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 초보자의 온갖 호들갑
글·사진제공 호연지기
“한 달에 세 번만 먹을 거야.” 불판에 굽거나 통째로 뜯는 고기에 한해 횟수를 줄이겠다는 아주 협소한 다짐이었다. 그 횟수는 채식을 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많은 것 아니냐는 친구의 말에 ‘아차’ 하면서도, 다음 달 1일이 되자마자 고기를 먹었다.
고기에 대한 욕망은 어렸을 때부터 대단했다. 당시 제일 좋아했던 치킨버거 포장지를 보물상자에 간직하는 이상한 집착 행태를 보이기도 했다. 살아온 대부분의 시간 동안 고기와 치즈를 좋아했다. 좋아하는 것을 잔뜩 먹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견디고 행복해하고 힘을 얻었다. 공장식 축산이 사회 이슈가 되기 시작할 때에도 그런 고기가 몸에 좋지 않을 것이라는 위협만이 나에게 문제될 뿐이었다.
채식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계기를 단순하게 설명하긴 어렵다. 돼지의 살처분 영상을 보고 충격을 받았지만 그것으로 단번에 채식을 작심하지 않았다. 다만 죽을 때까지 임신을 반복하며 우유를 생산하는 암소들이 영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2015) 속 ‘아기공장’ 여성들과 겹쳐지면서 고민이 시작된 것만은 분명하다. 공장에서 찍어내듯 동물이 만들어지는 것, 동물이 상품으로 진열된다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음을 긴 시간에 걸쳐 알아갔다. 때론 용기가 필요했고,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일이었다.
초기의 작심 3회 고기 먹기는 번번이 실패했다. 고기를 먹을 수밖에 없다고 이유를 만들어내곤 했다. 예를 들면 ‘오늘은 너무 힘든 일을 많이 했기 때문에 고기를 먹을 수밖에 없다’라던가, ‘연말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이상한 논리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고기의 맛이 이상해졌다. 나만의 그럴듯한 핑계는 여전했지만 예전에 느꼈던 만족감 대신 못 먹는 음식을 꾸역꾸역 삼킨 것처럼 매스꺼움이 부글댔다. 내 몸 깊숙한 곳에 새로운 인식 장치가 설치를 마치고 서서히 작동되는 듯했다. 그리하여 작심하고 고기를 먹어대던 사람은, 고기와 유제품을 먹지 않겠다는 작심을 했다.
오랫동안 당연하게 여기던 것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은 두려움과 기대를 동시에 불러왔다. 쉽게 위기 상태에 빠지기도 했고 반대로 희망을 느끼기도 했다. 작심 두 달째에 몸에 온통 두드러기가 난 적이 있다. 고기를 먹지 않아서 문제가 생긴 것인지 순간 심각해졌는데, 나는 그때 마감 때문에 며칠간 밤을 새우던 중이었다. 반대로 생리통 없이 지나간 달에는 고기를 먹지 않아 몸이 좋아졌다고 생각했다. 초반부터 좋든 나쁘든 몸의 작은 변화에도 채식 때문이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비건을 지향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는 나의 작심이 더 탄탄하게 지속될 수 있을 거라는 기대에 들떴다가도, 일터나 가족 모임 등에서 식사를 해야 할 때는 매순간 위태로워졌다.
육식이 디폴트인 사회에서 채식을 한다는 것은 매번 눈치를 살피게 되고 불안해지는 일이다. 그리고 아예 먹지 않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는 상황이 심심치 않게 벌어진다. 그럴 때 내 소심함과 의지박약이 결합하여 나의 작심은 볼품없이 쭈그러진다. 바쁜 식당에서는 끝내 무엇이 들어가는지 묻지 못한 채 주문을 하고 먹지 않는 것을 골라내고 먹곤 한다. 상황에 따라서는 소량으로 포함된 것은 그냥 먹기도 한다. 사람들이 나 때문에 식당 선정에 애를 먹을 때는 고마운 마음과 부담스러운 마음이 엉켰고 가끔 화가 나기도 했다. 널린 게 식당이건만 채식 메뉴를 파는 곳이 이렇게나 없다니. 그리고 어쩔 수 없이 ‘특별취급’이 계속되면 불편해지기 마련이다. 한번은 다 같이 식당을 고르다가 누군가 고기를 먹으러 가자고 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호연 때문에 안 되잖아’라며 나를 턱으로 가리킨 적이 있다. 그때의 기분을 아주 정확히 표현하지 못하겠다. 그냥 속으로 그 사람을 미워했다. 아주 강한 에너지로. 비밀이지만 스스로의 결정이든 외부의 영향이든 채식을 잘 하지 못할 때마다 남몰래 실컷 욕을 퍼붓는다. 스스로는 위선자라고 욕을 해주고 육식주의자들을 신나게 욕하고 인류를 싸잡아 욕하기도 한다. 좌절하는 것보다는 욕을 시원하게 날리는 게 다시 작심을 하는 데 도움이 됐던 것 같다.
이제 먹는 것은 나에게 최대의 고민거리이지만 여전히 제일의 기쁨이고 행복이다. 맛있는 비건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먹을 때 참 행복했다. 골머리만 앓고 실패를 반복하면서 지치기도 했지만 새롭게 만나게 된 세계와 사람들에 안도했던 순간들이 마음 깊이 남아 있다. 그것으로 힘을 내어 올해도 작심을 이어가보려 한다.
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크든 작든 계획을 세우고 마음을 먹는다. 나는 남들처럼 1년 단위로 했다가는 반드시 실패할 것이기에, 시도 때도 없이 마음을 먹었다. 왜 그런 말이 있지 않는가, 작심 3일을 3일마다 하면 된다고. 새해에도 나는 그렇게 살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나 보다. 분명 새해 계획을 생각하며 글을 썼지만 쓰고 보니 작년에 얼마나 호들갑을 떨고 붉으락푸르락 부산했는지에 대해 나열해버렸다.
2020년에도 변함없이 고기와 유제품을 먹지 않고 가능하면 비건이 되기 위해 노력할 예정이다. 지난달에는 ‘연말이기 때문’이라는 익숙한 핑계를 대고 해양 동물을 너무 많이 잡아먹었다. 새해에는 해양 동물에 대해 생각해보려고 한다. 나는 왜 해양 동물에게는 거부감을 덜 느끼는 걸까? 관련해서 책을 보든 자료를 찾든 알아가기 위해 노력할 거다. 그리고 조금 더 부지런해지고 너무 조급해하지 않는 마음도 키우려고 한다. 올해도 나의 작심은 온갖 호들갑을 떨며 콩알만 해지기를 반복하고 복잡한 울분에 휩싸일 테지만, 나를 너무 경멸하지 않고 아주 조금만 더 용기를 내면서 한 해를 살아내보겠다고. 또! 작심해본다.
호연지기
나의 존재 그대로 존중받으며 살고 싶어 페미니즘과 비건에 집착합니다.
한국여성민우회 활동가입니다.
위 글은 빅이슈 1월호 21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