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빅이슈코리아 Oct 27. 2021

뿌리까지 스미는 사랑

<크레이지 가드너> 마일로 작가

마일로 작가에게는 식구가 아주 많다. 웹툰 작가인 언니 박지연 작가, 반려견 솜이, 그리고 200여 개의 반려식물과 함께 산다. 뭐 하나에 빠지면 끝까지 파고드는 스타일인 마일로 작가가 요즘 흠뻑 빠진 대상은 식물이다. 전작 '여탕보고서'와 '극한견주'를 통해 여탕과 대형견에 대한 환상을 부쉈던 작가는 신작 '크레이지 가드너'로 고상하고 우아해 보이는 가드닝 라이프의 실체를 낱낱이 파헤친다.



웹툰 <크레이지 가드너> 표지


이 만화가 실로 놀라운 것은 ‘가드닝이 저렇게 어려운 거였어?’라는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나도 한번 키워보고 싶다.’로 마음이 움직이는 데 있다. 현실을 경유하는 순간 판타지는 깨지기 마련이란 걸 배우면서도 독자는 괴팍한 현실에 담뿍 애정을 쏟는 작가의 진심에 매료된다. 그것이 마일로표 만화의 매력이다. 현관까지 손님을 마중 나오는 붙임성 좋은 개와 다종다양한 식물 식구들이 사는 집에서 마일로 작가를 만났다.





Q. 목욕탕 여탕과 반려견 솜이를 주제로 웹툰을 연재했고, 조선 시대가 배경인 BL물도 하셨죠. 이번엔 가드닝으로 돌아오셨네요.


전에 '극한견주'를 출간했던 출판사랑 계약을 미리 했어요. 차기작 뭐할 거냐고 해서 가드닝 소재로 하고 싶다고 했는데 막상 시작하니까 재밌게 그리기가 너무 어려운 거예요. 계약을 무를 수도 없고(웃음). 사람들이 관심 없는 소재라 재미가 없을까 봐 걱정이 많았어요.


Q. '크레이지 가드너'라는 제목은 어떻게 지으신 거예요?


트위터에 ‘크레이지 가드너’라는 식물 계정이 따로 있거든요. 한창 식물 덕질을 열심히 할 때 만들었어요. 5~6년 전에 독립하면서 처음으로 식물에 관심을 갖게 됐는데, 그때는 상식적으로 식물을 사고 잘 못 키워서 죽이다가 어느 순간부터 미친 듯이 식물을 사들이면서 본격 덕질을 하게 됐어요.





Q. 집에 가지고 있는 화분은 몇 개 정도예요?


마지막으로 세어본 게 200개였어요. 지금은 집이 넓어져서 그렇게 많아 보이지 않는데 전에 살던 집은 지금 보다 작으니까 ‘테트리스’를 했어요. 사실 '눈치 없는 돌쇠'를 하기 전 휴식기에 엄청 많이 키웠어요. 하루 종일 가드닝만 하고 놀았죠. 그러다 일을 시작하니까 너무 바빠서 진짜 안 사겠다고 결심했어요. 실제로 안 샀고 열심히 일만 하고 있어요. 하지만 가드닝 만화를 연재하니까 식물을 더 사도 되지 않을까 싶어요.(웃음)


Q. 그중에 가장 아끼는 식물이 있을까요?


베고니아요. 몇 개 더 들이려고요. 베고니아의 매력은 일단 특이하게 생겼다는 거예요. 무늬는 요란스럽고 잎 뒷장은 빨갛고 잎 표면에 오돌토돌 돌기도 있고 미세한 펄감? 금속광택 같은 게 있단 말이에요. 화분마다 느낌이 천차만별인데 또 자기들끼리 공통점이 있어요. 잎 모양은 똑같은데 무늬만 다르거든요. 베고니아끼리 모아놓으면 정말 예뻐요. 근데 ‘식덕’만 그렇게 생각하는 거 같아요. 저희 언니는 엄청 못생겼다고 하거든요. 전형적으로 파릇파릇한 식물 모양이 아니잖아요. 식덕이 아닌 입장에서는 저걸 왜 키우나 싶을 거예요.


Q. 베고니아는 기르기 수월한 편인가요?


저는 종별로 키우는 방법을 하나하나 익혀가는 편이에요. 처음엔 열대관엽 위주로 키우다가 다육이로 넘어갔는데 흙, 물주는 법, 일조량이 다 달라요. 그러다가 다육이 시기가 끝나고 베고니아가 찾아왔죠. 그런데 중고거래 한 베고니아 두 개가 다 죽은 거예요. 흙은 건조하고 잎은 촉촉하게 키워야 한다는데 잎에 물을 뿌리면 안 되거든요. 잎을 어떻게 촉촉하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웃음) 많이들 비닐온실에서 키우는데 저는 귀찮아서 다육이 전용 흙에 심고 물을 많이 주는 방법을 터득했어요. 다육이 전용 흙은 물이 금방 빠지고 말라서 잎만 촉촉해지거든요. 노하우를 터득하는 과정에서 매번 식은땀 흘리면서 ‘이번엔 죽지 말아줘!’ 하죠.





Q. 초보 식물 집사에게 추천하고 싶은 식물이 있을까요?


몬스테라랑 스킨답서스요. 식물마다 원하는 물, 빛, 비료의 양이 정해져 있는 편인데 몬스테라와 스킨답서스는 어떤 환경에서도 잘 자라는 편이에요. 특히 초보자들은 식물에 비료를 과다하게 주는 경향이 있는데 이 친구들은 비료를 굉장히 좋아해서 문제없어요.


Q. 만화 끝부분에 Q&A 코너가 있어요. 가드닝에 대한 지식은 어디서부터 얻으세요?


검색을 많이 해보는데 인터넷에는 아무래도 주관적인 의견이 많아요. 국립수목원에서 내는 책이나 유명한 식물 ‘금손’들이 내는 책도 많이 참고해요. Q&A를 시작하고 정말 충격을 많이 받았어요. ‘왜 죽었을까요?’ 물어보시는데 왜 죽었는지 모르겠는 거예요.(웃음) ‘이러이러한 이유일려나요?’나 ‘그럴지도 모르겠네요’라고 두루뭉술하게 답하게 될 때가 많아요.





Q. 만화에 보면 박지연 작가님이 “이번에도 사람들이 가진 환상을 부수는 만화를 그린다.”고 하는 장면이 나와요. 왜 자꾸 환상을 부수게 되는 건가요?


현실적인 부분을 그리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아요. 솜이가 어릴 때는 에너지가 지나치게 넘치기도 했고 제가 개를 키우는 요령이 없어서 더 헤맸어요. 당시의 번뇌를 <극한견주>에 솔직하게 그려봤는데 본의 아니게 사람들의 환상을 부수는 결과가 나왔네요.


Q. 반려동물과 식물이 같이 있으면 불상사가 생길까 걱정되는데 솜이는 식물에 관심이 없나요?


어릴 때는 심했는데 이제는 안 그래요. 솜이가 새끼 때는 마당에 꽃을 심어놓고 하루밖에 안 지났는데 그걸 꼭 뽑는 거예요. 뿌리도 안 내렸는데 진짜 얄밉게 꽃머리를 물고 북북 뽑아서 ‘진짜 쟤는 왜 저러지?’ 싶었어요. 마당에 심은 동백나무를 물어뜯어서 없애버리기도 했어요.





Q. 식물과 함께하는 삶은 작가님한테 어떤 영향을 주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바빠지니까 오히려 힘들었어요. 그런데 키우면서 생각해보니까 자기 자신을 깊게 파고드는 사람에게는 정서적으로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저는 원래 정서적으로 불안하거나 스스로에 대해 깊게 생각하는 사람이 아닌데 주변 얘기를 들어보면 그런 생각이 잘 멈춰지지 않는대요. 집에 식물이 있으면 물을 언제 줘야 할지, 분갈이는 언제 해야 할지 생각하느라 자기 자신을 좀 잊고 살지 않을까 싶어요.


Q. 작가님이 생각하는 작가님은 어떤 사람인가요.


확실히 관심사가 내면이 아니라 바깥에 있는 사람인 것 같아요. 제 작품들도 어떤 주제에 대해서 심층적으로 파고들잖아요. 식물이나 동물에 대한 관심도 그렇고, 게임을 할 때도 하나를 하면 끝까지 해요. 간단하게 말하면 ‘오타쿠’ 성향이 있는 거죠.(웃음)


Q. 솜이를 바라볼 때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고 벅차오르는 감정이 자주 든다고 표현하신 적이 있는데, 여전한가요?


연재를 안 할 때는 그랬는데 지금은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좀 담백해졌어요.(웃음) 한가로운 시절에는 할 게 없으니까 그냥 둘이 누워서 너무 행복하다,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 싶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이사 온 지 한 달이 안 돼서 할 일이 너무 많아요. 입주 청소도 제가 다 했고 당장 내일부터 인테리어 공사를 해서 또 짐을 싸야 해요.(한숨)





Q. 식물을 볼 때는 어떤 생각이 들어요?


뭐가 필요한지 생각해요. 관찰하면서 하나하나 처치하는데 식물이 많으니까 시간이 많이 걸려요. 식물이 자라는 게 느리니까 분갈이를 하든 물을 주든 반응이 늦게 오잖아요. 기다리기 너무 답답한데 식물이 엄청 많으면 하나하나씩 반응이 오니까 원하는 로테이션을 만들 수 있어요.


Q. '크레이지 가드너' 이후 차기작 계획도 있을까요?


생각은 여러 가지로 많이 하긴 했는데 뭐부터 하게 될지 모르겠어요. BL물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 작품이랑 그 전 작품을 하면서 계속 못 놀다보니까 노는 데 한이 맺혔어요.(웃음) 일단 놀았으면 좋겠고 다음 작품은 콘티를 완결까지 다 짜고 시작해야겠어요. 소재 고갈 스트레스를 좀 안 받고 싶어요.





Q. 만약에 원하는 집에 살 수 있으면 어디서 살고 싶어요?


경기도 외곽의 전원주택에 오고 싶다고 생각했었어요. 식물 때문에 마당 있는 집에 살면 좋겠는데 사실 원하는 집에 가려면 너무 비싸고 잔디 관리도 힘들어서 엄두가 안 나기도 해요. 그리고 저는 전원주택에 살아봤으니까 할 일이 정말 많다는 걸 알잖아요. 지금은 마음을 접었어요. 차라리 식물 조명을 몇 개 더 사고 전기세 더 내면서 어지간하면 이 집에서 평생 살고 싶어요.(웃음)


-


글. 양수복 / 사진. 김화경


인터뷰 전문은 빅이슈 261호에서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날마다 초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