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해

그 남자의 이야기

by Big Green

3.

“에스프레소 주세요.”


커피를 내리는 동안 도원은 자리에 앉지 않고 늘 카운터에서 우경이 하는 양을 보았다. 시선은 솜털 같고 부드러웠으나 우경은 그것이 꼭 뱀이나 호랑이의 시선같아 커피 머신을 만지는 손을 떨지않기 위해 사력을 다해야했다.


“피곤해보여요.”


샷이 든 머신의 컵이 맑은 소리를 내며 바닥을 굴렀다. 우경은 뜨거운 샷이 손에 쏟아진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한껏 커진 눈으로 도원을 보았다.


“찬물에 빨리 손부터 헹구는 게 좋겠어요.”


우경은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곤 뒤쪽의 씽크에 물을 틀어 그렇게 했다.


“평소에 자주 얼굴을 보니까 안색 살피는 게 습관이 됐나봐요. 놀란 것 같은데 미안해요. 난 그냥 우경씨가 편안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뿐이에요.”


물기가 어린 손은 벌겠다. 어쩌면 벌겋게 된 것은 손뿐 만이 아닐지도 모른다. 당황으로 벌어진 일이 이성이 돌아오며 인식되자 몰려오는 것은 자신의 어설픔에 대한 부끄러움이었다.


“…꿈을 좀 꾼 것 뿐이에요.”


그 작은 대꾸에 도원은 작게 놀랐고 혹 이 반응에 또 우경이 움츠러들까 입술을 살짝 물었다. 웃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럼 우리 다 괜찮은거죠?”


“네.”


여전히 우경은 도원의 얼굴을 마주보지 않았지만 도원은 이것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우경은 새롭게 커피를 내려 이번에는 떨리지 않는 손으로 잔을 밀어냈다.


“에스프레소 나왔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번에 살짝 손을 떤 것은 도원이었다. 조절되지 않는 떨림에 도원은 쟁반에서 손을 살짝 떼고 주먹을 쥐었다 폈다. 그리고 다시 쟁반을 들어 이제는 고정석이 되어버린 제자리로 가 앉았다.


“꿈 얘기 물어봐도 돼요?”


“아뇨.”


“저도 꿔요, 꿈.”


우경은 대꾸하지않았다.


“대부분은 행복한 꿈인데 요새는 그게 꼭 악몽 같지 뭐에요.”


도원은 우경의 반응을 개의치 않는 정도가 아니라 허공에 혼잣말을 하듯 지껄였다.


“꿈이 없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상상만으로 행복한 기분이 든다는 얼굴로 도원은 잔을 들어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이 커피는 도무지 익숙해 지지를 않아요. 고작 이만큼 마셨는데 혀 뒤가 아리고 목구멍이 써서 단번에 마시지 않으면 늘 인상이 써지니까. 그런데 여기 물을 타거나 우유를 타거나 하고싶지가 않아요. 아시겠어요?”


“…많이들 그렇게 마십니다.”


이번에는 우경이 대꾸했다.


“그래도 그렇게 하고싶지가 않은 거에요. 그렇게 해버리면 내가 이 맛이 익숙해질 기회가 없으니까. 그런데 그런거지 이제. 이게 영영 이런다고 하면 결국 나도 여기에 물을 타지 않겠어요?”


“그렇다면 왜 애초에 물을 타지않나요?”


도원은 키득댔다.


“그렇게 된다면 아마 나는 더 이상 커피를 마시지않을거에요. 전 그런 사람이거든요.”


이상한 일이었다. 꿈을 이렇게 자주 꾼 적이 없었는데. 우경은 제 꿈 속을 의식으로 떠다니며 매번 같은 일이 벌어지는 모양을 지켜보았다.


머리를 반듯하게 넘긴 노년의 남성은 풍채가 좋고 허리가 약간 굽었다. 하얀 가운을 입은 노인은 이제 겨우 자리에 앉아 머리를 가눌 수 있을 정도로 어린 제 앞에 아빠다리를 하고 앉았다. 그리고 블록을 가득 가져다 놓고 처음엔 제가 무엇을 하는지 가만히 관찰하다가 제가 별 흥미를 보이지 않자 먼저 한두개 쌓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어린 저는 그렇게 그 모습을 가만히 보았다 곧 따라해 보이고, 후에 그는 누런 이를 들어내며 웃었다. 목소리가 지직거린다. 그래. 그래야지!


목소리는 환희에 차있다. 모든 것은 화질 나쁜 화면으로 재생된다. 그리고 곧 제 의식은 밝은 곳으로 나와 또 차가운 것들에 찔리고 벌어져 식은땀에 잠에서 깬다.


우경은 녹초가 되었다. 눈이 번쩍 뜨이면 좋겠는데 익숙한 악몽이라는 것은 사람의 진을 빼놓는다. 오늘은 정말 도저히 문을 열지 못하겠다. 그런 생각을 하고 물을 주지 못한 식물들의 걱정으로 또 무거운 수마에 들었다.


옷을 갈아입지 못하고 잠들었기 때문에 가벼운 감기에 든 모양이었다. 우경은 살짝 올라오는 열감에 기침을 하며 조금은 일찍 가게의 문을 열고 환기를 하기 위해 현관을 열었다.


그 때 문 앞에 무언가 덜컹 걸렸다. 도원이었다.


“뭐에요?”


당황으로 문을 잡아당기며 반걸음 뒤로 물러나자 열린 문틈 사이로 도원이 스르륵 일어나는 것이 보였다.


“어제는요?”


도원의 얼굴은 흡사 야차 같았다. 지옥에서 올라온 악귀가 그러하듯이 울분에 차 쏟아낼 곳을 찾는 몰골로 도원은 다시 물었다.


“어제 왜 문 안열었어요?”


우경은 당황했고 두려웠고 도망치고 싶었다. 도원은 문을 붙잡고 우경에게 바투 붙었다.


“몸이…좀 안좋았어요.”


“제가 올 줄 알았을텐데요.”


“…네.”


도원은 소리를 지르지도 않았고 화를 내지도 않았지만 그 기세가 너무 사나워 우경은 혀로 입술을 살짝 적셨다. 도원은 문에서 손을 떼고 주먹을 꾹 움켜쥐어 제 얼굴을 거칠게 문질렀다.


“…기다렸어요. 기다렸어요, 죽.”


목소리는 형편없이 떨리고 있었다.


“내가 30일이라고 말을 해버려서, 그래서 혹시 그것 때문인가, 나때문인가, 생각이 너무 많아졌어요. 미안해요. 그냥 지금 나한테 화가 너무 많이 나서 그래요.”


도원은 고개를 들고 서투르고 어설프게 웃었다.


“미안했어요. 내일 봐요. 내일 올게요.”


멀어지는 도원의 등 뒤로 선명하게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해가 눈부셔 우경은 눈을 찌푸려가며 그 뒷모습을 끝가지 바라보다 다리에 힘이 빠져 주저앉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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