 났고 그걸 보는 도원은 활짝 웃었다. 우경은 그 후로 매일 하나씩 사탕을 먹었다. 꼭 도원이 보는 앞에서.
딸랑. 스물다섯날 째. 입에 사탕을 넣었던 그 순간 마침 손님이 들어왔다. 입에 넣은 사탕을 뱉지못하고 우경은 가만히 서서 중년 남성의 주문을 기다렸다. 남성은 메뉴판을 가만히 보더니 “거, 뭐가 맛있어요?” 하고 물었다. 우경은 한쪽 볼에 사탕을 물고 “단 것 좋아하세요?” 하고 대꾸했다.
“단 거? 그치. 커피는 좀 달아야 맛있지. 우유도 좀 넣고.”
“그럼 돌체라떼로 드릴까요? 연유가 들어가 있어요.”
“줘봐요. 요새 커피들은 당최 이름으로는 무슨 맛인지 알 수 가 없어.”
남성은 호탕하게 웃더니 작은 가게 안을 훑었다.
“드시고 가세요?”
“아니, 가지고 갈게요.”
그러더니 한마디를 더 덧붙였다.
“시간이 이래서 그런가? 여기 장사 돼요?”
우경은 대꾸하지않았다. 남성은 입맛을 쩝 다시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이렇게 사람이 없으면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져도 모르겠어.”
불쾌한 기색이 역력한 우경의 눈초리에 남성은 말을 이었다.
“엊그제 오피스텔에서 공방하던 여자 집에 불이 났거든요. 응? 여기. 나중에 한 번 읽어봐요.”
카운터에 신문을 내려놓고 한 부분을 손가락으로 탁탁 내리치는 행동을 피해 우경은 커피를 내밀었다.
“드세요. 만이천원입니다.”
남자는 흠칫 놀란 기색을 보이더니 더는 말없이 계산을 마쳤다. 그리고 제가 올려놓은 신문을 한손으로 짚어 우경에게 몸을 기울이고 나서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조심.”
남성은 과장되게 커피를 한 손에 들고 뒤로 크게 거리를 벌렸다.
“아니 이게 뭐야. 돌사탕아냐? 오랜만이네. 하나 먹어도 되는거죠?”
그리고 그 사탕을 낼름 집어 가게를 나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