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진혁
사는 게 너무 답답했던 몇 해 전 겨울에 별자리점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인생 처음으로 돈 내고 점을 쳐본 경험이었죠. 왜 하필 별자리점이었냐면, 우선 ‘용하다’고 소문난 점성술사가 마침 멀지 않은 곳에 있었고, 별자리점의 토대가 되는 황도십이궁이 기원전 3천 년쯤 만들어졌다니 인류가 5천 년 동안이나 이 짓을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을 거라는 확증편향도 생겼습니다.
하늘이시여, 왜 저에게
“좋은 일을 많이 하는데 남들이 알아주지 않겠네요. 앞으로도 평생 큰 성공은 거두지 못할 거예요.” 점성술사의 말은 의외로 단호했습니다. 그리고 이 말의 어디에서 어떻게 위로를 받을지 한참을 고민해야 했죠. 넋이 나간 듯이긴 이야기를 들은 후에 점성술사가 말했습니다. “책이나 잡지 같은 걸 만드는 게 제일 잘 맞겠네요.” ‘지금 하는 일이잖아!’ 하고 소리를 지를 뻔했지만 그러지는 않았습니다.
그다음 해에는 어느 시상식에서 만난 시인이 별자리점을 봐주었습니다. 그는 저에게 “교황님의 운명”을 타고 났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게 좋다는 것인지 나쁘다는 것인지 재차 의미를 물었습니다. 시인은 저에게 고귀한 자질을 타고났다며 엄지를 올려주었는데, 저는 제가 태어나던 순간의 하늘이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래서 내가 이 따위로 살고 있는 거였군?’ (중략)
자전거를 타고 월드컵대교까지
오랜만에 해질 무렵 한강에 가서 월드컵대교 공사 현장을 오랫동안 보고 왔습니다. 건물 하나가 몇 달 만에 지어지는 세상에서 더디게 지어지는 건축물을 보는 것은 묘한 위로가 됩니다. 자전거를 타고 도착했을 때 공사는 여전히 멈춰 있었고, 올해가 3분의 1이나 지나버린 걸 저 다리는 알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럴 방법은 없지만 만약 다리와 대화가 통한다면 무표정하고 심드렁하게 ‘올해 안에 완성된다고 알고 있겠지만, 내년까지 미뤄질 수도 있겠어.’ 하고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래도 괜찮다는 마음을 담아서요.
이 이야기에는 소소한 반전이 있는데, 최근에 들은 세 번째 별자리점 때문입니다. 회사에서 ‘용하기로’ 소문난 선배가 “27년마다 오는 큰 운이 올해 9월 무렵에 오겠다.”고 했거든요. 어떡하죠, 믿어야 할까요? 중요한 것은, 올해 9월에 어떤 모습이든 ‘내 청춘 마지막 행운이 가버렸다.’고 생각하지 않는 일이겠지만요.
이진혁
출판편집자. 밴드 ‘선운사주지승’에서 활동 중.
위 글은 빅이슈 5월호 22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