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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고인 김종섭 Jan 31. 2022

미국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쏟은 기억

알바생이 그 브랜드가 될 때.


"Don't worry about it"


미국 유학 시절은 참 배고팠다. 그때 자주 먹었던 것이 버거킹 와퍼였다. 먹으면 오랫동안 배가 꺼지지 않는 음식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당시 2~3 불하는 나름 저렴한 비용으로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었다. 게다가 한국 와퍼보다 더 컸던 걸로 기억이 난다. 그럼에도 스타벅스 역시 가고 싶은 곳이었다. 내게는 한 끼 식사와 맞먹는 비용이었지만 말이다. 스타벅스에 앉아 다리를 꼬고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이 그렇게 부러웠다. 알바 월급이 나오면 꼭 스타벅스에 갈 것이라고 계획했다. 


오지 않을 것 같았던 월급날이 왔다. 월급을 받아 든 채 나름 옷을 갖춰 입고(?) 스타벅스에 입장했다. 그리고 최대한 공손한 영어로 따뜻한 카페라테를 주문했다. 내가 늘 부러워했던 사람이 앉는 창가 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마침내 카페라테가 호명(?)되었고 나는 상전 모시듯 그것을 집어 들었다. 카페라테를 나의 테이블 정중앙에 안착시키고 스벅에서 볼 책을 가방에서 꺼내고자 했다. 


그것이 화근이었다. 책을 펼치는 순간 책날개가 라테 잔을 쳐버려 그대로 바닥으로 쏟아지고 말았다. 인간이 죽을 때 수만 가지의 영상이 보인다고 했던가. 그때 나는 수만 가지의 생각이 떠올랐다. 역시 사람은 평소에 하지 않는 짓을 하면 탈이 난다는 교훈을 되뇌고 되뇌었다. 하지만 나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한 달 뒤에 월급을 받으면 또 올 수 있다’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나는 알바생에게 가서 이실직고를 하고 청소도구를 요청했다. 그랬더니 괜찮다며 자신이 그 바닥을 직접 닦기 시작했다. 내 입으로 들어와야 할 라테들이 밀대 속으로 흡수되고 있었다. 라테는 못 마셨지만 그래도 알바생이 모두 수습해줬으니 오히려 운수 좋은 날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돌아서는 순간, 그 알바생은 나를 한번 더 감동시켰다. 따뜻한 라테 한잔을 다시 내게 건네는 것이 아닌가. 어쩔 수 없이 내가 다시 지갑을 꺼내 드는 그 순간, 그가 점잖게 말했다. 


"Don't worry about it"


감정 표현을 잘 못하는 한국인이지만 이미 내 마음은 울고 있었다. 그때 마신 라테는 군대에서 혹한기 훈련 때 먹던 봉지 라면을 이기는 맛이었다. '커피라는 것이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구나' 감탄하면서 마셨던 기억이 난다. 


이런 경험이 스타벅스라는 브랜드를 더 좋아하게 만들었다. 내게 스타벅스는 그냥 커피를 파는 곳이 아니었다. 내가 실수하고 잘 못해도 용서받는 곳이었다. 물론 그 한 명의 알바생이 스타벅스를 대표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한 명으로 인해 나는 엄청난 브랜드 애착심이 생겨버렸다. 전 세계적으로 스벅에서 일하는 알바생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엄청난 숫자일 것이다. 하지만 한 명으로 인해 나는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했다. 이것이 브랜드에서 일하는 개개인이 자신이 그 브랜드라는 생각으로 일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최근에 햄버거를 만들면서 담배를 피우는 알바생의 모습을 봤다. 위생적이지 않은 내용을 SNS에 올려 눈살을 찌푸리는 경우가 잦아지고 있다. 그들은 명심해야 한다. 고작 알바생 한 명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소비자는 그 브랜드의 CEO를 만날 기회가 없다. 정작 우리가 가게 안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현장의 알바생들이다. ‘고작 알바생’이라는 생각은 버리자. ‘무려 알바생’이다. 알바생이 곧 그 브랜드의 얼굴이 되는 시간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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