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세계대전이 후반에 들어선 1917년, 장기화된 전쟁으로 군영엔 지치고 병든 흔적과 죽음의 그림자가 역력하다. 영국군 병사 블레이크(딘-찰스 채프먼)는 친구 스코필드(조지 맥케이)와 함께 에린 무어 사령관(콜린 퍼스)에게 다른 지역의 2대대까지 가라는 명령을 하달받는다. 함정에 빠진 대대에 제 시간까지 사격 중지 명령을 전하지 않으면 1600명의 아군이 위험한 상황. 스코필드와 블레이크는 독일군의 점령 지역을 뚫고 명령을 수행해야 한다. <1917>은 1차대전 전쟁의 한 복판에서 명령서를 품에 안고 다른 대대까지 가야 하는 병사의 동선을 따라가는 영화다. <덩케르크>와도 비교되지만 <1917>은 인물의 희생이나 고결한 휴머니티를 강조하는 스토리텔링보다는 세트와 미술, 촬영 기술의 성취가 돋보인다. 주인공과 함께 전장을 뛰어다니는 것 같은 몰입감을 만드는 것은 촬영 감독 로저 디킨스의 롱테이크 기법이다. 엔딩 크레딧에 ‘이야기를 전해준 알프레드 멘데스에게 감사하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알프레드 멘데스는 감독 샘 멘데스의 할아버지. 샘 멘데스가 할아버지에게 들은 전쟁 경험담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골든글로브 드라마 부문 작품상을 수상하며 이번 아카데미에서 <기생충>의 최대 라이벌로 거론됐으며 아카데미에서 촬영상, 시각효과상, 음향효과상 등 3개 부문 수상했다.
감독 샘 멘데스, 출연 조지 맥케이, 딘-찰스 채프먼, 콜린 퍼스, 베네딕트 컴버배치, 마크 스트롱 개봉 2월 19일 등급 15세 관람가
2차 세계대전 전후의 독일, 어린 조카에게 전시를 보여주던 이모는 예술적 재능을 지녔지만 복잡한 시대 속에서 조울증을 앓는다. 가족은 엘리자베스를 정신과에 데려가고, 의사는 나치의 순혈주의 정책에 따라 불임 수술을 시행한 후 그녀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 어느새 자란 쿠르트(톰 쉴링)는 뛰어난 재능으로 예술 대학에 입학하고, 그곳에서 이모와 같은 이름을 가진 패션학도 엘리자베스(폴라 비어)와 사랑에 빠진다. <작가 미상>은 <타인의 삶>의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 감독의 신작이다. <타인의 삶>이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전 어지럽던 동독의 비밀경찰이 예술에 젖어 드는 과정을 보여줬다면 <작자 미상>은 한 명의 예술가가 유년부터 성인이 되기까지 영향을 받은 모든 것을 총망라한다. 가족의 죽음, 전쟁통에 하늘에서 쏟아지던 포탄, 연인의 눈동자와 어지러운 독일의 정치까지. 쿠르트가 태어나 만난 모든 자연지물과 사람과 사회가 그의 예술 세계에 영향을 준다. 한 명의 예술가가 완성되기까지의 대서사시를 보여주기 때문에 세 시간이라는 매우 긴 러닝타임을 자랑한다. 쿠르트의 인생 역정 속에 독일의 사회사, 가족의 비극과 비밀까지 숨겨놨다. 뛰어난 회화 작품이 완성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 역시 관람 포인트.
감독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 출연 톰 쉴링, 폴라 비어, 세바스티안 코치 개봉일 2월 20일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말했듯이 옛날스타일의 시네마 형식이지. 이 영화적 여정에 당신도 함께 해줘. 이건 영화니까.” 마치 영화 현장의 뒷모습과 같은 <젠틀맨>의 첫 시퀀스는 고전 갱스터 무비처럼 시작한다. “우리의 주인공 등장”이라며 소개되는 이 영화의 주인공 믹키 피어슨(매튜 매커너히)의 이력 역시 화려하다. 잘생겼고, 매력적이며 영화 속 소개에 따르면 “인생 전성기인 죽여주는 미남”인 그는 미국 태생의 옥스포드 대학 장학생이다. 믹키는 빈민가 출신이지만 영국 명문대에 들어가 상류층 친구들에게 대마초를 판매하다가 자신의 천직을 발견한다. 다름 아닌 마약 판매상. 믹키는 험하고 더러운 짓도 마다치 않으며 돈과 명성을 얻게 되고 마약 사업을 미국의 억만장자에게 팔아넘기려 한다. 그런 믹키의 주변에 돈 냄새를 맡은 중국 마피아와 드라이 아이(헨리 골딩)가 나타나고 사립 탐정 플레처(휴 그랜트)까지 끼어들면서 사기극이 시작된다. <젠틀맨>은 감독 가이 리치의 전작 중 <스내치>와 닮은 꼴을 한 범죄 오락 액션 영화다. 잘 차려입은 사업가들이 서로를 견제하다가 갑자기 바지춤에서 총구를 꺼내 피가 낭자하기도 하지만 이 영화의 긴장감을 끌고 가는 것은 주인공들의 말싸움이다. 턱시도를 빼입고 후원 행사에 참석한 마약상들의 노골적인 대사들은 가이 리치 감독의 솜씨다. 복잡한 갱스터의 세계 역시 내레이션을 통해 관객에게 친절히 배달된다. 보여주기식 액션보다는 대사의 말맛으로 재미를 살린 영화다. 살을 찌우고 콧수염을 붙인 휴 그랜트와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콜린 파렐, <크레이지 리치 아시아>의 미남의 얼굴을 벗어던진 헨리 골딩의 연기 변신이 볼만하다.
감독 가이 리치 출연 매튜 맥커너히, 휴 그랜트, 콜린 파렐, 찰리 허냄, 헨리 골딩 개봉 2월 19일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위 글은 빅이슈 2월호 221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