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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이슈코리아 Jul 20. 2020

[돈 워리] 불행한 사람이 물건을 사들인다


글. 김송희 

일러스트. 조예람     


특히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 물건을 많이 산다.” 정리정돈 전문가 인터뷰 중 이 부분을 읽고 나는 정형외과에 실려 갈 뻔했다. 뼈를 심하게 맞아서… 사실 처음엔 발끈했다. 아니, 당신이 맥시멀리스트에 대해 뭘 안다고, 행복 운운이야? 세상엔 물건을 사는 게 행복한 사람도 있다고!! 언제부턴가 미니멀리스트가 좋은 삶의 방식으로 지향되고, 물건을 쌓아놓고 사는 맥시멀리스트들은 ‘자기 욕망을 제어하지 못하는 불행한 사람’이라며 비난의 도마에 오르곤 했다. 나는 이에 대해 항변하면서 ‘내돈내산(내 돈 가지고 내가 산다는데 뭐가 문제냐)’이며 “나는 맥시멀리스트라 행복하다!”를 외치는 글을 매체에 기고한 적도 있다. 그 글을 본 또 다른 매체에서 청탁이 오기도 했는데, 청탁 메일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미니멀리스트에 대해 글 쓰는 분은 많아도 맥시멀리스트를 옹호하는 글은 처음 봐서 청탁을 드리게 됐습니다.” 그렇다. 정리정돈법을 알려주며, 최소한의 물건으로 간결한 삶을 사는 방식에 대해 알려주는 사람은 이미 많다. 


당장 서점에서 미니멀라이프를 검색하면 50여 권의 관련 서적을 만날 수 있으며 온라인 서점에는 ‘정리, 심플라이프’를 따로 분류해놨다. 해당 카테고리에는 특히 일본 서적이 많은데, ‘살림의 기술’을 알려주는 미니멀라이프 책은 일본에서 10년 전부터 유행했다. 그 선두 주자에는 다들 아는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의 곤도 마리에가 있는데, 설레지 않으면 버리라더니 ‘곤도 마리에가 셀렉트한 물품’을 파는 온라인 숍을 오픈해 전 지구적인 비난을 받았다. 미니멀라이프 책 중엔 이런 것도 있었다. <10대에 미니멀리스트가 되고 싶은 나, 어떻게 할까?>, 아니 10대에 왜 미니멀리스트가 되어야 합니까. 10대면 갖고 싶은 게 얼마나 많은데, 귀여운 스티커와 색색의 볼펜을 필통이 미어터지게 가질 수 있는 건 10대의 특권이라고요! 



(중략) 나는 물건을 살 때 별 고민을 하지 않는다. 욕망을 참아야 한다는 제어버튼이 내게는 없다. 무언가 갖고 싶을 때 참는 법을 모른다. 얼마 전 “생일도 못 챙겨줘서 미안한데 필요한 거 사준다.”는 선배에게 “갖고 싶은 건 제가 다 사서 필요한 게 없어요.”라고 말했던 멋진 사람이 바로 나다. 여기까지 읽은 독자 중엔 ‘와, 저 사람은 집에 돈이 엄청 많거나 월급이 많나 보다.’라고 감탄할 사람도 있을 것 같은데, 재산이 없어도 가능하다. 저축을 안 하면 된다. 내일 따윈 오지 않을 사람처럼 오늘의 욕망에 충실하면 된다. 이달에 쓴 돈을 대신 갚아줄 다음 달의 내가 있는데 무슨 걱정이람. 무엇보다 내가 갖고 싶은 것들이 비싸도 10만 원을 넘지 않는 자잘한 물건들인 덕분이다. 나는 당장 택배 하나 없어져도 아쉬울 거 없는 잔챙이들만 소비한다. 


이렇듯 물건을 많이 사들이는 내가 새삼 ‘불행한 사람이 물건을 많이 산다.’라는 말을 보고 왜 타격을 입었느냐 하면, 요즘 나의 소비가 과소비를 넘어서 ‘괴소비’가 되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환불하기 귀찮아서 사이즈도 안 맞는데 살 빼서 입겠다고 방치한 옷이 수십 벌이고 마켓컬리는 가입 한 달 만에 라벤더 회원에 등극했다(한 달에 60만 원을 썼다는 소리). 이미 냉장고에 우유와 오렌지가 있는데도, 세일을 하고 있으면 마음이 급해 서둘러 장바구니에 넣는다. 급하게 결제하다 개수 확인을 안 해서 8개들이 오렌지가 집에 3개나 배송된 적도 있다. 돈을 쓰면서 금액 체크도 안 한 것이다. 이 정도로 막 사들이는 거면 분명 어디 고장 난 게 아닐까 싶을 때쯤, 과소비는 다른 방식의 자해라는 트윗을 봤다. 나는 지금 불행해서 자해를 하고 있는 것일까. 미래의 내가 써야 할 안정적인 재화를 현재에 탕진하고 있는 것일까. 


매일 새벽 2시마다 샛별배송이 도착했다는 배송 기사님의 카톡을 받으며 나는 진심 궁금해졌다. 포화 상태의 냉장고에 감자튀김과 오징어튀김을 저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급랭한 남북관계로 인하여 갑자기 전쟁이 터질까 봐 3개월치 식량을 비축하고 있는 것인가. 그래, 그렇다고 해두자. 아마도 마켓컬리 배송 기사님은 이 집에 장성한 아들이 셋쯤 있을 거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매콤 오징어튀김과 짜장맛 떡볶이와 직화막창과 갈비만두는 다 먹지도 못하고 지금 냉장고에서 사망신고를 목전에 두고 있다. 수박을 소분해 넣었더니 문이 안 닫혀서 냉장고 문을 테이프로 동여매며 나는 나의 마음이 꼭 내 집 냉장고 같다는 생각을 했다. 네덜란드 마요네즈와 일본 명란마요가 동시에 들어 있는데 그걸 가지고 뭘 하면 좋을지 모르겠고 뒤죽박죽 섞여서 정리가 안 되는 상태.


물건을 사들이는 것은 심리적인 요인이며, 불행의 근원을 처방해야 한다… 류의 조언을 많이 들었지만 물건을 사는 게 좋아서 참을 수가 없다. 특히 불면증이 심한 밤에는 누워서 스마트폰으로 온갖 쇼핑몰에 돌아다니다 비슷한 옷을 몇 벌이고 사들인다. 나는 사는(buy) 것밖에 사는(live) 낙이 없는 불행한 사람일까. 택배 박스에 둘러싸여 ‘불행한 사람이 물건을 많이 사더라.’는 정리 전문가의 말을 떠올린다. 일시적일지라도 8천 원짜리 레몬색 파우치로 잊을 수 있는 불행이라면, 괜찮은 거 아닌가? 정말 불행하다면 가고 싶은 것도 없고, 또 그걸 가질 수도 없을 거라고 나는 애써 위로해본다.      


조예람 사소한 주변을 담은 ‘Around Ginger’의 일러스트레이터. 인스타그램 @around_ginger


위 글은 빅이슈 7월호 23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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