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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이슈코리아 Jan 22. 2020

[나만의 픽] 겨울하면 생각나는 그 영화

방구석 1열에서 여는 나만의 영화제 시상식





추울 때에는 방구석에서 귤 한 봉지와 주전부리를 준비하고 전기장판 위에 앉아 모니터로 나만의 영화, 드라마 축제를 연다. 물론 작은 빔프로젝터가 있어서 벽에 스크린을 만들어서 본다면 더욱 방구석 영화제다운 맛을 더할 수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럴 때에는 안 본 영화나 드라마를 새롭게 시도하기 보다 이미 몇 번이나 봤던 것을 다시보기 하게 된다. 특히 ‘겨울’하면 떠오르는 몇몇 작품들이 내게는 있다. 그 겨울에 봤던 드라마를 다시 보면 그때 함께 있던 사람, 그 때 있었던 사건, 그 때 맡았던 공기의 냄새까지도 떠오른다. 그래서 기획했다 ‘겨울하면 생각나는 그 작품’과 얽힌 추억.

 

겨울 영화

조은식

딱 이맘때다. 수능이 끝났고, 수험생들에겐 잠깐의 자유 아닌 자유가 주어지고, 날짜를 쓸 때면 깜빡하며 전년도의 숫자를 썼다가 지우고, 지키지 못할 새해 계획을 세우고… 매해 비슷하지만 그래도 설렘을 감추지 못했던 스무 살이 되던 해의 겨울이 생각난다. 2020년은 쥐띠 해다. 5년 전 추운 겨울의 어느 날 영화관에서,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해도 생일이 지나지 않은 1월 생은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의 영화를 볼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타고난 노안 덕분에, 사람이 많지 않은 동네 영화관에서는 얼렁뚱땅 볼 수 있었다. 하루는 그런 나를 부러워하던 친구들 두 명과 함께 영화관에 갔다. 이상하게(?) 그날은 신분증 검사를 요청받았다. 우리는 신분증을 들고 다니지 않는다며 얼버무렸다. 그러자 검표하시는 분께서 ‘띠’가 어떻게 되는지 물으셨다. 우리는 당황했고, 한 친구가 “저는 그런 거 외우고 다니지 않아요.”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영화는 볼 수 없었다. 그 영화를 비롯해 나는 겨울이 되면 이상하게 더 생각나는 영화들이 많다.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

세대를 정의하는 말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밀레니얼 세대 동년배들을 ‘해리 포터 세대’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다. 우리가 모르는 마법사 세계가 존재하고, 마법사 중에서도, 함부로 이름을 말할 수 없는 공포의 존재 볼드모트에 운명적으로 맞서 싸우는 해리 포터의 성장 이야기는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다.

새 책은 항상 겨울에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완결될 때까지 매년 겨울을 손꼽아 기다렸다. 밤새 읽고, 수업 시간에 몰래 책상 밑에 두고 읽고, 집에 와서 또 읽고, 멈출 수 없었다. 마법학교 호그와트의 입학 초대장을 받을 수 있는 열한 살 생일에는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영화화된 작품 중에 가장 좋아하는 건, 세 번째 시리즈인,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2004)이다. 흥행 성적은 시리즈 중에서 가장 낮았지만, 전작들과는 다른 결로,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그려낸 어두운 세계관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영화 속 주인공들이 마법학교 호그와트의 근처 마을인, ‘호그스미드’의 온갖 과자를 파는 ‘허니듀크’, 기상천외한 장난감으로 가득한 ‘종코의 장난감 가게’에 가는 것이 부러웠다. 영화도 10년에 걸쳐 만들어졌기에, 배우들의 이가 빠질 때 나도 같이 이가 빠지고, 배우들이 사춘기를 겪을 때 같이 사춘기를 겪었다. 그래서인지 내적 친밀감이 아주 높았다. 눈이 펑펑 내리는 날, 영화 속 주인공들이 ‘호그스미드’의 주점에 가서 버터맥주를 마실 때마다 함께하고 싶었다.     





러브레터

내가 가장 처음 알게 된 일본어는 사랑한다는 말인 ‘아이시테루(あいしてる)’도 아니고, 감사하다는 말인 ‘아리가토(ありがとう)’도 아닌 ‘오겡키데스카(おげんきですか)’였다. 한 영화 때문이다. 짙은 주황색 니트를 입은 단발머리의 주인공이 설원에 서서, 먼 산을 향해 건강히 잘 지내냐며 ‘오겡키데스카’를 외치는 장면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와이 슌지 감독의 <러브레터>(1995)는 우리나라에서 지난해 크리스마스 다음 날에 재개봉하기도 했다. 영화는 ‘와타나베 히로코(나카야마 미호)’가 죽은 옛 애인인 ‘후지이 이츠키’를 잊지 못하고 옛 주소로 편지를 보내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그와 동명이인이면서 중학교 때 같은 반이었던 사람이 편지를 받게 되면서, 상황이 알쏭달쏭하게 흘러간다.

강물이 바다로 흐르고, 구름이 되어, 눈으로 내리고, 녹으면 다시 강물로 흐르는 것처럼 세상은 모두 이어져 있다는 생각을 한다. 눈이 내리는 크리스마스, 합창단이 캐럴을 부르며 다니던 새벽에 나의 어머니가 태어나셨다. 어렸을 때 <러브레터>의 DVD가 집에 있었는데, 표지 속 주인공과 어머니가 너무 닮아서 신기했고 그래서 더욱 소중하게 보관했었다. 아끼고 아끼던 이 작품은, 어렸을 때부터 이야기만 듣다가, 청년이 되어서야 보게 되었다. 그날도 추운 겨울날이었는데, 꼬마일 때와 청년일 때의 나 자신이 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하나 되었던 순간이었다.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

그런 날이 있다. 추석에는 더 먹어도 괜찮을 것 같고, 생일은 괜히 특별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크리스마스에는 왠지 더 너그럽고 따뜻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괜찮아, 오늘은 크리스마스니까’라는 마법의 주문을 외울 수 있기 때문일까?

곤 사토시 감독의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2003)은 크리스마스에 사연 많은 홈리스 세 명이 쓰레기 더미에 버려진 아이를 발견하면서 시작한다. 아이의 부모를 찾아줄지 말지, 처음부터 목소리를 높여가며 다투는 주인공들에게 말도 안 되는 우연들이 찾아온다.

겨울이 되면 왠지 생각이 더 많아지는 것 같다. 양말과 이불에 더 친해지는 계절이라 그럴까. 언젠가 ‘선물이란 내가 상대방을 얼마나 모르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행위이다’라는 맥락의 문장을 읽은 후에 한동안 선물을 하지 못했었다. 우리는 사랑이라는 변명을 하지만 남을 쉽게 실망시키기도 하니까. 한편으로는 사랑하는 마음이란, 설령 그것이 어설프더라도, 선물처럼 전하지 않으면 상대방은 알 수 없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한다, 고맙다’ 같은 말들이 서로에게 진심으로 통한다는 것은 기적 같은 일이다. 영화를 보고 온 세상이 크리스마스처럼 느껴졌다. 만날 줄 몰랐던 우연처럼 뜬금없이, 소중한 사람들에게 사랑한다는 문자를 보냈다. 날씨는 춥지만 낯은 뜨거워졌다. 그래도 괜찮다, 크리스마스 같은 영화를 봤으니까요.     


 위 글은 빅이슈 1월호 21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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