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빅이슈코리아 Dec 20. 2019

[포토 에세이] 벗겨진 벽

글·사진 홍윤기     





이 사진은 서울 용산에 위치한 미군부대 캠프 킴 건물의 한 벽면이다. 캠프 킴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군의 육군창고로 사용됐고 1945년 미군이 주둔하기 시작하면서 한국노무단, 미군위문협회 등으로 사용했다. 최근에는 서울시와 주한미군이 공동역사전시관으로 운영 중이다. 사진 속 붉은색 벽돌과 대리석은 100년 전 일본군이 지은 건물의 일부이고, 벽면의 아이보리색 페인트는 미군이 들어서며 덧칠했다. 긴 시간이 지나면서 페인트는 벗겨졌고 그 속에 벽돌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최근 미국이 우리 정부에 현재의 다섯 배에 이르는 방위비 부담금을 요구해 왔다. 작년 10월 한국 대법원이 일본 기업이 일제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배상을 할 책임이 있다고 판결을 내렸다. 일본은 이 판결이 국제법 위반이라 비판했고 안보상 신뢰를 명분으로 한국에 수출규제 조치를 취했다. 결국 우리 정부는 경제 보복에 맞서 지소미아(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로 맞섰다. 미국은 한미일 군사협력 약화를 우려해 지소미아 종료를 철회할 것을 요구하며 방위비 부담금 인상까지 요구해왔다는 해석도 있다. 지소미아는 조건부 연장으로 결정됐다. 중재 역할은 간과하고 방위비 분담금 압박을 넣는 미국도 아쉽지만, 결국 문제의 근본 원인은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지 않는 일본의 역사관이다.


어쩌면 사진 속 벗겨진 벽은 현재 상황과 닮아 있다. 우리 사회는 시간이 지나면서 드러난 붉은 벽돌처럼 여전히 일제강점기의 아픔이 남아 있으며 여전히 미국과 협력해야 하는 관계 속에 있다. 다시 한 번 그 위에 덧입혀 페인트칠을 할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색을 칠할 것인지,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홍윤기  2015년 민중총궐기를 시작으로 탄핵 정국, 홍콩 시위 등 크고 작은 사회 이슈를 사진으로 기록하고 있다. 한 장의 사진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위 글은 빅이슈 12월호 21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일러스트 에세이] 미스 박과 선생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