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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이슈코리아 Mar 16. 2020

[에디토리얼] 곁에


편집장 김송희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를 보고 있으면 한참이 지나도 “도대체 어디가 복이 많다는 거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됩니다. 나이 마흔에 갑자기 직장을 잃고, 형편에 쫓겨 산동네로 이사간 데다, 그제야 “너무 일만 하고 살아서 해놓은 게 하나도 없다”는 걸 깨닫게 되는 중년 여성 찬실이의 어디가 복이 많다는 건지. 객관적으로는 가진 게 너무 없는 찬실이의 ‘복’이 장면마다 숨겨져 있다는 것을 뒤늦게야 발견하게 되는데요. 찬실이의 복은 바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찬실이의 이삿짐을 나눠 들어주는 동료들, 식사 거르면 못 쓴다며 끼니마다 같이 밥 먹자고 부르는 주인 할머니, 돈이 없는 찬실이를 가정부로 채용해주는 친구 등등. 찬실이의 ‘복’은 그녀가 그동안 살면서 만나온 사람들이었던 셈이죠. 코로나19가 모든 이슈를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이고 있는 때지만,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었습니다. 과거의 여성들이 여성의 노동 여건 개선과 참정권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인 것을 기념한 날입니다. 이번 호 특집에서는 한국 곳곳에서 세상을 바꾸기 위해 싸우는 여성들을 만났습니다. 처음엔 이들이 비범하고 뛰어난 사람들이라고 생각해 인터뷰를 청했습니다. 불이익을 감수하고도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은 귀하니까요. 하지만 우리가 만난 네 명의 여성들은 모두 입을 모아 “나는 평범한 사람이지만 함께라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비범한 사람만이 큰일을 할 수 있다고, 나는 그냥 속 편하게 남의 일로 미루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뉘우쳤습니다. 누군가 내 곁에 있어 주기 바라면서 나는 누군가의 곁이 되어준 적이 있었을까요. 돌이켜 보는 나날입니다. 그런 의미로 준비한 기사들입니다. 누군가의 엄마로만 봤던 배우를 주인공이자 표지로, 우리 역시 당신을 지지한다는 의미로 투쟁하고 있는 여성들을 만났습니다. 오늘도 일터에서, 가정에서, 살아가는 것이 곧 투쟁이 된 우리를 응원합니다. 


아,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가 <찬실이는 복도 많지>에는 이런 장면이 있습니다. 밤길을 걸어가는 동료들의 뒤에서 손전등을 비추며 밝혀주던 찬실이가 문득 이렇게 기도합니다.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자리에 모두가 가 있기를…


위 글은 빅이슈 3월호 22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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