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배아의 염색체
노원구 병원에서 두 차례의 신선 이식이 실패한 이후, 서울역 차 병원으로 전원을 했다. 냉동으로 진행했던 세 번째 이식이 실패하고 병원에서는 내게 반착검사를 권유했다. 수치 상으로 (별다른 이상이 없다는 전제 하에) 세 번 정도 이식을 하면 한 번 임신 되는 것이 정상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병원에서는 그 전까지는 반착검사를 권유하지 않는다. 하지만 세 번째 이식이 실패하면 그때부터는 보다 적극적으로 착상을 성공시키기 위한 방안들이 모색되기 시작한다.
난임 치료가 너무 과열(?)되지 않기 위해 확률에 근거해 세 번째 실패까지 반착 검사를 못 하게 하는 건 이해하지만, 그래도 환자 입장에서는 답답하고 속터지는 부분도 이 부분이다. 임신이 되지 않아 병원을 찾은 사람들인데, 그리고 한 번 시험관 할 때마다 몸에 얼마나 많은 부담이 되는데... 그냥 한 번에 할 수 있는 검사 다 하고 치료를 진행하면 얼마나 좋을까 ㅠㅠ
아무튼, 나는 세 번 이식을 실패하고 차병원에서 반착검사를 진행했다. 예전 글에서 나왔던 그 무시무시한 피통 리스트가 바로 이 반착검사의 피통 리스트였다. 반착검사는 주로 나처럼 반복적인 착상 실패를 겪는 사람들에게 진행이 되는데, 착상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인들(엽산 대사, 혈액 응고, 자가면역질환, 부부 염색체 등)을 검사한다. 나랑 남편이랑 총 90만원 가까운 금액을 내고 피를 뽑았고 정말 많이 뽑았다...!
반착검사를 하고 나서 뭐라도 하나 나오길 얼마나 기대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결과는 별 이상 없음. 엽산 수치가 조금 낮아서 고용량 엽산을 먹는 정도로 처방이 바뀌었을 뿐 네 번째 이식은 앞 선 이식과 비슷하게 진행되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계속 이식이 되지 않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저 모든 원인을 제거할 수 있는 처방이 추가되기 시작했다. 혹시나 해서 혈액 응고에 별 문제가 없지만 아스피린과 크녹산을 처방받았고 고용량 엽산을 복용했으며 자가면역질환을 방지해주는 주사를 추가로 맞았다. 고차수가 되면 사실 반착검사의 결과는 별 의미가 없이, 이 모든 것에 대한 대비를 하는... 그런 상황이 펼쳐진다.
네 번째 이식이 실패로 돌아가고 나의 주치의 선생님이 내게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사실 차병원의 첫 주치의 선생님은 너무너무 유명한 분이셨고 또 동시에 너무너무 무서운 분이었다. 서울역 차병원은 위치 상 지역에서도 많은 환자들이 올 수 있기 때문에 정말 환자가 많다. 아울러 환자가 많은 만큼 어려운 케이스의 환자들이 많이 방문하는데, 사실 나 따위는 비교도 안 될만큼 어렵고 힘든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래서인지 주치의 선생님은 나이도 그닥 많지 않고 AMH수치도 애매하게 낮은 나는, 사실 쉽게 임신이 될 거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진료는 늘 일찍 끝났고 검사에 대한 자세한 설명도 없었다. (검사 결과 별 이상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네 번째 이식이 실패로 돌아갔을 때, 주치의 선생님은 좀 이상해 보였는지 PGT 검사를 권유했다. PGT 검사는 착상전 유전검사,인데 이식 하기 전 배아의 세포 일부를 떼내서 염색체의 숫자나 구조적 문제가 없는지, 유전자에 문제는 없는지 확인하는 검사라고 이해하면 된다. 진짜 너무 신기하지 않은가. 그 작은 배아로부터 세포를 떼어내고 또 그걸 가지고 유전자 검사를 하다니....
보통 나처럼 반복착상 실패를 경험하거나 습관성 유산을 경험했을 때, 40세 이상의 고령인데 착상이 잘 안될 때 PGT-a를 진행하고 부모가 염색체나 유전적 문제를 가지고 있을 때 PGT-sr, m을 진행한다. 남편과 나는 염색체나 유전적 문제를 가지고 있지 않았고 단지 착상이 반복해서 안 되고 있었기 때문에 PGT-a를 권유받은 것이었다.
일단 진행하기로 하고 집에 돌아온 나는 미친듯이 PGT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후기들은 정말이지 너무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사실 배아의 세포를 떼는 거라 내가 아프거나 번거로울 일은 하나도 없는데, 문제는 통과 확률이 너무 낮았다. 어떤 사람은 3개 보냈다가 1개 통과하고 5개 보냈다가 1개 통과하고 또 어떤 사람은 1개도 통과하지 못 했다고 하는..... 걱정되는 마음에 간호사 선생님에게도 문의를 했는데, 간호사 선생님도 5개 중 1개 정도 통과를 하는데, 나이가 젊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배아가 5개 있었다는 거잖아요.... ㅠㅠ 나는 딸랑 2개 나오는데.....? 수정란이 2개 만들어지는데 PGT 했다가 1개도 통과 못 해서 이식 못 하는 거 아닌가,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모른다. 게다가 비용도 엄청 비쌌다. 개당 30만원 선이었던 걸로 기억을 하는데, 이거 몇 번 하면 정말 수백은 우습게 깨질 판이었다.
그런데 의외로 결과는 모두 통과?!
그렇다. 나는 PGT-a 결과 아무 문제 없는 배아를 가지고도 착상을 못 했던 것이다...
통과하기 어렵기로 유명한 PGT검사를 무사히 통과한 내 배아들은, 확률적 통계가 무심하게도 모두 착상에 실패했다.
나중에 알게 된 거지만 병원마다, 의사마다 PGT-a에 대한 입장은 조금씩 다르다. PGT-a를 진행하고도 주구장창 임신이 안 되는 나같은 사람도 있고, 또 그 통과 확률이 너무 낮기 때문에 PGT 통과만 기다리다가 이식을 못 하고 채취만 계속 해야하는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그래서 PGT를 권유하지 않는 병원도 있다.
물론 PGT 검사가 비정상 임신의 가능성을 낮춰줄 수 있다는 의견도 있지만 모든 가능성을 제거해주는 것도 아니다. 계류 유산을 반복적으로 경험한 경우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PGT-a도 반착검사와 같은 게 아닐까 싶다. 반착검사에서 별 이상이 없었지만 고차수가 되면서 나에게 혹시나 싶어 모든 처방이 내려진 것처럼, PGT도 그런 맥락의 검사가 아닐까... 어쨌든 선택은 나의 몫이기에 본인의 상황(생물학적인 나이, 유산 이력, 한 번의 채취로 얻는 수정란의 갯수 등)을 고려해서 신중히 결정할 필요는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