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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이슈코리아 Feb 10. 2020

[에디토리얼] 슬픔이


편집장 김송희





영화 <인사이드 아웃>은 인간의 감정을 기쁨, 슬픔, 혐오, 분노, 공포 다섯 가지로 나누어 캐릭터화했습니다. 기쁨이는 노랑, 슬픔이는 파랑(블루), 혐오는 초록, 분노는 빨강, 공포는 보라. 얼굴 색도 다른 이 다섯 아이들은 당연히 성격도 다릅니다.(쓰고 보니 이상한데 이 캐릭터들의 이름 자체가 성격이기도 하네요.) 매사에 긍정적이고 대책 없이 밝은 기쁨이와 달리 슬픔 이는 소극적이고 내성적이고 매사에 시무룩합니다. 슬픈 기억을 부정적이고 지워야 할 것으로 인식하는 사회 통념처럼 주인공 라일리의 감정 컨트롤 본부에서도 슬픔이의 역할과 발언권은 매우 적습니다. 작은 아이가 성장하면서 무엇을 잃고, 또 무엇을 얻게 되는지 우리 머릿속 에서 일어나는 풍경을 그린 이 영화에서 라일리가 어른이 되는 순간은 상상의 친구 빙봉을 잃게 됐을 때일 것입니다. 그 대신 라일리가 얻게 된 것은 슬픔을 통해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는 방법입니다. 라일리의 엄마는 “우리 딸 라일리, 너는 밝고 명랑한 아이잖니!”라며 아이에게 미소를 권하지만 사실 우리가 잘 들여다보고 가꾸며 살아야 할 감정은 슬픔입니다. 원치 않는 외부 요인에 의해 발생되기 때문에 내 뜻대로 다스릴 수 없는 감정. 슬픔은 내면에 잘 가꾸며 다독여 안고 살아가야 할 또 하나의 정원입니다. 내면에 침체된 슬픔이라는 감정의 실체가 저토록 귀엽고 나약한 친구였다니, 영화를 보고 나오며 얼굴이 파란 ‘슬픔이’ 피규어 인형을 샀습니다. 저는 더이상 열한 살 소녀 라일리가 아니기에, 슬픔의 얼굴이 나약하고 소심한 것만은 아니란 사실을 이제는 압니다. 이번 호 《빅이슈》에서는 마음을 들여다보는 사람들, 우울증에 지지 않고 나를 다독이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습니 다. 우울증은 슬픔의 감정이 아닙니다. 우울증은 슬픔도 기쁨도, 호기심이나 기대도, 그 어떤 감정도 느끼지 못하는 무기력의 상태에 가깝습니다. 감정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슬픔을 느끼지 못하면 그 후 에 올 기쁨에도 무감각해지기 쉽습니다. 그러니 우리 올해에는 내 안 의 기쁨, 슬픔, 분노와 공포, 혐오를 사이좋게 잘 다스리며 살아요. 모든 감정이 필요한 때에 필요한 만큼만 당신의 마음에 일어나는, 감각적인 시간들만 가득하시길.


위 글은 빅이슈 2월호 22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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