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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이슈코리아 Jul 14. 2020

[성현석 칼럼] 방역의 수학


글. 성현석     


전쟁은 수학이다. 고대 병법서 <손자병법>은 병력 숫자를 기초로 전투 방식을 정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뒤집어 설명하면, 우리 편 숫자가 적의 다섯 배에 못 미치면 함부로 공격하지 말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적을 알고 나를 아는(知彼知己) 태도가 몹시 중요하다.  

    

백한 번째 싸움에서 다 잃어버리면 소용없는 백전백승 기록

<손자병법>에 담긴 숫자의 논리는 워낙 서늘하고 치밀해서, 읽다 보면 전쟁에 대한 관심이 저절로 식는다. (중략) 전쟁은 이처럼 숫자싸움이므로, 전쟁 결정을 자주 했던 권력자는 숫자 다루기에 자신감이 붙는다. 6세기경, 인도를 다스렸던 ‘시네그람’이라는 왕도 그랬다. 전쟁 벌이기를 너무 좋아했다. 전략과 전술 계산에 워낙 능했으므로 싸울 때마다 이겼다. 하지만 백성들은 끔찍해했다.      


<손자병법>에는 “백전백승, 비선지선자(百戰百勝, 非善之善者)”라는 표현이 나온다. 백전백승, 즉 싸울 때마다 이기는 게 좋은 일은 아니라는 뜻이다. <손자병법>이 이상적인 목표로 삼은 것은 ‘백전백승’이 아니다. ‘백전불태(百戰不殆)’를 목표로 삼았다. 백 번 싸워서 백 번 이겼는데, 백한 번째 싸움에서 모든 것을 잃게 된다면 ‘백전백승’ 기록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체스 판 위에 밀알 쌓기

(중략) 어떤 숫자에 대해선 감각을 죽이고 지내는 이들이 흔하다. 전쟁을 벌이면, 적만 아니라 우리 백성도 죽는다. 그들에겐 가족과 친구, 동료가 있다. 한 명이 죽으면 열 명이 통곡하고, 백 명이 슬퍼한다. 이런 계산을 하면, 전쟁을 결심할 수도, 승리를 즐길 수도 없다. 그러니까 총명한 왕이 숫자 감각을 죽이고 산다. 어디 옛날 왕만 그럴까. 요즘 대기업 경영진 역시 별로 다르지 않다. 회사의 매출이 크게 늘어도, 직원 가운데 누군가는 일하다 죽고 다친다. 그 숫자에 대한 감각은 끄고 산다. 그러니까 어떤 숫자에 대한 판단은 아둔해질 수 있다.     


처음에는 완만하다 곧 급경사가 되는 감염 인구 

‘기초재생산지수(R0)’라는 개념이 있다. 전염병에 처음 감염된 사람이 몇 명에게 새로 감염시키는지를 뜻한다. 만약 이 값이 2라면, 앞서 설명한 ‘체스 판 위에 밀알 쌓기’ 모델을 따르게 된다. 처음에 한 명이 감염됐다. 그가 곧 두 명을 새로 감염시켰다. 따라서 1 더하기 2다. (중략)


이런 상황을 놓고, 행정부 안에서 논란이 있었다고 한다. 방역 당국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대폭 강화하자고 한다. 반면 경제 부처와 행정부 고위층은 그보다는 낮은 수준을 유지하자고 한다.


지나간 승리보다 미래의 안전이 더 중요하다

바이러스와의 전쟁 역시 수학이다. 싸울 때마다 이겼던 인도의 왕처럼 아주 총명한 이들도 때론 간단한 계산에서 틀릴 수 있다. <손자병법>은 ‘백전백승’을 경계했다. 중요한 것은 승리 그 자체가 아니라 안전이라고 했다. <손자병법>은 ‘백전불태’를 목표로 삼았다. 바이러스와의 싸움 역시 마찬가지일 테다. (중략)  승리를 과시하기보다, 안전을 맨 앞에 두는 태도가 옳다고 믿는다.      


성현석  언론인. 17년 남짓 기사를 썼습니다. 앞으로는 다른 글을 써보려 합니다.


위 글은 빅이슈 7월호 23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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