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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이슈코리아 May 26. 2020

[칼럼] 향원의 시대


글. 성현석     


출처: pixabay


마을 사람 모두가 좋게 평가하는 사람이 있다. 그는 좋은 사람일까? 공자와 맹자가 모두 펄쩍 뛰었다. 결코 그렇지 않다. 모든 사람에게 칭찬을 듣는다면. 나쁜 사람에게도 좋은 소리를 듣는다는 뜻이다. 의로운 원칙을 지키고 산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그는 원칙을 깨고, 덕을 해치는 자다. 공자와 맹자는 이런 부류를 가리켜 ‘향원(鄕原)’이라고 했다.


향원은 공자와 맹자가 모두 경멸한 부류였으므로, 유교 문화권에선 나쁜 뜻으로 쓰였다. <조선왕조실록>에도 좋은 인맥을 두루 쌓아서 성공했으나, 원칙에는 충실하지 않았다는 뜻을 함축한다.


‘사람 좋은’ 향원들과 사이비 선비

조선은 망했고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쳤지만, 조선 문화는 여전히 작동한다. 말과 글, 지식을 다루는 사람을 유독 존중하는 문화 역시 그 흔적이다. 시험 당락에 지나친 권위를 두는 문화 역시 조선 시대와 닮았다. 고시 출신 관료의 정치 참여를 과거에 급제한 선비의 출사에 빗대는 이들도 많다.


적어도 조선 선비들은 향원의 행태가 한심한 짓인 줄은 잘 알았다. 다수가 옳지 않은 입장을 지지한다면, 다수와 척을 지는 게 옳다고 믿었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식으로 두루뭉수리 하게 넘어가는 짓은 아주 나쁘다고 봤다. 지식, 즉 앎이란 개인과 세상을 바꾸는 길이므로, 조심스럽게 대해야 한다고 여겼다. 이치에 대해 제대로 알려 하지 않으면서, 어느 자리에서 어떤 주제가 나오건 한두 마디씩 거드는 부류 역시 ‘향원’이라며 비판했다. 이들은 지식을 그저 인맥 쌓는 도구로 쓸 뿐이다.


현대판 향원들

출처: pixabay


현대 한국에서도 이런 경우를 자주 본다.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젊은 비서를 성추행했다. 1973년에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부산시의 핵심 보직을 모두 거쳤다. 이후 해양수산부 장관과 대학총장까지 거쳤다, 민주당 후보에겐 어려웠던 부산시장 선거에 네 번 도전한 끝에 결국 당선됐다. 관료 출신 정치인으로서는 최고의 이력이다. 당연히 부산, 그리고 전국 곳곳에 형님과 아우들이 있다. 그 인맥 안에서 그는 늘 좋은 사람이었다. (중략)


하지만 그 인맥의 범위를 벗어나는 순간, 그는 성범죄자가 됐다. 전형적인 향원의 행태다. 그렇다면, 오 전 시장만 향원인가. 그렇지 않다. 오 전 시장이 속한 세계 안에서 누군가가 그와 척지는 것을 감수하며 그를 강하게 비판했더라면, 성추행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세계 안에선 오 전 시장에게 욕먹기를 감수하면서 그의 행태를 지적했던 이가 없었던 모양이다. 그들 역시 향원이다. 어쩌면 그들 역시 성추행의 공범이다.           


성현석  

언론인. 17년 남짓 기사를 썼습니다. 앞으로는 다른 글을 써보려 합니다.


위 글은 빅이슈 5월호 22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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