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빅이슈코리아 Sep 09. 2020

[곁에,세이] 내 마음이 가는 그곳에


글. 정규환

사진. 김찬영



우리 가족은 오래전 서울에서 좀처럼 보기 어려운 1970년대에 지은 구옥에서 살았다. 회색 시멘트를 바른 마당에선 저 멀리 황금빛으로 빛나는 63빌딩이 보였다. 과자 ‘썬칩’ 같다고 생각했던 슬레이트 지붕 밑으로 떨어지는 빗방울을 누나들과 마루에 앉아서 한참을 바라보던 시간. 나는 최근 본 영화 <남매의 여름밤>의 몇몇 장면이 떠오르는 이런 윤색된 유년 시절을 간직하고 있다. 현대적인 집에 살지 않으면서도 63빌딩 뷔페에서 돌잔치를 하고, H.O.T.가 ‘캔디’로 음악 순위 프로그램에서 1위에 오르는 모습을 보려고 아날로그 텔레비전 앞에서 목을 빼고 기다리다 외식을 하러 가던 그때. 돌이켜보면 부모님이 남쪽의 고향을 떠나 상경해 3남매를 낳고 서울살이에 적응하던 그때가 겨우 지금 내 나이 정도였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묘한 기분이 든다. (중략)


집은 기억의 거처

내 고향 영등포를 대중교통을 타고 언제든 갈 수 있다는 건 행운이자 불행이다. 누군가는 내게 물었다. 왜 계속 부모님과 함께 살지 않고 같은 서울에 살 거면서 굳이 독립을 했느냐고. 나는 내가 살던 동네가 오래돼 방치되고 허름해져가는 모습을 보기가 싫었다. 재개발지역이라 곧 아파트 단지로 바뀐다는 사실은 누군가에겐 큰돈과 희망을 선사하겠지만, 정작 그 동네에 오래 살던 사람들에게는 무기력을 안긴다. ‘모두 다 사라지리라. 어차피 순간은 영원이니까.’ 사람들이 하나둘 빠져나간 골목 벽에 누군가 그라피티로 새긴 이 문장과 이미지는 오래도록 내게 선명하게 남아 있다. (중략)


내 기억엔 여전히 그 골목에서 뛰놀던 모습이 선명한데, 거기에 이젠 우두커니 서 있는 낯선 아파트들과 다 커버린 초라한 내 모습만 보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사는 집에선 앞으로 좋은 기억들을 간직할 수 있다고 기대할 수 있을까. 도시의 시간은 지금도 빨리 지나가고 있고, 변화의 속도를 감당하기에 우리의 삶은 생각보다 천천히 흐른다. 의식하지 못했지만 어느새 낡아버린 가전제품들. 냉동실에 들어 있는 엄마의 음식들처럼. ‘집은 기억의 거처’라는 낭만적인 생각은 이 욕망의 도시에서 점차 희미해져만 간다. 사람들 모두에게 바란다. 집이 시시각각 변하는 가치가 아니라 정체성을 품은 곳이기를. (중략)

 

보통의 사람과 일

얼마 전 애인과 만난 지 6주년이 됐다. 우리의 사랑이 결코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사랑의 가치를 시간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단지 사랑을 보고, 배우고, 하는 데까지 일반적인 사람들보다 오래 걸렸다는 것 빼고는. 텔레비전만 틀면 나오는 연예인들의 사랑 이야기를 보면서 편하게 공감할 수 없는 것은 늘 안타깝다. 어떤 형태의 사랑을 하고 어떤 형태의 삶을 살건 당연하다고 누군가 계속 알려주는 세상에 살면 얼마나 좋을까(누군가에겐 그것이 스트레스가 될 테지만).


세상의 편견과 남들의 시선이란 외풍 속에서 6년 이란 시간이 보내고 나니 조금은 알 것 같다. 우리가 사랑하는 모습은 너무나 평범하다는 것을. 애틋한 로맨스의 시간을 지나서 아름답게 피어나는 것들, 슬프게 죽어가는 것들을 바라보며 내 삶을 둘러싼 것들을 더 사랑해야겠다고 다짐한다. 보통의 사람과 일, 계절처럼 내 주위를 맴도는 모든 이야기들을 말이다. 우리가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있든 서로를 잊지 않을 만큼 미지근한 관심을 주고받기를 바라면서. 우리 모두 사랑을 찾아가고 있다는 말을 되새긴다.


정규환

프리랜스 에디터. 20대의 절반 동안 영화사, 영화제 등에서 각종 아르바이트를 섭렵했다. 매거진 <GQ>, <뒤로>, ‘앨리바바와 30인의 친구친구’ 등에 성소수자 관련 에세이를 기고했다. 인권 운동을 하다가 만난 게이 파트너와 5년째 동거 중이다.


위 글은 빅이슈 9월호 23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가만히 많이] 그래도 잘해보겠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