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의 이야기
4.
양복차림의 중년 남성은 불을 붙이지 않은 담배를 입에 물고 끄트머리를 잘근잘근 씹었다. 와야하는 소식이 오지 않고 있어 애가 타 공원 벤치에 앉아 애꿎은 핸드폰의 폴더만 열었다 닫았다 반복하고 있던 참이다.
신문을 뒤적대며 바스락 소리나 내다가 보름 전의 화재 소식이 조그맣게 다시 신간에 실린 것을 발견했다. 불은 싱크대에서부터 시작되어 가스를 타고 폭발을 일으켰다. 그리고 불이 난 집 안에서 혼자 살던 여성이 죽었다. 자살을 하려던 것처럼 몸에 휘발유 같은 것을 잔뜩 뿌려 시체는 숯검댕이가 되었고 사인은 불명으로 산채로 불이 붙은 것인지 약 같은 걸 먹고 불을 지른 것인지 알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남성은 이것이 살인 사건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렇지만 할 수 있는 일에 제한이 걸렸다. 이젠 더 이상 경찰이 아닌 탓이다.
벨이 울렸다.
“어어, 서경사.”
-아, 형님. 저 경감 단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서경사, 서경사 하십니까.
“내가 경위하다 짤려서 배아파서 그런다 왜.”
-이번에도 너무 하시는 거 아닙니까. 애들이나 하는 사건 조사를 하 참.
“너도 애들 시키면 되지. 인호야. 이거 또 사람 죽는다. 이런 사건은 또 일어난다니까?”
-형님. 아무 증거 없이 제 맘대로 수사 진행이 가당키나 합니까? 제발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지 마세요. 형님 직위 해제 된 지 벌써 3년이나 됐어요. 흥신소를 한다, 해결사무소를 한다 하지만 다 결국 심부름센터 아니에요? 위험한 일은 저희가 할 테니까. 아무튼 재우 시켜서 자료는 가져다 드릴게요. 요새 애들 이런 거 시키면 싫어하니까 밥이나 한 끼 사주고 보내시고요.
“어어-고맙다, 여튼.”
쿨쩍. 전화를 끊자 코가 맹맹했다.
“완석 선배님!”
코를 문지르고 있자니 멀리서 남성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재우였다.
“어 재우 왔냐.”
“아니 요새 누가 자료를 종이뭉치로 봐요. 선배님도 선배님이십니다.”
재우가 등에 맨 백팩에서 제법 두둑한 서류봉투를 꺼내 완석에게 건냈다.
“나는 이게 편하더라고.”
종이봉투를 받은 완석이 누가 볼 새라 얼른 제 서류 가방 안으로 봉투를 밀어넣었다.
“서경감님께서 걱정 많으세요.”
“어어, 나도 내 앞 길 걱정이 많다.”
한숨 소리와 함께 서류가방을 갈무리하자 재우가 우물쭈물하며 입을 달싹였다.
“뭐.”
“진짜에요?”
“뭐가 임마.”
재우가 은근히 운을 띄우자 완석이 눈도 쳐다보지않고 대꾸했다.
“선배님 직위 해제된 거 진짜 누명이냐고요. 아 왜, 서경감님께서 계속 도와주시는 것도 그렇고, 계속 사건 캐고 다니시는 것도 그렇고. 그렇게 경찰일 좋아하시는 분이 갑자기 직위 해제가 됐다고 동기들끼리는 아직도 말이 많아요. 이유, 정말 말씀 안 해주실 겁니까?”
완석은 재우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악의 없는 질문과 어떤 동경이 시선 끝에 걸려 거북했다. 완석은 오늘 뿐만 아니라 그간 정말 많이 참았다. 더 이상 경찰이 아니기 때문에 실제 수사권이 있는 무리로부터 감내해야 하는 모욕도, 자존심 상해가며 빌빌 거리는 것도 전부 참아내었다. 그렇지만 이 질문 만큼은 참기 힘들었다. 화가 너무 나 입술 끝이 바들 거렸다. 사실이 아닌 탓이다.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한 큰 소리가 났다.
“이재우, 이 씨발새끼야. 그게 중요해? 그런게 왜 궁금해? 내가 뭐 누명을 썼으면 어쩌게? 나 복직이라도 시켜줄 수 있어? 니미 씨팔, 재수가 없으려니까.”
터져나온 험한 말에 재우는 잠시 당황했다가 금세 눈을 부라렸다.
“심부름은 제가 다하는데 이 정도도 못 물어봅니까? 맞다, 아니다. 아니면 얘기하기 곤란하다-그렇게 얘기하면 됐지. 씨발 뭐요? 제가 선배한테 욕을 왜 들어야해요?”
완석은 당황으로 기세가 주춤했다. 이 경우 재우가 나쁜 것은 아니다. 다만 어딘가에는 수호되어야 하는 위계질서라는 것이 있는데 그 연결 고리가 이제는 완석과 너무 약해진 탓이다. 그래서 비참했다. 완석은 삽시간에 늙은 기분이 되어 마른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휴, 밥이나 먹자.”
“됐습니다. 본청으로 돌아가야해요.”
대꾸도 듣지 않고 돌아가는 재우의 등 뒤로 완석은 기운이 빠져 의자 위로 털썩 주저앉았다. 끔찍한 탈력감으로 손발이 저리고 가슴에 무언가가 사라진 것이 느껴졌다.
“씹할 거…누명 같은 소리를 해. 개 같은 거…”
눈이 뜨끈해져 양 손바닥으로 눈두덩을 지긋이 누르자 안압이 높아지며 뒷통수가 뻐근했다. 서에 아직까지 얘기가 오가는 것은 완석이 좋은 경찰이었기 때문이고 부끄러움으로 아직 괴로운 이유는 그가 잘린 이유의 원인역시 본인의 잘못이었기 때문이었다.
어찌됐든 벌어진 일이고, 후회해봤자인 일이지만 이 일만큼은 이상하게도 후회가 되질 않았다. 직장도, 커리어도 다 잃었는데 그 때로 돌아가면 또 그렇게 할 것 같았다. 완석은 그 때 불법 바카라 조직을 쫓다가 도박에 손을 댔다. 호기심이었다. 자극에대한 끌림이었고, 도파민을 향한 갈증이었다. 안할 수 있다면 안했겠고 그런 사람 밖에 없다면 불법 도박은 이세상에 존재하지않으리라. 완석의 입장은 그랬다. 경찰일을 하다가 물들어서 어쩌구 하며 서인호는 저를 싸고 돌지만 완석 스스로는 뼈저리게 알았다. 제게 기회가 있다면 또 그 구석으로 기어들어갈 것을.
이렇게 도박에 집착하는 것과는 별개로 경찰일은 잘 맞았다. 천성이었다. 완석은 실적이 좋았다. 눈썰미가 다르다는 얘기는 신참 때부터 들어왔다. 사실 완석의 눈에 범죄자들은 한눈에 들어오는 특이점이 없었다. 다만 다른 것이라고 하면 얘기를 좀 나눠보면 알았다. 그들이 뽐내고 싶어하는 것, 가치를 두는 것, 집착하는 것들. 어쩌면 자신과도 닿아 있는 부분들이 소름끼치게 선명했다.
그보다 그의 실적에 영향을 준 것은 가해자를 잡으려는 마음이 아닌 피해자들이 무엇을 잃었는지 알아채는 감이었다. 피해자들은 말하자면, 개성이 있었다. 그들이 무엇으로 상처받고 착취당했는지 무엇을 잃었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음으로, 완석에게 피해자라는 것은 살아있는 사람이나 죽은 시체나 다를 바 없었다. 덕분에 그는 경찰직을 수행하는 동안 동료들에게 감수성 높고 사려깊은 경찰관으로서 피해자의 아픔을 이해하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나이에 비해 진급도 빨랐고 진급이 빠른만큼 퇴사도 빨랐다.
완석은 대부분의 시간에 막노동을 했다. 그렇게 아는 사람 소개로 공사판에서 막일거리를 하며 보내다가 일이 없으면 정장을 차려입고 공원에서 신문을 보았다. 그러다 만난 것이다. 이 사건을. 빼앗긴 것이 무엇인지 안다면 신원미상의 시체는 제 목숨을 버린 게 아니었다. 어쩌면 범인도 찾을 수 있을지 몰랐다. 완석은 단숨에 알았다. 이 시체도 무언가 잃어버렸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