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인간이 배출한 온실가스로 인해 지구가 점점 뜨거워지고 있고, 이대로 계속 가다가는 지구는 돌이킬 수 없는 파국에 빠지게 된다는 무시무시한 말 말이에요.
자세한 내용은 잘 모르셔도, 날씨가 예전 같지 않다는 건 모두 느끼실 텐데요. 제가 기후위기를 처음 알게 된 건 2019년, 그레타 툰베리가 등장했던 바로 그때였어요. 물론 ‘지구온난화’로 지구가 뜨거워지고 있다는 건 중학교 과학 시간부터 익히 들어 알고 있었죠. 하지만 이렇게나 빠른 속도로 멸종이 다가오고 있다는 건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어요. 저명한 기후과학자 조천호 박사님의 강의를 듣고 ‘나 어떡하지?’ 머리가 멍해졌던 순간이 아직도 기억나요.
기후위기라는 현상이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것, 우리가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시간이 10년 남짓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저에게는 마치 시한부 선고 같았어요. 어차피 세상은 끝장날 텐데, 미래를 위해 노력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일단 살아야 하니까 취업도 해야 하고 돈 모아서 집도 구해야 할 텐데. 집을 구하면 뭐해, 식량 위기가 오든, 전쟁이 나든 해서 세상은 끝날 텐데. 모든 생각의 귀결의 ‘끝났어’로 귀결되던 때였지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우울감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하루하루가 벅차게 느껴지던 와중에, 평소와는 조금 다른 워크숍에 참여하게 되었어요.
영국의 직접행동 그룹인 ‘멸종저항’의 운동을 경험하고 돌아온 한 선생님의 강의였는데요. 그 선생님은 훨씬 더 충격적인 숫자들을 보여주셨어요. 세계의 과학자들이 합의한 기후과학의 결과보다 훨씬 더 급진적인 개별 과학자들의 주장들, 예컨대 인류가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1.5도 아래로 유지할 확률은 1%도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에요. 그것이 영국에서 시작된 멸종저항 운동의 기본 전제였어요. 선생님은 이렇게 충격적인 말에 덧붙여 말씀하셨죠.
이러한 말을 듣고 놀라고, 슬퍼하는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에요. 저도 기후위기를 알고 나서 오랜 기간 우울함에 시달렸어요. 울고 싶으면 우셔도 돼요.
울고 싶으면 울어도 된다니. 이런 걸로 울어도 되는구나. 제 자신을 인정받는 느낌이었어요. 예전부터 울고 싶은 기분을 억누르며 살고 있었거든요. 다들 멀쩡하게 잘 살고 있는데 아직 다가오지도 않은 기후위기 때문에 운다고 하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해서요. 하지만 그 말을 듣고 나서부터, 제 안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존중할 수 있게 되었어요. 기후위기 때문에, 세상의 생명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슬퍼하는 것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구나, 제가 느끼는 감정 그대로 이것이 매우 중요한 문제라는 걸 인정하게 되었죠. 워크숍 끝에 소감을 나누며 생판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눈물을 터뜨리고 받았던 공감과 위로는 제가 지금까지 기후위기를 외면하지 않고 계속 활동하는 원동력이 되었어요.
2년 전과 달리 이제는 기후위기가 비교적 대중적인 단어가 되었어요. 기후우울증이라는 신조어도 생겨났고, 외국에서는 ‘생태 슬픔(Ecological grief)’에 대한 심리학적 연구가 이루어질 만큼 기후위기로 사람들이 느끼는 상실감과 죄책감, 슬픔은 자연스러운 감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어요.
이러한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고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마음을 치유하는 워크숍도 있는데요. 바로 생태철학자이자 환경운동가인 조안나 메이시가 50년 전 만든 ‘재연결작업’이에요. 현재의 생태위기를 일으킨 원인을 자연과 인간을 단절하여 생각해온 ‘분리의 세계관’으로 보고, 끊어진 나 자신과 지구 생명망과의 관계를 다시 연결하는 작업이에요.
기후위기를 접하고 나면 스스로가 너무 작아 보이잖아요. 화석연료를 태우며 현재의 지속 불가능한 세계를 유지하는 견고한 시스템을 보면 ‘내가 노력해도 뭐가 바뀌겠어?’ 하는 비관적인 결론에 이르게 되죠. 주어진 문제에 비해 나의 능력은 턱없이 부족해 보여요.
하지만 재연결작업에서는 나와 세상을 바라보는 다른 관점을 제시해요. 우리가 세상을 향해 고통을 느끼는 것은 우리가 지구 생명과 연결되어 있다는 증거예요. 기후위기를 직면하며 느끼는 슬픔은 우리가 생명으로서 느끼는 위기의식이죠. 또한 우리는 단지 작고 외로운 개인이 아니라 지구 생명의 그물망 속에서 연결된 전체의 부분이에요.
137억 년의 우주, 46억 년의 지구가 나라는 사람을 만들기까지 거쳐온 장대한 과정을 떠올려보면, 나라는 사람이 훨씬 큰 존재임을 깨닫게 되죠. 이렇게 세상에 대한 고통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나와 세상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될 때, 우리는 고통이라는 부정적인 에너지를 행동을 위한 긍정적인 에너지로 바꾸어낼 수 있어요. 이처럼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행동할 수 있는 힘을 만들어내는 것이 재연결작업의 목표예요.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볼까요. 이미 다 끝난 것은 아닐까? 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여전히 저 자신에게 묻고 있는 질문인데요. 재연결작업을 접하고 난 후, 지금의 제가 내놓을 수 있는 최선의 답변은 이것이에요. 아무리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더라도, 우리는 우리가 살고 싶은 세상을 선택할 수 있어요. 우리는 생명이 지속되는 세상을 선택할 수 있고, 그러한 전환을 위해 행동할 수 있어요. 우리의 공동체를 재건하기에 늦은 시간은 존재하지 않으니 자신의 마음을 돌보고, 서로를 돌보고, 지구를 돌보면서 위기의 시대를 함께 살아가자고 말하고 싶어요.
글. 이다예
녹색연합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